[생태 화보] 까칠한 왜가리지만 데이트는 부드럽게

글·사진 금기연 취미사진가 2022. 6. 27. 09: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대호수 왜가리 촬영기
수컷은 암컷이 받아들일 때까지 정성스레 암컷 애무
사랑의 입맞춤. 거칠고 난폭한 호수의 깡패라고 여기던 왜가리에 대한 인상을 바꾸게 된 그들의 다정한 입맞춤 장면입니다. 여러 차례 집짓기 재료를 물어 와 입에서 입으로 전달해 집을 지은 뒤 다정한 몸짓으로 상대방의 몸을 어루만지고 나서야 이루어지는 입맞춤. 의외로 여러 절차를 거쳐 이루어지지만, 그렇다고 바로 짝짓기로 이어지지도 않는 사랑의 과정입니다. 마치 다정한 연인들처럼 진지하고 감미로움이 묻어나는 순간입니다.
새 사진을 찍으려고 좇아다닌 지 3년째에 진기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매일 출근하듯 다니던 신대호수에 갈 때마다 보이던 왜가리. 그 왜가리의 둥지 만들기와 짝짓기를 처음으로 목격한 것입니다.
사실 이제껏 왜가리에 대한 인상은 거칠고 난폭한 호수의 깡패란 느낌이 강했습니다. 상상 이상의 기다림 끝에 날카로운 긴 부리로 물고기를 관통시켜 통째로 삼켜버리는 녀석이니까요. 그 인식이 확 바뀌었습니다. 사랑 할 때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정하고 부드럽게 변하는 면모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데이트 비행. 푸르른 봄날의 싱그러운 기운이 호수에 가득한 가운데 한 쌍의 왜가리가 데이트를 합니다. 때로는 몸이 부딪칠 듯 가까이 날다가 때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거리를 유지합니다. 위로 솟구치기도 하고 아래로 급강하도 하며 봄날을 만끽합니다.
갈대의 무성하던 잎이 사그라지고 앙상하게 남은 줄기만 무성한 곳에 왜가리 한 마리가 서 있습니다. 저만치서 또 한 마리가 날아옵니다. 그런데 입에 긴 나뭇가지를 물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날아오는 녀석과 기다리고 있던 녀석의 하얀 머리통 뒤 검은 꽁지깃이 위로 곧추서고, 착 달라붙어 몸을 감싸고 있는 깃털도 여기저기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처음 보는 광경이지만 녀석들이 서로 좋아하는 모습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왜가리도 새로 집을 짓는 일은 몹시 흥분되는 일인가 봅니다.
둥지재료 물어오기. 멀리서 물고 온 집짓기 재료인 나뭇가지를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기를 반복하다가, 서로 마주 보고 서서 상대의 몸 여기저기를 부리로 쓰다듬습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마침내 입맞춤에 이어 나란히 서서 한 방향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수컷이 암컷 등에 한 다리를 올려 거부하지 않으면 두 다리를 모두 올려 날개로 균형을 잡은 뒤 몸을 낮추어 짝짓기를 시작합니다. 암컷이 목을 길게 앞으로 뻗으며 절정의 순간이 지나면 수컷은 몸을 일으켜 내려옵니다.
수컷이 물어온 가지를 암컷이 받아 뭅니다. 입에서 입으로 나뭇가지를 전하는 모습에서 정감이 느껴집니다. 암컷은 그 가지로 둥지를 만듭니다. 그러면 수컷은 다시 어디론가 가서 또 나뭇가지를 물고 옵니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 됩니다.
암컷에게 건네기.
수컷이 가지를 물어올 때마다 암컷은 물론, 수컷의 기다란 꽁지깃은 하늘로 곧추 섭니다. 언젠가 녀석들이 영역다툼을 하며 격하게 싸울 때의 그 모습이기에 집짓기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지 짐작이 갑니다.
사랑의 몸짓.
나뭇가지로 둥지를 만들던 녀석들이 서로 마주 보며 수컷이 긴 부리로 상대의 몸을 쓰다듬습니다. 꽁지깃과 온 몸의 깃털이 일어선 상태로 몸통과 목 등을 쓰다듬다가 두 부리 끝을 맞대는 입맞춤으로 이어집니다. 몇 번의 입맞춤 뒤에 서로 나란히 서서 한 방향을 바라봅니다.
함께가 좋아.
수컷이 암컷 몸통 위로 한 다리를 올립니다. 암컷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수컷은 다시 암컷의 몸 여기저기를 정성스레 쓰다듬습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한 다리를 또 올려봅니다. 암컷이 거부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나머지 다리까지 좁은 암컷 등 위에 올리고는 두 날개를 펴서 몸의 균형을 잡습니다.
짝짓기 1.
그리고는 서서히 몸을 밀착시켜 짝짓기를 시작합니다. 완전히 밀착한 두 몸은 마치 한 몸처럼 느껴지고 이윽고 암컷의 목이 길게 앞으로 뻗습니다. 이렇게 절정의 순간이 지나면 수컷은 몸을 일으켜 내려옵니다.

그러고 보니 암수의 긴 부리가 색깔이 다릅니다. 암컷은 분홍에 가까운 고운 색인데 비해 수컷은 갈색이 더 많아 씩씩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가 본 쌍만 그런지 왜가리 전체에 해당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짝짓기를 하는 녀석들을 본 것이 두 번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짝짓기 2.
우연히 마주친 왜가리의 둥지 만들기와 짝짓기는 그동안의 선입견을 완전히 바꾸는 놀라움이었습니다. 이렇게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는지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녀석의 거칠고 시끄러운 울음소리 못지않게 엄청 큰 붕어도 통째로 삼켜버리는 충격적인 모습으로 인해 깡패 같다는 인상이 깊게 배어 있었으니까요.
알품기.
그러고 보니 녀석들의 데이트 비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때로는 밀집 편대처럼 서로 몸이 닿을 듯 가깝게도 날고 때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비행합니다. 어떤 때는 위로 솟구쳤다가 또 아래로 내려 꽂는 것처럼 급강하도 하며 함께 봄날의 창공을 마구 휘젓고 다닙니다.
영역을 침입한 침입자를 격퇴하거나 응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저들만의 아름다운 데이트였습니다. 아마도 이 시간이 지나면 둥지 만들기가 시작되나 봅니다. 좀 더 관찰해 보아야겠습니다.

월간산 2022년 6월호 기사입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