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줌인]'노인 정책의 사각지대, 노인 정신장애인'
[김가영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사회재활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 안 되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저희의 사정도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형을 간병했지, 저는 형이 꾸준히 안 좋았다는 것 말고는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안 좋은 환자를 나라에서는 모른 척 하는 건가요. 이런 환자는 가족이 책임지지 못하면 결국 요양원에 가야만 하는 건가요?” 진료실에 함께 내원한 63세 남자 환자를 앞에 두고, 남동생은 난감함을 호소했다.
환자의 상태가 악화된 것은 3개월 전 아버지가 노환으로 갑자기 사망한 이후였다고 했다. 타지에 살았던 남동생은 그간 환자의 이웃들에게 환자가 이웃집 담벼락에 노상방뇨를 하고 남의 집 앞에 쓰레기를 쌓아 둔다는 불평을 간간이 전화로 들었다고 했다. 한달 전 환자는 탈의 상태로 집 밖에 나가 배회하였고 출동한 경찰 앞에서도 횡설수설하는 모습이었다고 하며, 그간 투약이 불량한 것이 확인되었고, 유일한 보호자인 남동생에게 연계되어 이후로는 같이 살게 되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따로 생계를 유지하던 남동생은 환자의 상태를 혼자 책임지는 것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꼈고, 주변에서 요양보호사나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지난 외래에서 주치의인 나에게 노인장기요양보험 소견서 작성을 요청한 상태였다. 그리고 오늘, 나는 진료실에서 환자의 남동생으로부터 환자가 등급외 판정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공단에서는 환자가 아직 젊고 치매가 아니라서 등급을 받을 수가 없다고 했어요. 등급을 받지 못해도 지역사회에서 지원해주는 서비스가 있지만 환자에게 맞지 않아요. 이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는 치매처럼 봐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제시된 사례는 실제의 사례를 바탕으로 가공한 사례이지만, 사연이 비슷비슷한 환자들을 외래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왜일까.
고령화 시대의 평균 연령의 증가 및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인해 중증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의 고령화 역시 중요해지고 있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중증 정신장애인 의료체계 실태조사 등의 결과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평균 연령은 지난 10여년간 상승하는 추세이며 노인 환자의 비중 역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정신장애 질환의 경우 실질적인 정신장애의 발생시기는 청소년기부터 중장년기에 이르고 지적장애 및 자폐장애의 경우 더 이전에 진단을 받게 된다. 즉 정신장애인의 고령화는 결국 고령화로 인한 정신장애인으로서의 삶의 기간이 증대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을 의미하나, 현상을 이해하는 사회적인 관심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저런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평생을 근근이 살아오던 노인 정신장애인들은 가족이 갑자기 사망하거나 질병이 악화되었을 때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독립생활 저하, 한정된 진료비와 빈곤, 불충분한 사회기술 및 의사소통능력의 저하로 많은 환자들이 스스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기조차 어려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비만, 흡연 등 자기관리 능력의 저하 등으로 인한 질병이 동반되고, 오랜 투약의 부작용까지 합쳐지면 심각한 건강 위해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정신장애인의 기대수명이 비장애인에 비해 11-30년 가량 단축되는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가능한 독립생활을 유지하고 싶어도 요양기관에서 입소생활을 하는 것으로 여생을 보내게 되는 것으로 연결된다.
제도적인 입장에서도 노인 정신장애인은 불리한 위치에 있다. 현재의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만 65세 시점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로 전환되는데, 이 경우 장기요양판정을 별도로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대상자가 서비스 비용 감소를 경험하게 된다. 현재의 제도로는 실제로 도움이 더 필요한 시기에서 오히려 지원금이 감소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역시 치매의 경우에만 5등급이 인정되며, 치매가 아니라면 해당 등급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치매 및 인지장애의 경우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인 관심이 증대되어 많은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젊었을 때 장애를 얻어 노인이 된 정신장애인의 경우 이에 상응하는 제도적 도움을 받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대 사회의 고령화는 정신장애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에릭슨은 노년기를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시기라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욕구는 노인 정신장애인에게도 동일하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편견과 사회적인 장벽으로 노인 정신장애인의 삶의 행복 추구는 쉽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많은 노인 정신건강 정책들은 주로 치매 및 인지장애에 국한되어 있지만, 노인 정신장애인이라는 집단은 생각보다 다양하게 구성된 집단이며, 사회적인 이해가 더욱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외래에서 약물치료를 수십년간 안정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는 환자와 기능저하가 심각해져서 요양원에 입소하여 타인의 도움 없이는 살기 어려운 환자 모두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사회의 제도적 관심과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이순용 (sy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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