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논어' 공부는 놀이다..'워라밸'을 누려라

기자 2022. 6. 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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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16) 워라밸과 카르페 디엠

놂,최고의 공부 가리키는 행위

배움 대상과 놀아야 한다 권유

일과 놀이의 균형잡는 게 중요

현대 사회에서 더 필요한 활동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공자의 어록인 ‘논어’의 첫 구절이다. 역시 유가답게 공부 얘기로 시작한다. 공자는 가히 공부의 달인이었다. 그는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이는 없다고 자부하며 ‘호학(好學)’, 곧 배우기 좋아함을 평생 지녀야 할 윤리적 태도로 제시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면서 자기보다 나은 이에게는 그 나은 바를 배우고 못난 이에게는 그 못남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을 고쳐나가면 된다고까지 했다. 이렇게 하면 누구를 만나든 늘 배울 수가 있다. 그만큼 배우기에 열심이었다. 그렇다 보니 먹을 때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을 도모하지 않으며 일처리에 민첩하고 말을 삼가며 진리로 나아가 스스로를 바로잡는 것, 그러니까 먹고 지내고 일하고 말하며 수양을 하는 모든 것을 호학의 실천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공자가 공부의 최고봉으로 친 것은 ‘배움(學)’이 아니라 ‘놂(游)’이었다. 놂은 놀다의 명사형으로 공자는 “육경에서 논다”라고 함으로써 공부의 최상급 경지를 ‘배우다’가 아닌 ‘놀다’라는 동사로 가리켰다. 육경은 유가의 최고 경전을 가리킨다. 유가에서는 최고의 배움 대상이다. 공자는 그러한 최고의 배움 대상과 놀 줄 알아야 한다고 권유한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다와 반대되는 행위로 알고 있는 놀다를 공자는 최고의 공부를 가리키는 행위로 사용했음이다.

사실 공자뿐이 아니었다. 사사건건 공자 학설에 시비를 걸었던 도가에서도 놀다는 무척 중요시됐던 공부법이었다. 이는 도가의 대표적 고전인 ‘장자’ 첫 장의 제목이 ‘소요유’인 데서도 잘 드러나 있다. 소요유는 “소요하면서 논다”는 뜻으로, 인위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처럼 지내며 노는 것을 가리킨다. 도가가 표방하는 최고의 진리를 실천하기 위한 공부법으로 놀다가 제시된 것이다.

그럼 공부법으로서의 놂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논의가 가능하지만 이렇게도 단순화할 수 있다. 공부하면서 놀고 놀면서 공부한다가 그것이다. 공자나 장자 모두가, 그러니까 유가나 도가 모두가 최고의 공부법으로 제시한 놂이 무언가 고차원적이고 고상한 공부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 공부와 놀이는 상충하는 활동인데, 이 둘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위의 말은 이렇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부와 놀이를 균형 있게 한다는 것으로 말이다. 공부와 놀이는 상충되는 활동이므로 자칫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을 잡으면서 공부와 놀이를 병행하는 것이 곧 놂이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공부를 일로 바꾸어 보자. 공자나 장자 시절에 식자층에게 공부는 곧 일이었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모두가 식자층이므로 이러한 바꾸어 읽기는 유효하다. 그러면 일과 놀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곧 놂이라는 식의 응용이 가능해지고, 놂은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종종 운위되는 ‘워라밸(work life balance)’, 그러니까 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중시하는 풍조와 만나게 된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어나 ‘욜로(YOLO)족’ ‘파이어(FIRE)족’ 같은 사회적 현상과도 만난다. 놂이란 게 저 옛날에나 가능했던 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활동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여 놂의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대전환을 봐도 그러하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진보가 늦지 않은 속도로 지속되고 있다.

이에 일군의 논자들은 ‘노동 없는 인간’이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게다가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일러주듯이 생명이 연장되고 있다. 반면에 기계는 늦지 않은 속도로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이로 인한 노동시간의 단축, 여가 시간의 확대 같은 일련의 변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놂의 역량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절이 다가오고 있음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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