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관고 설립자 최명재 이사장 별세..향년 95세

이병욱 기자 2022. 6.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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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 설립자인 최명재(사진) 이사장이 26일 별세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학교 설립에 재산 대부분을 바친 부친처럼 평생 꿈인 민족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선생이 되고자 하는 추진력으로 민사고를 탄생시켰다.

시행착오 끝에 1996년 파스퇴르유업 공장 옆 부지에 민사고를 개교했다.

특히 파스퇴르를 운영하면서 번 수익금 대부분을 민사고 설립과 운영에 투입해 투자 규모가 1000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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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 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 설립자인 최명재(사진) 이사장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고인은 삶의 전반전은 기업인으로, 후반전은 교육인으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시대의 반항아이자 기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국민에게 차별화된 질 좋은 우유를 공급하겠다는 신념으로 기존 유가공업계와 치열하게 싸웠고, 고교평준화 흐름 속에서도 민족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한 영재 교육을 주창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학교 설립에 재산 대부분을 바친 부친처럼 평생 꿈인 민족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선생이 되고자 하는 추진력으로 민사고를 탄생시켰다.

고인은 1927년 전북 만경면에서 태어나 만경보통학교, 전주북중을 나와 서울대 경영대학의 전신인 경성경제전문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상업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택시 운전사로 전직했다가 1960년대에 직접 운수업을 일으켜 기업인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1970년대 중반에는 이란에 진출해 유럽과 중동에서 물류운송업을 번창시켰고, 이때 벌어들인 자금으로 낙농업에 뛰어들어 1987년 강원도 횡성에 파스퇴르유업을 창업했다.

국내 처음으로 저온살균 우유를 도입한데 이어 국내 첫 미군납을 통해 품질을 인정받았고, 기존 유가공업체와 소위 ‘우유전쟁’을 벌인 끝에 출시 1년 만에 매출을 10배 신장시켰다. 이후 오랜 숙원이던 학교 설립 추진에 나섰다. 시행착오 끝에 1996년 파스퇴르유업 공장 옆 부지에 민사고를 개교했다.

고인은 학생들에게 “조국과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고, 출세가 아니라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특히 파스퇴르를 운영하면서 번 수익금 대부분을 민사고 설립과 운영에 투입해 투자 규모가 1000억 원에 달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8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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