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처벌법 시행 2년, 가해자들은 '아는 사람'을 노렸다

박고은 입력 2022. 6. 2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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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합성물 범죄 1심 판결문 45건 분석
선생님, 동창 등 지인 대상 범죄가 45%
게티이미지뱅크

선생님, 전 여자친구, 대학 동기…. ‘딥페이크’ 기술로 얼굴 사진과 성착취물을 합성해 유포하는 범죄의 가해자의 절반가량이 주변의 ‘아는 사람’을 노린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합성물 제작·유포 혐의로만 법정에 선 피고인의 94.4%는 집행유예·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불법함성물 범죄가 다른 성범죄보다 가볍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2020년 6월25일, 불법합성물 제작·유포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한겨레>는 시행 2년이 하루 지난 26일 대법원 판결서 열람시스템에서 ‘딥페이크, 허위합성, 허위영상’ 등을 검색해 확인할 수 있는 1심 판결문 45건(2020년 6월25일∼2022년 6월24일)을 분석했다. 법정에 선 46명(1건은 피고인이 2명) 가운데 불법합성물 범죄만을 저지른 피고인은 18명이었다. 이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명뿐이었다. 15명은 집행유예, 2명은 벌금형이었다. 불법합성물 제작에 더해 다른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은 27명이었고, 이 가운데 15명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12명은 집행유예였고, 1명에게는 벌금형이 내려졌다.

이름, 직업까지 함께 올려 피해 줘

46명의 피고인 가운데 21명(45.6%)이 지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피고인들은 학교 선생님, 친구의 동생, 대학 동기 등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피고인 ㄱ은 16회에 걸쳐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생들이나 동창의 동생, 모르는 사람의 얼굴 사진에 여성의 나체사진이나 남성의 성기사진 등을 합성·유포했다. 그는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불법합성 성착취물을 올릴 때 피해자의 이름, 직업 등과 함께 성적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표현을 적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직장·학교생활이 어렵게 됐고, 모르는 사람에게 원치 않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피고인 ㄴ은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 얼굴에 노출이 심한 여성 사진을 합성해 친구들에게 보냈다. 지인 대상 범죄를 저지른 21명 가운데 7명은 여성 연예인이나 모르는 여성을 대상으로도 범죄를 저질렀다. 나머지 14명은 모르는 여성, 11명은 여성 연예인 등 유명인의 불법합성물을 만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 사례도 있었다. 피고인 ㄷ은 한 채팅앱에서 13살과 17살 피해자에게 접근한 뒤, 얼굴 사진을 전송받아 여성 나체사진에 합성했다. 그런 다음 합성물을 피해자들에게 전송하며 “알몸사진을 보내지 않으면 합성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재판부는 그가 범행을 인정했고, 초범이라는 점을 들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피고인 ㄹ은 3년2개월에 걸쳐 텔레그램 등에서 의뢰를 받아 61명의 아동·청소년 얼굴 사진을 성행위 사진에 합성·유포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수천개 만들어도 집유…‘초범이라서’

피고인 가운데 다수는 범죄 전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46명 가운데 33명은 초범이었고, 6명이 동종 전과가 있었다. 1심 판결문에서 범죄 전력을 알 수 없는 피고인은 7명이었다. 피고인 ㅁ은 불법합성 영상물 제작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전 여자친구, 대학 동기와 선·후배, 친구의 전 여자친구 등 11명의 얼굴 사진을 성교 장면 등에 합성하는 방법으로 허위영상물 52개를 제작하고, 이를 에스엔에스에 올려 불특정 다수에게 퍼뜨렸다. 재판부는 ㅁ이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여성 연예인 얼굴 사진 등을 이용해 3081건의 불법합성 성착취물을 제작·판매한 피고인 ㅂ에게 재판부는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역시 초범인 점을 양형에 참작했다. 불특정 다수의 텔레그램 이용자에게 불법합성 성착취물 640여장을 팔아 200만원가량의 수익을 올린 피고인 ㅅ에게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초범인 점, 판매수익이 많지 않은 점, 대학 졸업 이후 취업을 예정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결문에 밝혔다.

오선희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는 “딥페이크 범죄는 다른 디지털 성범죄보다 아직은 가볍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며 “말 그대로 ‘허위영상물’이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직접 가해를 했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실제로 불법촬영물에 찍힌 것이나 다름없는 고통을 겪는다. 재판부도 딥페이크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피해자의 고통이나 전체적인 죄질 등을 고려해 양형 평가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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