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주 90시간 넘는데..노동시간 더 늘리라고?
윤 정부, 제도 개편 발표에 "노동자들 과로사 내몰 것" 비판
A씨는 오전 8시까지 출근해 오후 11시30분쯤 퇴근하는 날이 많다. 토요일에도 일을 해 일주일 노동시간을 따지면 90시간 가까이 된다. 회사와 맺은 근로계약서엔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으로 돼 있지만 현실은 딴판인 것이다. 게다가 회사는 연봉에 야근수당이 포함돼 있다면서 야근 식대 1만원과 택시비 정도만 지원했다. 초과 노동시간을 세세히 따지지 않고 하나의 급여로 일괄해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다.
B씨가 다니는 게임회사에는 ‘크런치 모드’가 있다. 중요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때 IT 개발자들이 초고강도로 노동하는 것을 말한다. B씨 회사는 개발이 끝날 때까지 주말과 휴일에 노동자들이 출근하도록 했지만 별도 수당은 주지 않았다. 근로계약서에 포괄임금제라는 말이 없는데도 암묵적으로 이뤄졌다. 직장갑질119가 26일 공개한 사례들이다.
근로기준법은 연장·휴일·야간근로는 통상임금의 1.5배를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사무직·연구직을 중심으로 포괄임금제가 퍼졌다. 노동계는 일한 만큼 대가가 지불되지 않고 장시간 노동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장해왔지만 현재까지 고용노동부는 제대로 된 규제 대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나아가 노동부는 현재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노동시간을 ‘월 단위’로 바꿔 일주일에 초과 근무를 12시간 이상 할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을 추진키로 했다. 노동부 발표대로 한 달 단위로 연장 근로시간을 관리하게 되면,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기본 노동시간 40시간에 연장 노동시간 48시간(4주 기준)을 더해 일주일에 총 88시간까지 일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직장갑질119는 포괄임금제와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제도 개편이 맞물려 노동자들을 과로사로 내몰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은하 노무사는 “포괄임금 계약이 남용되고 있다”며 “정부가 이를 거의 방치해왔는데 연장 노동시간까지 월 단위로 보겠다는 것은 초과근로 수당 자체를 아예 유명무실하게 만들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28시간으로 1500시간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400시간 이상 많다.
노동부는 제도 개편이 노사 모두의 선택권 보장이며, 노사 합의에 의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또 연장 노동시간의 월 단위 관리에는 노동자에 대한 건강 보호 조치가 병행될 것이라며 일주일 90시간에 달하는 노동은 현실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직장갑질119의 사례를 보면, 노사가 대등한 관계에서 노동시간을 논의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C씨는 입사할 때 포괄임금제에 대한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지만 포괄임금제 적용을 받았다. C씨는 “근로계약서 어디에도 (포괄임금제) 내용이 없지만, 회사의 산재 신청 관련 서류를 보니 ‘포괄’이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했다. D씨는 “일주일에 이틀은 철야를 했다”며 “출퇴근을 기록했지만 회사에서는 주 52시간제 위반을 은폐하기 위해 기록을 없앴다”고 했다.
노동부는 포괄임금제라고 하더라도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법적 조치를 한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개별 사업장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감독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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