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가드' 좋은사람들, '수렁의 2년' 마감할까

유경선 기자 입력 2022. 6. 2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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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도피 이종현 대표 구속
무자본 M&A로 ‘기업사냥’
수백억대 투자 손실 일으켜
소액주주·노동자들 ‘고통’
회삿돈 300억 횡령 혐의도
법원, 대표 직무정지 인용
상장폐지 피했지만 ‘험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알짜 속옷회사가 ‘기업사냥’을 당해 외부 감사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재무 상태가 망가지고 주식시장에서 거래가 정지됐다. 그렇게 되기까지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속옷기업 ‘좋은사람들’은 한때 국내 속옷시장에서 3대 회사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다. 방송인 주병진씨가 설립해 유명해졌고, 자사 브랜드 ‘보디가드’와 ‘제임스딘’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1997년 코스닥에 상장돼 2000년대에는 연매출 1000억원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건실하던 회사가 휘청이기 시작한 건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차남인 이종현 전 대표가 2019년 3월 경영권을 잡은 이후부터다. 경영실적이 빠르게 악화하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이 전 대표가 취임한 2019년 3월27일 주당 4235원이던 좋은사람들 주가는 1년 만에 1985원으로 떨어졌고, 거래정지 결정이 내려지기 전날인 2021년 3월22일에는 1055원이 됐다.

당초 이 전 대표는 좋은사람들 인수자금 150억원 대부분이 자기자본이라고 했지만 나중에 공시를 정정해 제이에이치W투자조합이 최대주주라고 밝혔다. 이 전 대표의 자금은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무자본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업사냥’인 셈이다. 제이에이치W투자조합에는 ‘라임사태’의 라임자산운용 자금이 들어간 코스닥 상장사들이 출자를 했다. 당시 M&A 관련 미팅에 참여한 최한우 감사는 “무자본 M&A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전 대표가 경영권을 장악한 뒤 회사 자금 수백억원이 속옷사업과 관련 없는 업체들로 흘러들어갔다. 2020년 3월 유상증자를 통해 348억원을 조달한 뒤 이런 식의 자금운용이 본격화됐다. 감사보고서 등에 따르면 좋은사람들의 자금은 2019~2020년 마스크·손소독제 업체나 화장품업체, 김치공장, 연예기획사 등에 투자됐다. 이렇게 투자한 돈의 상당 액수를 회수하지 못한 상태다. 이 전 대표는 회사 금고에 수표로 보관된 수십억원에 손을 댄 혐의도 받는다. 2021년 감사를 맡은 한울회계법인은 2020년 사업연도 재무제표 감사에 거절 의견을 냈다. 회사는 지난 5월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피해는 소액주주들과 노동자들 몫이었다. 회사가 골병드는 걸 알기도 어려웠다. 최재영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26일 “공시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 ‘개미 주주’가 회사 내부 문제를 파악하기에는 제약이 있었다”고 말했다. 직원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문경주 전국화섬노조 좋은사람들지회장은 “작년 6월 단체협약 해지 통보를 받아 현재 무단협인 상태”라며 “2008년부터 활동한 노조인데 교섭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소액주주들이 이 전 대표 측을 몰아내려는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소액주주들은 지난 1월7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이종현 해임’을 의결했지만, 새 경영진을 선임했다는 내용의 허위 이사록을 꾸민 이 전 대표 측이 법원 등기국에 먼저 신고해 공인받은 것이다.

이 전 대표의 전횡은 그가 지난 18일 도주 3개월여 만에 경찰에 체포돼 구속되면서 막을 내렸다. 이 전 대표는 회삿돈 300여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을 받는다. 그가 체포되기 전날에는 법원이 ‘이종현의 대표이사 직무 집행을 정지해달라’는 소액주주들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대표이사 직무대행자를 선임했다. 상장폐지라는 최악의 상황은 일단 피한 것이다.

그렇지만 회생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 한국거래소가 정한 개선 기간 내에 회사가 되살아날 여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고, 그동안 회사가 입은 수백억원의 손실을 메울 건실한 대주주가 나타나야 한다. 좋은사람들의 생사 여부는 올해 안에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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