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대통령의 책상.. 청와대 개방, 정치 홍보가 우선인가 [뉴스+]

엄형준 2022. 6. 2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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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중궁궐이 따로 없구먼", "영부인이 뭘 한다고, 이렇게 큰 집무실이 있대", "저 큰 옷방 좀 봐. 저 옷장에 김정숙이 옷 300벌을 넣었대."

윤석열 정부의 취임식 당일 청와대 개방 강행 방침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하루 전 짐을 싸야 했고, 윤 대통령의 의의 설명에도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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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청와대 관람객 대통령·영부인 집무실 보며 냉소
관람 표지판에 전 정부와 비교, 현 정부 홍보 내용 담아
대통령 집무 책상 먼지 수북이.. 잔디 죽고 쓰레기 넘쳐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 전경.
“구중궁궐이 따로 없구먼”, “영부인이 뭘 한다고, 이렇게 큰 집무실이 있대”, “저 큰 옷방 좀 봐. 저 옷장에 김정숙이 옷 300벌을 넣었대.”

개방된 청와대를 둘러 보던 몇몇 관람객이 냉소를 내뱉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0년간 성역이었던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지난 5월10일 취임과 함께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고 시민을 들였다. 준비 없이 너무 개방을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지만, 윤 대통령은 ‘약속’을 강조했다.

청와대 개방과 함께 개설된 홈페이지에는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을 비롯해,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녹지원과 상춘재까지 모두 국민의 품으로 돌아간다”면서 “청와대의 완전한 개방으로 광화문에서 북악산까지 이어지는 길은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인사가 적혀 있다.

윤석열 정부의 취임식 당일 청와대 개방 강행 방침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하루 전 짐을 싸야 했고, 윤 대통령의 의의 설명에도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영부인 집무실인 무궁화실 안내 표지판.
청와대 본관 영부인 집무실의 모습.
실제 지난 11일 기자가 돌아본 청와대에서는 공간 개방을 정치 홍보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듯한 의도가 엿보였다. 청와대 본관 영부인 집무실인 ‘무궁화실’을 설명하는 표지판에는 ‘지난 5월10일 임기를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는 별도의 영부인 관련 전용공간은 없다’고 적혀 있었다. 또 대통령 집무실 설명 표지에는 ‘대통령 공적 공간인 청와대 본관 전체 면적은 2761㎡로, 이전된 용산 대통령실 청사의 윤석열 대통령 집무공간 면적(415㎡, 현재 기준) 대비 약 6배에 달한다’고 쓰여 있었다.

전 정부와 비교해 현 정부의 ‘청렴’함과 ‘영부인의 외풍’이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관람객들에겐 전 정부를 비난할 빌미를 제공한 꼴이다. 일부 관람객들은 이 공간을 돌아보며, 문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 이 표지판들은 기자가 관람한 다음 이미 바뀌었거나 앞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후보 시절 ‘조용한 외조’를 하겠다던 김건희 여사의 대외 활동이 활발해지며,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김 여사의 집무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 대통령실에 대통령 제2 집무실이 설치된 만큼 대통령실 면적도 다시 계산해야 한다.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 안내 표지판.
청와대 관저 뒷편 창으로 본 옷방.
청와대는 이전에 누가 머물렀든 그 자체로 대한민국 역사다. 이 공간은 보수와 진보 성향의 대통령이 한때를 거쳐 가면서 다듬어지며 오늘에 이르렀다. 누구 한 사람만을 위해 지어진 공간이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곳에 집무를 보며 살았다.

대통령실 이전으로 개방된 청와대는 정쟁의 장이 아니라 역사 명소로 국민에게 남아야 한다. 그리고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한 현 정부는 홍보에 앞서 오롯이 이 공간을 지키고 보존해야 할 책무를 지닌다.

세계일보가 개방 한 달을 맞아 돌아본 청와대는 관람객 훼손에 신음하고 있었다. 잔디밭은 까지고, 청와대 예약 관람구역 밖에 있는 부속 시설인 연풍문 화장실은 쓰레기로 넘쳐나고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청와대는 이미 충분히 욕을 봤다.
청와대 관저에서 내려다본 서울 풍경.
기자가 둘러본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크기나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대통령 집무 책상 유리 틈에 수북이 쌓인 먼지였다. 이제 그 먼지를 닦아줄 때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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