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자유·인권 지킨 6·25전쟁, 헌법 전문에 넣어야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역사학 입력 2022. 6. 2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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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 전체주의 침략 맞서 나라 지킨
6·25전쟁은 헌정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
헌법 전문 개정한다면 대한민국 번영의
바탕 이룬 6·25전쟁 의미 적시해야

2021년 중국을 휩쓴 영화 ‘장진호(長津湖)’의 플롯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압록강 이북 안둥(安東) 지역 공습에서 시작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대남 침략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한국전쟁을 다룬 178분의 장편 영화임에도 한국 사람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역사 배경을 모르는 관객이 그 영화만 보면 6·25전쟁은 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이며, 남북 전쟁이 아니라 미·중 전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오늘날의 국제 정세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부가 2억달러를 써서 이 영화를 만든 의도가 빤히 읽힌다. 6·25전쟁을 수십만 중국 청춘들이 “미제 침략”에서 “조국”을 사수한 “애국 성전(聖戰)”으로 윤색하기 위함이다. “조국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는 홍보 문구 그대로 미국이 중국의 적국임을 인민의 뇌리에 각인하는 선전전이다. 중국 밖에서야 이 영화가 역사 왜곡의 선전물이라 비판할 수 있지만, 중국 내에서 이 영화가 발휘하는 대중 동원력을 무시할 순 없다. ‘장진호’는 중국 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작이 되었고, 올해 2월에는 중국공산당 100주년에 맞춰 그 후속 편이 개봉되었다.

진정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6·25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종전 선언 유무 때문이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바로 그 전체주의 정권이 핵 개발에 성공하여 더 큰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고, 중국이 국제 질서에 역행하며 바로 그 정권의 존속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공산당이 반미 선전을 강화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도 종전이 요원함을 말해준다. 문제는 대한민국에도 6·25전쟁에 관한 왜곡된 정보와 그릇된 신화가 널리 퍼져서 국가의 외교 정책에까지 악영향을 끼쳐왔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세계사적 관점에서 6·25전쟁의 의미를 되짚고 기억해야 한다.

72년 전 바로 오늘(27일),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독립국을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킨” 공산주의 세력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 군사 개입을 결정했다. 아울러 그는 대만에 제7함대를 배치하고, 필리핀의 미군 병력을 증강하고, 인도차이나의 방비를 위해 프랑스와 연합국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7월 7일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되었고, 곧바로 16국이 파병을, 5국이 의료진 파견을 결정했다. 유엔 안보리의 군사적 대응은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이 주민의 자유의사에 따라 성립된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1948년 12월 유엔총회의 결의에 근거하고 있었다. 요컨대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한 비합법적 정부가 유엔의 승인을 받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를 무력으로 침략했기에 유엔의 대규모 군사 대응이 정당화될 수 있었다.

전쟁 발발 사흘 만에 트루먼 행정부는 6·25전쟁의 의미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정의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이 전쟁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노리는 공산 세력의 팽창주의 전쟁이었고, 그 배후는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한때 미국 정부 측의 전통적 해석에 대한 수정 이론이 유행했지만, 구소련의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72년 전 트루먼 행정부의 판단은 정확했음이 명백하게 증명되었다. 6·25전쟁은 스탈린·마오쩌둥과의 밀약 아래 김일성이 소련의 군사 지원을 받아서 계획적으로 일으킨 침략 전쟁이었다.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대한민국 해수부 공무원을 북한군이 살해하고 소각했는데, 지난 정권은 불행한 희생자를 빚에 몰린 월북자로 몰아갔다.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의 생명이 달린 중대 사안에서 왜 그토록 비상식적으로 대응해야만 했는가? 오늘날의 북한 정권이 대한민국을 침략해서 절멸의 위기로 몰아갔고, 그 이후로도 아웅산 묘역 테러, 대한항공858 테러, 천안함 폭침 등 군사 도발을 자행해온 잔혹한 테러 집단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는가?

72년 전 오늘 유엔 안보리의 참전 선언은 세월이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과 성공은 바로 그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엔군의 참전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인들은 자유·민주·인권·법치 등 인류의 보편 가치를 누릴 수가 있다. 본래 자유주의 헌법은 역사적 사실을 언급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굳이 헌법 전문에서 과거사를 거론하려면, 반드시 6·25전쟁이 들어가야만 한다. 6·25전쟁은 공산 전체주의의 침략에 맞서 자유와 인권을 지켜낸 대한민국 헌정사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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