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크리그림] '익수볼' 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

김형중 2022. 6. 2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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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안익수 감독의 FC서울 부임 날짜를 찾아봤다. 지난해 9월 6일이었다. 인천유나이티드전이 있었던 6월 25일이 부임 292일째다.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낯설다. 감독 부임 당시 리그 최하위였던 서울은 최종 7위로 2021시즌을 마감했다. 2022시즌 18라운드를 마친 시점에서 서울의 순위는 공교롭게 또 7위이다.

25일 상암 분위기는 킥오프 전부터 달아올랐다. 평소보다 많은 인천 원정 팬들이 자리를 잡았다. 숫자와 목청 데시벨 모두 홈 팀에 뒤지지 않았다. 서울 홈 서포터즈가 자극을 받았는지 평소보다 열정적으로 응원한다(내 착각일 수도 있다). 순위는 물론 인천이 앞서 있다. 노트북 화면에서는 수원FC가 수원블루윙즈를 3-0으로 앞서고 있었다. 한때 K리그 흥행을 책임졌던 슈퍼매치 클럽들의 현재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건가? 코로나 2년 공백기 탓인지 상암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인천의 함성과 수원 더비 결과가 더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전반 내내 서울은 인천을 압도했다. 인천의 경력자들은 서울의 21세기 출생자들에게 정신없이 휘둘렸다. 킥오프 30분까지 서울은 인천의 골대를 세 번이나 맞혔다. 2002년생 백상훈은 중원을 지배했고, 2003년생 강성진은 조영욱(1999년생)의 선제 득점을 도왔다. 서울의 공격 내용상 전반전 1-0 스코어라인은 불공평해 보였다. 45분 동안 서울은 착실한 후방 빌드업, 힘이 넘치는 전방 압박, 과감한 슈팅 시도, 넘치는 스피드, 영리한 포지셔닝을 전부 선보였다. 안익수 감독이 매번 강조하는 부분들이 모두 실현되는 현장이었다. 내가 서울의 미래에 와 있는지, 미래가 내게로 온 건지, 둘 중 하나가 틀림없었다.


물론 시간여행일 리가 없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 서울은 현실에서 눈을 떴다. 미래적 45분이 사라진 자리에 현재적 45분이 막 진행되고 있었다. 기어가 중립으로 빠져버린 자동차처럼 서울은 전진하지 못했다. 후반 중반에 들어서자 선수들의 움직임은 크게 둔해졌다. 전반전 오버페이스에 대한 징벌이었다. 인천은 경험자가 많은 팀답게 공세에서 1-1 동점골을 뽑아냈다. 어느덧 32세가 된 이명주의 헤더였다. 서울은 교체 카드가 먹히지 않았다. 어쩌다 잡은 역습 기회에서도 결정력이 없었다. 홈 4경기 연속 무승.

전반전에만 서울은 유효슈팅을 8개나 기록했다. 후반 들어 이 숫자가 2개로 줄었다. 지쳤다는 판단으로 후반에 투입한 팔로세비치는 20분 만에 경기에서 다시 빠졌다. 후반전만 놓고 보면 서울은 패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한 경기에서 전후반 경기력 차이가 이렇게 큰 90분은 참 오랜만이다. 전후반 어느쪽이 2022년 6월 서울의 본모습에 가까운지를 묻는다면, 후반 45분을 골라야 하지 않을까? 전반전은 서울의 미래, 후반전은 서울의 현재였다.

인천전에서 드러난 서울의 현재는 어둡다. 선발명단에 U22 선수가 다섯 명이나 되었다. 새롭게 출발하는 작업의 일환이라면 좋으련만 현실은 다르다. 주축들이 대거 부상 중이다. 오스마르를 비롯해 나상호, 지동원, 고요한, 한승규, 황인범 등이 빠졌다. 경험이 부족한 선발진에는 90분 동안 고르게 뛰는 요령이 없었다. 기성용 혼자 모든 걸 해낼 순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태로 경기 일정이 6월 19일부터 22일, 25일, 29일(FA컵), 7월 2일, 6일, 10일, 16일로 이어진다. 날씨는 갈수록 더워진다. 다른 팀들의 고충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서울은 난감 그 자체이다.

기자회견 때마다 안익수 감독은 “서울다운 모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알다시피 ‘서울다움’이란 과거의 산물이다. 서울은 K리그 역대 최다 관중 상위 10경기를 독식한다. 최용수,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데얀, 몰리나, 하대성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활약하며 AFC챔피언스리그 출전권에서 상주했다. 최근 10년간 전북 외 리그 챔피언은 서울(2회)과 포항 둘뿐이다. 10년 전, 데얀은 인터뷰할 때마다 “서울이 K리그 최강”이라고 자부했다. 안익수 감독은 그때 그 시절의 서울을 되찾고 싶어 한다.

조직을 유기체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찰스 다윈의 주장처럼 그들은 조직도 시장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 가능한 쪽으로 진화한다고 믿는다. 생존에 필요한 부위(사업영역, 부서 등)는 발달하고 쓸모없는 부위는 퇴화한다는 설명이다. ‘팀빌딩’이란 단어가 익숙한 축구 팬에게 친근하게 느껴질 만한 접근법이다. 축구팀도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면 계속 진화해야 한다. 클럽 운영 방침부터 감독, 코칭스태프, 선수, 각종 인프라까지 모든 면에서 그렇다.

지난 시즌 강등권으로 곤두박질쳤을 시점만 해도 서울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클럽이었다. 안익수 감독의 성과는 서울의 미래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미래’인 탓에 지금 당장 구현되지 않는 게 문제이다. 어쨌든 ‘익수볼’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품고 있다. 인천전 전반전의 경기력을 기본값으로 만드는 시점은 언제쯤일까. 시간과 인내심에 관한 물음이다.


글, 그림 = 홍재민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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