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 '임신중지권' 판례 폐기, 우리는 3년째 입법 공백

한겨레 2022. 6. 2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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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24일(현지시각) 폐기했다.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가 규정한 '사생활의 권리'를 근거로 임신중지권을 인정했는데, 현재의 대법관 다수가 "헌법의 어떤 조항에도 '임신중지권'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지 않다"는 논리로 폐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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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지권]

지난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례의 공식 폐기를 결정하자 대법원 청사 앞에서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슬퍼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24일(현지시각) 폐기했다. 이에 따라 임신중지권 존폐 결정은 개별 주 정부와 주 의회의 권한으로 넘어가게 됐다. 50년 가까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보장돼온 권리가 흔들리면서 미국 사회가 큰 갈등과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여성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크게 후퇴하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어렵사리 임신중지권을 확대해온 우리 사회도 관련 입법의 공백을 해소해야 할 시급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이미 지난달 초 판결문 초안이 유출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 뒤 판결문 초안에 항의하는 시위가 뜨겁게 일어났으나, 대법원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가 규정한 ‘사생활의 권리’를 근거로 임신중지권을 인정했는데, 현재의 대법관 다수가 “헌법의 어떤 조항에도 ‘임신중지권’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지 않다”는 논리로 폐기한 것이다. 앙상한 형식논리가 상식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권리를 간단히 부정한 셈이다.

물론 미국의 보수적인 주에서 임신중지 허용 기준을 제한하는 입법들이 없지 않았고, 세계적으로도 이념 갈등의 소재가 돼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임신중지권은 당사자의 건강과 직결되고 사회적·경제적 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실존 문제이기에, 세계 주요국가에서 여성의 핵심적인 ‘자기결정권’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수백만의 미국 여성을 헌법의 보호 밖으로 내몰았을 뿐 아니라, 인류가 성취해온 보편적 인권의 가치마저 부정한다는 점에서 미국만의 문제를 넘어선다.

우리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의료인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임신중지가 66년 만에 형사처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헌재는 당시 ‘로 대 웨이드’ 판결 취지를 들어 ‘임신 22주’를 사실상 임신중지 허용 시한으로 제시하며, 2020년 12월31일까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도록 주문했다. 그러나 국회는 3년 넘게 손을 놓고 있다. 직무유기다. 이 때문에 임신중지 관련 의료행위가 대부분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등 당사자들의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국회는 당장 여성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반영한 입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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