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수익률 급락에도..美 직장인 펀드 납입중단 조짐없어
증시하락에 美 연금수익률 흔들
올 1분기 자산 1.8조달러 증발
"좋은 펀드 싸게 살 수 있는 기회"
美디폴트옵션 도입후 TDF 급증
퇴직연금 펀드투자 3500조원
한국증시 시총의 1.6배 큰 규모
◆ 디폴트옵션發 퇴직연금 빅뱅 ③ ◆
다음 날 메릴린치 수석부사장을 역임한 피터 황 스노든캐피털 아시아부문 대표의 스마트폰에는 퇴직연금과 개인자산을 맡긴 투자자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투자자들은 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주식과 펀드를 정리해야 할지 물었다. 황 대표는 "퇴직연금 투자자들에게는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며 "지금은 오히려 좋은 펀드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2006년 연금보호법(PPA)을 통해 401(k)와 같은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도입했다.
디폴트옵션 도입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근로자들 역시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에 퇴직연금을 방치해 뒀다. 디폴트옵션 도입 이후 미국 퇴직연금 자산 규모는 크게 증가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년간 미국 퇴직연금 자산은 2조8000억달러 늘었다. 하지만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증가 규모는 3조5000억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디폴트옵션 도입으로 미국 주식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생애주기형 타깃데이트펀드(TDF)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5년 말 미국 퇴직연금에서 투자된 TDF는 630억달러에 불과했지만 2010년 말 3060억달러로 5년간 400% 가까이 급증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잔액은 1조4390억달러(약 1798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코스피 시가총액(약 1895조원)보다 불과 100조원 정도 적은 규모다.
문제는 올해처럼 약세장, 하락장이 올 경우 어김없이 '원금 보장 상품에 뒀어야 한다'는 퇴직연금 투자 회의론이 고개를 든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자산운용협회(ICI)에 따르면 수익률 부진으로 지난해 말 39조3000억달러였던 미국 퇴직연금 자산 규모가 올 1분기 37조5000억달러로 1조8000억달러 감소했다. 대표적인 퇴직연금 계정인 401(k) 자산도 지난해 말 7조7000억달러에서 올 1분기 7조3000억달러로 줄었다.
하지만 미국 근로자들은 퇴직연금 납입을 중단하거나 퇴직연금 투자를 줄이는 방식엔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내 최고의 은퇴자산 관리 전문가로 꼽히는 이병선 모건스탠리 이사는 "역사적으로 미국 주식 시장은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퇴직연금은 마켓 타이밍을 보고 샀다 팔았다 하는 자산이 아니고, 그렇게 할 경우 꾸준히 투자했을 때와 비교해 수익률도 좋지 않다는 게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알렉산더 배스 뉴클리어스어드바이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은퇴가 오래 남은 젊은 층에게 최근 하락장은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며 "성장주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고 퇴직연금 투자를 계속하면 장기적으로 부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긴축, 전쟁 등 대내외 악재로 전 세계 증시가 휘청이고 있지만 미국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주식형 펀드, TDF 등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ICI가 최근 펴낸 자료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DC형 가입자 중 2.7%가 퇴직연금에서 돈을 다 뺐지만 올 1분기에는 이 비율이 1.8%로 낮은 수준이다. 납입 중단 비율도 가입자의 0.9%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주식, 채권, 현금 등 자산 배분을 조정한 투자자 비중도 2009년 1분기에는 7.3%까지 치솟았지만 올 1분기에는 4.7%로 지난해 1분기 5.5%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주식 시장 장기 성장과 퇴직연금 장기 수익률 상승의 선순환 구조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재 401(k) 중 주식형 펀드에 투자되는 규모는 2조8000억달러(약 3500조원)에 달한다. 거의 대부분이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를 담고 있다. 우리 증시의 코스피, 코스닥 합산 시가총액 2200조원보다 1.6배 큰 규모다.
[워싱턴DC·뉴욕 =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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