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팬심 잃는 건 한순간이다
벤치 지킨 호날두는 ‘날강두’… 초심 잊으면 팬들 바로 등돌려
국내 축구 팬들은 요즘 브라질의 축구 스타 네이마르를 ‘우리마루’라 부른다. 그의 성 뒤 두 글자인 마루(네이마르가 한국 팬들이 부른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Neymaru’라고 적은 것에서 유래했다)에 친밀감을 섞은 ‘우리’를 앞에 붙였다.
현역 최고 축구스타 중 하나인 네이마르는 이달 초 열린 한국 월드컵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통해 국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질적 부상에 시달렸던 오른쪽 발등을 경기 전날 다시 다쳤는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77분 동안 전력을 다해 뛰었다. 특히 경기 전 애국가 제창 때 자신과 함께 입장했던 어린이가 왼손을 오른쪽 가슴을 갖다 대자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아 준 게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호감도가 단숨에 상한가를 쳤다.
네이마르의 이런 품격은 2019년 7월 ‘노쇼(No Show)’ 사건으로 팬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극명하게 대비됐다. 당대 최고 스타였던 호날두는 당시 소속 팀 유벤투스 친선경기차 한국을 찾았으나 경기 내내 벤치만 지켰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출국 비행기를 탔다. 한때 국내 팬들에게 ‘우리 형’이라 불렸던 호날두는 그때부터 ‘날강두’ ‘느그형’이라 불리며 비호감의 대명사가 됐다.
우리도 팬 서비스 확실하고, 실력까지 출중한 세계적 스타가 있다. 바로 손흥민이다. 차 몰고 귀가하다 축구공을 들고 서 있는 한 어린이 팬을 보곤 곧바로 멈춘 뒤 사인해주는 모습, 경기 전 몸을 풀다 자기 이름을 외치는 소녀 팬에게 손 흔들어주고 나중에 생일 축하 영상까지 만들어 보내주는 모습. 국내외 소셜미디어에는 손흥민의 ‘팬 서비스 미담’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손흥민은 얼마 전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축구협회 경매 행사에서 자신의 애용품을 낙찰받은 팬들을 직접 초청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시간과 무대가 달라도 이런 장면에서 한결같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손흥민의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환한 미소다. 그는 항상 “축구를 할 수 있어, 팬들과 함께해서 행복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어렸을 때부터 아들에게 성실과 겸손을 가르치고, 아직도 “월드클래스가 아니다”라며 아들의 자만심을 경계하는 아버지 손웅정씨의 뒷바라지 속에서 초심을 지킨 덕택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올해 국내 무대에 복귀한 프로야구 SSG의 베테랑 투수 김광현도 팬 서비스의 ‘끝판왕’으로 통한다. 올해 1승을 올릴 때마다 사비를 들여 초등학생이나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야구장에 초청하고, 마음이 담긴 선물을 나눠준다. 현재 8승을 올린 그가 들인 선물 비용만 수억대에 이른다고 한다. 2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뛰다 국내 무대로 돌아온 그는 “야구를 통해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돌려드릴 게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타국에서 외로움 속에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면서 팬들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코로나로 2년 넘게 텅 빈 경기장 안에서 뛰면서 느낀 절실함은 똑같을 텐데 경기 안 풀린다고 팬들 앞에서 자기 감정을 그대로 폭발시키고, 경기력보다는 바깥 일탈 행위에 더 전력을 기울이는 ‘무늬만 프로’들이 넘쳐나는지라 이런 팬 서비스가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팬들은 냉정하다. 기대에 부응하는 스타에겐 아낌 없이 애정을 쏟지만, 배신감을 느끼면 사정없이 마음을 거둬들인다. 쌓기는 어렵지만, 한순간 허물어지는 모래성과도 같다. 순간의 성공에 도취돼 초심을 잊어버리고, 일부 팬들이 드리운 맹목적인 사랑의 장막에 둘러싸여 현실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결말은 말 안 해도 뻔하다. 우리는 그런 실패 사례를 스포츠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너무 많이 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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