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찌꺼기를 모으는 사람

국제신문 입력 2022. 6.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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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뒷집 대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철문의 요란한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30분이었다. 계세요, 계십니까, 사내가 산복도로의 마을 전체를 깨울 기세로 문을 때리며 소리쳤다. 골목 입구로 짐작되는 곳에서 시동을 끄지 않은 자동차 엔진음이 들렸다. 사내가 나를 부른 것도 아닌데 괜히 심장이 뛰었다.

불청객이 내는 소음은 골목을 뒤흔들었다. 모두가 곤히 자는 이 시간에 저 사내는 왜 집주인을 직접 만나야 할까. 꼭 전해야 할 말이 무엇일까. ‘전화통화’라는 수단도 있을 텐데, 저렇게 막무가내로. 뒷집 아저씨가 마당에 나오며 무슨 일이냐, 물었다. 그러자 사내가 대답했다. “정화조 푸러 왔는데요!” 세상에, 서스펜스 스릴러물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분뇨 수거라니.

용변을 보면 정화조에서 여러 가지 처리 과정을 통해 분뇨를 분해한다. 분해를 시켜도 정화조에는 남은 찌꺼기(슬러지)가 침전된다. 분뇨 수거차는 그 슬러지를 빨아들이는 것이다. 분뇨 수거차가 슬러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는지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더욱 커졌다. 자동차 소음이 커서 분뇨 수거하는 작업자들은 싸움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작업 과정을 공유했다. 시장에 가도 이 정도로 시끄럽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뒤 엔진소리가 잦아들었다. 드디어 작업이 끝났다 싶어 눕는데 어느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우리 집도 풀 수 있능가?” “집이 어덴데요.” “요 아래 꼴목에.” 그때부터 ‘바로 요게, 저쭈 우에, 요 계단 밑엣집’에서 비슷한 목소리를 지닌 노인들이 나타나 정화조를 퍼달라, 요청했다. 엔진 소리는 끝나지 않았다. 하늘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산복도로는 자동차 두 대가 겨우 지날 만큼 폭이 좁다. 그래서 ‘교행 지점 절대 주차 금지 구역’이라는 노란색 글자가 도로 곳곳에 찍혀 주차를 통제한다. 마을버스가 다니는 도로라서 누군가 함부로 주차하면 버스는 지나지 못하고 금세 길이 정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동네 분뇨 수거차는 차량 통행이 적은 새벽에 주로 일을 한다. 매년 늦봄부터 장마 직전까지, 우리 동네 집들은 소란스러운 새벽을 몇 번 만난다. 잠은 다 잤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구상하던 소설이나 마저 상상해볼까, 했는데 저 분뇨 수거 작업자가 갑자기 부러워졌다. 사람들의 찌꺼기를 저렇게 쉽게 수집하니까. 사람들이 앞다퉈 찌꺼기를 보여주니까.

어린 시절, 부모님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세탁 기계를 돌리고 나면 꼭 찌꺼기가 나왔다. 옷을 깨끗하게 되돌리는 과정에 더러운 찌꺼기가 발생하는 일은 필연이다. 드라이클리닝 기계에서 진득하고 검은 찌꺼기를 퍼내 폐기물 자루에 담는 아빠의 숙인 허리를 보면서 찌꺼기를 모으는 일은 별로라고 생각했다. 커서 생각하니 삶을 돌아보는 작가의 은유적 표현 같아서 멋있어졌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찌꺼기’가 나온다. 먹으면 소화하고 남은 찌꺼기, 세탁기를 돌리면 나오는 먼지 찌꺼기처럼, 사람은 살면서 어떤 일을 겪고 나면 찌꺼기를 가지게 된다. 경험 뒤의 질문 생각 느낌 감정 마음들. 나는 그걸 삶의 찌꺼기라고 부른다. 나는 찌꺼기를 글감으로 삼는다.


작가도 일상을 산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세계라는 ‘기계-정화조-세탁기’ 속을 쳇바퀴 돌 듯 뱅글뱅글 돈다. 그러다 문득, 자주 멈춰 서서 찌꺼기를 꺼내본다. 머릿속 거름망에는 꼭 ‘찌꺼기-생각-감정-마음-질문’이 남아 있다. 찌꺼기의 무늬를 살려서 에세이를 쓰고 찌꺼기를 새롭게 엮어서 새 무늬의 소설을 쓴다. 이 무늬가 우리 인생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결해보는 사람.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하찮아 보이는 것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다니, 나는 스스로가 자주 싫다가도 이런 일을 한다고 느낄 땐 조금 뿌듯해진다. 그러니 동이 터오는 하늘을 보면서 소설을 구상하다가 한 사람의 새벽을 붙들고 홀리는, 저 분뇨 수거를 부러워하는 것이다.

이정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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