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폭락에 엘살바도르 '경제 위기'..대통령은 "인생 즐겨라"

한겨레 입력 2022. 6. 27. 07:40 수정 2022. 6. 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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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세계 최초로 비트코인 법정통화 채택
폭락 사태 겹치며 국가부도 위기 가중
비트코인이 위기 근본 원인은 아냐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지난 11월20일 엘살바도르 미자타 비치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비트코인 및 블록체인 회의에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도입하고 비트코인 시티를 건설한다는 계획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비트코인을 세계 최초로 법정통화로 채택한 엘살바도르가 가상자산 폭락 사태로 부채위기가 악화되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 정부는 지난해인 9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도입했다. 아울러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치보’라는 국가 차원의 전자지갑도 도입했다. 이 전자지갑을 사용하면, 송금 수수료가 없고 국제결제도 신속하게 할 수 있다. 이 전자지갑의 앱을 내려받으면, 30달러 상당의 비트코인도 무료로 제공했다. 엘살바도르 한달 최저임금이 365달러임을 고려하면 적은 돈이 아니다.

부켈레 정부의 비트코인 법정통화 프로젝트는 현재 참담한 실패로 향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치가 지난해 11월 정점을 찍은 뒤 무려 70%나 폭락하고, 부켈레 정부가 이 프로젝트를 도입한 시점 기준으로는 50%가 폭락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약 1억300만 달러를 들여서 2301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5천만달러 미만이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비트코인 프로젝트 운용 경비 3억7400만달러를 포함해 총 4억2500만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시엔비시>(CNBC)는 보도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비트코인을 달러로 즉시 환전해주는 신탁기금에 1억5천만달러, 국민에게 30달러씩 나눠준 권장금으로 1억2천만달러, 그 외 비용으로 1억400만 달러 등을 지출했다. 손실보다는 비트코인 프로젝트가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또, 11월에는 수도 산살바도르 남동쪽에 비트코인 시티 건설도 발표했다. 이 도시에서는 세금을 감면해주고, 비트코인 채굴을 위해 인근 화산의 지열을 이용한 전력도 제공한다는 계획이었다.

부켈레 대통령은 지난 1월 트위터에서 650만명의 인구 중 비트코인 전자지갑 앱 사용자가 40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4월 미국 국립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이 전자지갑 앱을 다운받은 사람 중 20%만이 계속 사용 중이다. 앱을 다운 받은 80%는 권장금 30달러만 챙긴 것이다. 권장금 30달러를 절취하려는 신원도용과 해킹도 빈번한 것으로 조사됐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 전자지갑을 도입한 배경은 이 나라 경제의 중요 수입원인 해외로부터의 송금 수수료 때문이다. 엘살바도르는 미국 등 해외에 나가서 일하는 자국 노동자들이 보내주는 돈이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한다. 일부 가정들은 수입원의 60%에 달한다. 하지만, 해외 송금 비용은 원금의 10%나 달하는 데다, 돈을 찾는데도 며칠이 걸린다. 비트코인 전자지갑을 이용하면, 송금 수수료 등 비용이 대폭 절감된다고 정부는 선전했다. 하지만, 해외로부터 오는 송금의 1.6%만이 이 전자지갑을 이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엘살바도르 상공회의소의 3월 조사에 따르면, 이 나라 기업의 80%가 비트코인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0억달러의 비트코인 채권을 발행해서 건설하려던 비트코인 시티도 가상자산 폭락 사태로 전혀 진전이 없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프로젝트가 완전히 파산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영국의 핀테크 데이터 전문가인 보아즈 소브라도는 <시엔비시>에 “표면적으로는 비트코인을 둘러싼 전체 상황이 제값을 못하고 있다”면서도 관광 측면에서는 아주 도움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트코인 신봉자로부터 많은 자본이 유입됐다”고 말했다. 엘살바도르에서 비트코인 법이 발효된 이후 관광산업이 30% 성장했다. 인근 국가인 코스타리카가 관광 캠페인에 수십억달러를 쓰는 것을 감안하면, 비트코인 프로젝트가 그정도의 값을 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기업인 출신인 부켈레는 지난 20일 트위터에 “일각에서 비트코인 시세를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차트를 보지 말고 인생을 즐기라고 조언하고 싶다. 비트코인 투자는 안전하다. 비트코인 가격은 약세장을 마친 뒤 엄청나게 상승할 것이다. 인내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프로젝트는 이 나라의 경제정책 신뢰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줬다는 평가이다. 국가 부채 문제가 심각한 나라에서 가치 변동이 극심한 가상자산을 법정통화로 도입한 것은 국제 채권자들에게 심각한 불신을 자아냈다는 것이다. 엘살바도르는 현재 국내총생산 대비 87%의 부채를 안고 있다.

피치 등 신용평가회사는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도입한 이후 신용등급을 대폭 낮췄다.

중남미 국가 경제를 자문해온 프랭크 무치 런던정경대 교수는 20~25% 정도로 눈이 번쩍 뜨이는 이자율이 아니고서는 부켈레 정부에게 돈을 빌려주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엘살바도르는 부도위기 속에서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엘살바도르가 위기로 몰리는 근본 배경은 달러와 연동시킨 통화 정책에도 근본 원인이 있다. 엘살바도르는 2001년에 자국 통화인 콜론을 달러와 연동시켜, 자국 통화량과 가치를 경기에 맞게 조절할 수 없다. 이는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도입한 한 배경이기도 하나, 통화량이 한정된 비트코인 역시 엘살바도르에 통화정책의 신축성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비트코인 프로젝트의 지지부진에도 이를 주도한 부켈레 대통령의 지지율은 85%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범죄와의 전쟁 등 포퓰리즘 정책 때문이다. 무치 교수는 “비트코인은 엘살바도르의 중대한 경제 문제들 중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면서도 엘살바도르 정부가 재정 재앙으로 다가가는 것도 비트코인 때문만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m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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