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이후 20년..박찬욱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깊어졌을 뿐[SS리뷰]

조은별 2022. 6.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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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한국어가 서툴다.

29일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은 감독 특유의 상징과 은유로 가득 들어 찬 작품이다.

국내 언론에서도 "순한 맛 박찬욱"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아이스크림으로 저녁 식사를 대체하고, 사극으로 한국어를 배우며 담배를 입에 문 채 피곤에 절어 잠드는 여자, 늘 해왔던 수사는 어느덧 관심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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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한국어가 서툴다. 그녀는 ‘마침내’ 남편이 죽었다고 했다. 밥을 주는 길냥이에게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남자는 형사다. 그는 “품위는 자부심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남자의 아내는 “당신은 살인과 폭력이 함께 있어야 행복하다”고 평한다.

29일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은 감독 특유의 상징과 은유로 가득 들어 찬 작품이다.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 작품을 놓고 프랑스 ‘르 피가로’는 ‘스릴러의 중심에 있는 비단결 같은 낭만주의’라고 호평했고 영국 가디언은 “지적이고 생생한 두 배우의 호흡이 경이롭다”고 극찬했다. 국내 언론에서도 “순한 맛 박찬욱”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방심하면 금물이다. ‘칸느박’의 세계관은 그대로였다. 군만두와 산낙지, 그리고 딸과의 정사까지, 직관적이고 명징했던 상징으로 가득했던 영화 ‘올드보이’(2003) 이후 20년동안 그의 세계는 ‘순한 맛’이 아닌 ‘깊은맛’으로 발전했다. 마치 뭉근하게 오래 끓인 마라탕의 아린 맛이 긴 시간 혀끝을 감싸듯 영화는 관객의 마음 속 모래사장을 덮은 만조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시작부터 산 정상에서 추락한 중년남성의 시신을 조명한다. 카메라는 채 눈을 감지 못한 채 죽어버린 사망자의 안구 사이 스며든 개미떼를 클로즈업한다. 망자의 마지막 눈에 담긴 이는 누구일까.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가 의심스럽다. 그는 늘 그렇듯 ‘잠복수사’를 통해 여자를 관찰한다. 아이스크림으로 저녁 식사를 대체하고, 사극으로 한국어를 배우며 담배를 입에 문 채 피곤에 절어 잠드는 여자, 늘 해왔던 수사는 어느덧 관심으로 발전한다. 취조 중 도시락 대신 비싼 초밥을 사주고 식사 뒤 칫솔에 치약을 짜준다. 종국에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함께 요리 한다.

해준은 아내가 있다. 서래는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하면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라는 말로 해준이 긴 시간 쌓은 형사의 품위를 붕괴시킨다. 그의 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관객의 가슴에도 너울이 밀려온다.

유부남 형사가 용의자 여성을 사랑한다는 부도덕한 발상은 거장 박찬욱의 정교한 미장센과 탕웨이, 박해일의 흡입력있는 연기에 가려 힘을 얻는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대사에는 그 흔한 ‘사랑한다’는 고백이 없다. 하지만 해준의 주머니 속 립밤을 한번에 찾아내 입술에 바르고, 다시 그 립밤으로 해준의 입술을 덮는 서래의 몸짓 하나하나는 그 어떤 노출보다 치명적이고 위험하다. 잠 못 이루는 해준을 위해 두 사람의 숨결이 앙상블을 이루는 장면은 그 어떤 정사신보다 관능적이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속 곳곳에 자신만의 은유와 상징을 심어놓았다. 한국어가 서툰 서래는 스마트폰 번역기기를 사용해 의사를 전달한다. 해준은 그 스마트폰을 바다에 버리라고 한다. 해준의 아내가 사는 도시는 늘 안개가 가득 차 있다. 해준은 종종 눈에 안약을 넣지만 서래의 원피스 색이 녹색인지, 푸른색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보고 있어도 볼수 없는 것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반어법적 표현일지 모른다.

mulgae@sportsseoul.com

사진제공|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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