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의 서정시 공부는 여유다..'한가함'을 즐겨라


■ 김헌-김월회의 고전매트릭스 - (16) 워라밸과 카르페 디엠
일에서 떠나 한적한 시간동안
유유자적하며 사색하고 독서
공부는 노동 아닌 순간의 행복
비움으로써 에너지도 충전 돼
모두 지쳐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지난 3월 대통령 선거와 그로부터 석 달 후에 치러진 지방선거까지 우리 사회는 들떠서 숨 가쁘게 달려왔다. 게다가 2년 반 가까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와 싸우느라 우리 모두가 긴장하며 몸 사리며 각종 통제를 견디며 살아오느라 피로가 잔뜩 쌓였다. 생활 전반이 위축되고 힘든 가운데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 정치와 경제를 출구 모를 혼란의 미궁에 빠뜨렸고 삶을 더욱더 팍팍하게 만드는 한편, 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에 대한 불안마저 점점 키워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지우고, 단 얼마만이라도 편안히 쉬고 싶은 마음이다. 불쑥 라틴어 ‘바카레(vacare)’가 떠오른다. ‘텅 비어 있음’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우리가 ‘바캉스(vacances)’라고 부르는 말의 뿌리다. 이는 번잡한 일상과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누적된 피로와 긴장감을 덜어내 나를 텅 비워내는 여유의 시간을 가리킨다. 그래, 이제 곧 바캉스의 계절이 다가온다. 나를 비워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라고 느낄 때,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는 시간, 그런 비워냄의 계기가 없다면 삶을 어떻게 견뎌내겠는가. 로마인들은 이런 여유와 한가함의 시간을 ‘오티움(otium)’이라 불렀다. 키케로는 공동체의 부름에 응해서 일하는 직무, 즉 ‘오피키움(officium)’과 함께 ‘오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둘의 균형이 삶을 알차게 꾸려나가는 지혜라고 생각했다. 일에서 벗어난 한가한 시간 동안 그는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며, 사색과 독서에 잠겼고, 그것은 새로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힘이 됐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예 공부를 한다는 일 자체가 한가함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했다. 죽어라 일만 해야 하는 노예나 일반 서민들에게 한가할 틈은 없다. 노동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있기에 ‘학교’라는 것이 곧 ‘한가함’을 뜻했다. 그리스 말로 한가함을 ‘스콜레(schole)’라고 했는데, 이것이 로마에서는 스콜라(schola)가 됐고 영어에서는 스쿨(school)이 됐다. 공부가 곧 여유를 가진 사람들의 한가함과 통한다는 뜻이다.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면, 학교를 어떻게 가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일이 고된 노동처럼 여겨지고, 미래의 직업을 얻기 위한 예비단계로 굳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에서 벗어난 한가함으로서의 공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더운 날에 하는 일은 더욱 고되다. 무리하게 일을 계속하다가는 병이 날 수도 있다. 일에서 벗어나 한가함을 누리는 것, 모든 것을 비워내고 유유자적하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힘도 얻을 수도 있다. 일에 초조해하지 말고, 잠시 손을 놓아보자.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유명한 시도 있지 않은가. “술을 내려라.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말하는 동안에도 우리를 시샘하는/ 세월은 흘러갔다. 내일을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 돌아보면 꿈만 갖고,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딩 선생이 말했던 그 구절이 여기에 있다. “지금을 잡아라, 오늘을 즐겨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그리스의 시인 사포는 우리를 자연으로 초대한다. 그녀는 아프로디테 여신을 부르고 있지만, 그녀가 있는 그곳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리로, 이곳 신성한 신전으로, 여기에/ 사랑스러운 사과나무 숲을 이루고/ 순결한 불에 타는 향기로운 향 가득한/ 신전으로 오소서.// 여기에 차가운 이슬이 사과나무 가지를/ 타고 흐르고, 풀밭에 무성한 장미 넝쿨/ 그늘을 드리우고, 졸음이 윤기 흐르는/ 잎에서 듣고// 여기에 말을 먹이는 풀들이 무성하고/ 봄을 맞는 꽃들로, 바람은 달콤한 향기를 전하고…// 여기로 오소서. 퀴프로스를 다스리는 아프로디테여/ 축제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신의 술을 황금 잔에 채우시고 우리를 위해/ 술을 따르소서.”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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