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못하면 최저수익 보장"..부메랑 된 투자유치 옵션

김성훈 2022. 6. 27.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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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투자유치 명과 암]②
글로벌 자본으로 몸집 키운 기업들
IPO 엑시트 플랜 봉쇄에 '전전긍긍'
복잡한 옵션..수익률 게런티 조항도
글로벌 투자, 거절도 쉽지만은 않아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글로벌 투자 유치로 기업가치를 크게 끌어올린 한 기업 관계자는 최근 시장 분위기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투자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하던 이 관계자는 최근 먹구름이 낀 공모주 시장과 상장 계획에 대한 주제가 나오자 “시장 분위기를 우리가 조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만족스런 결론(상장) 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어려움을 내비쳤다.

또 다른 회사 관계자는 “원하는 엑시트(자금회수) 규모가 나오기 전까지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면서도 “(투자 과정에서) 상장 시기나 공모가 등의 윤곽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무작정 상장이나 매각을 추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확 꺾인 공모주 시장…시계 쳐다보는 글로벌 머니

글로벌 자본을 빨아들이며 몸집을 키우던 국내 유망 기업들이 고민에 빠졌다. 조 단위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외국계 자본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대어급 IPO 기대주가 된 기대도 잠시, 고꾸라진 증시에 IPO 시점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조급한 속내도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다.

거액의 투자 유치 과정에서 맺어진 다양한 옵션(조항)이 기업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동반자’를 자청하며 베팅을 아끼지 않던 글로벌 자본들이 시장 상황이 꺾이자 점차 냉정한 면모를 들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원하는 수준의 IPO를 갈무리해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도 현재 증시 상황을 숨죽이며 지켜볼 뿐이다.

26일 투자은행(IB)업계와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기업가치 1조원을 웃도는 이른바 ‘유니콘’ 개수는 18개(지난해 12월 기준)에 이른다. 지난 2017년 유니콘 숫자가 3개에 불과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4년 새 6배나 급증한 것이다. 올 들어 여기어때가 500억 투자 유치로 유니콘 대열에 합류한 가운데 SK그룹과 카카오(035720)의 조 단위 비상장사까지 더하면 자본시장에 조 단위 몸집을 자랑하는 비상장사 수는 20개를 훌쩍 웃도는 상황이다.

조 단위 기업들이 잇따라 등장한 데는 글로벌 자본들의 영향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이들 기업별 투자자 명단을 보면 외국계 재무적투자자(FI)들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순수 국내 투자자들로만 이뤄진 기업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예컨대 신선식품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선두주자이자 IPO 절차를 밟고 있는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는 글로벌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앵커PE와 세콰이어캐피탈, 힐하우스캐피탈 등의 외국계 FI가 투자자 명단에 올라 있다. 컬리와 마찬가지로 IPO 시기를 가늠 중인 SSG닷컴도 PEF 운용사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BRV캐피탈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1789억원의 시리즈D 투자 유치로 몸값 3조원을 인정받은 당근마켓도 DST글로벌과 에스펙스매니지먼트, 레버런트파트너스, 굿워터캐피탈,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알토스벤처스 등의 글로벌 투자자들이 포진해 있다. 높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인정받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방법이 글로벌 자본 유치라는 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수익 없다면 보상해야’…냉정한 투자의 대가

시리즈 투자나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단계에 투자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목적은 간단하다. IPO를 통한 엑시트(자금회수)로 수익을 버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동반자’ 내지는 ‘신뢰 관계’라는 말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바다 건너 아시아 국가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결국 ‘돈을 벌 수 있다’는 전략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투자 주체나 기업별로 세부적 내용은 다르지만, 외국계 투자자들은 투자 과정에서 꽤 복잡한 옵션을 요구한다. 이사회 발언권이나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 등 세간에 알려진 사항 외에도 구체적인 상장 규모나 시기에 대한 명시도 옵션에 포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꽤 큰 규모의 투자 논의가 이뤄질 경우에는 미니멈 게런티(최저수익보장)를 요구하기도 한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예외 사항을 달기도 하지만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규모로 IPO 하지 못하면 보장된 최저 수익률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조항을 넣는 경우도 있다”며 “예외 사항도 결국 투자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실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넣은 것이다”고 말했다.

달콤하면서도 녹록지 않은 제안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쉽사리 거절하기도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투자자로부터 받아야만 가능한 투자 규모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점에 미련을 버릴 수 없어서다.

기업입장에서 글로벌 투자 유치를 호재로 받아들이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해외 투자자의 합류는 자금 해결은 물론 기업 홍보에도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

문제는 공모주 열기가 꺾인 지금부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성공을 자신하던 공모주 대어들이 줄줄이 상장을 미루고 있는 상황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상장 초기 단계부터 기업가치가 합리적인지, 투자자들과의 관계는 어떤지를 체크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예비상장심사 청구 이후 45영업일이 지나도록 결과를 통보 받지 못한 기업들이 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결국 증시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데 예상보다 길게 이어지진 않을 것 같다는 얘기도 있다”면서도 “IPO를 통해 엑시트(자금회수) 기회를 열어줘야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시장이 좋아야 가능한 IPO 시나리오가 막히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김성훈 (sk4h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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