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과 '두 개의 문'

서정민 2022. 6. 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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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탑건> 이후 36년 만에 돌아온 속편 <탑건: 매버릭>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겨레 프리즘] 서정민 | 문화팀장

엔딩 크레디트 자막이 올라오며 장엄한 전기기타 연주가 울려 퍼졌다. 36년 세월의 간극을 단번에 이어주는 ‘탑건 앤섬’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만이 아니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들이 꽤 많았는데, 유독 중노년층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지점에서 벅찬 감흥을 느꼈을까.

1986년 개봉한 <탑건>은 완벽한 청춘의 영화였다. 푸릇푸릇한 톰 크루즈는 일도 사랑도 자신만만했다. 아픔과 좌절도 겪지만, 끝내 최고의 파일럿으로 거듭난다. 미성숙한 10대였던 내게 매버릭(톰 크루즈의 배역 이름)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도 일과 사랑 모두 쟁취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 예전 같지 않음을 자주 느낀다. 비슷한 결과물을 내려면 10년 전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들기 일쑤다. 체력도 달리고, 머리도 예전처럼 휙휙 돌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음만은 여전해서, 그 간극에서 오는 ‘현타’의 무게감이 상당하다.

<탑건: 매버릭>의 매버릭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전편에서 동료이자 라이벌이던 아이스맨(발 킬머)은 4성 장군이 됐건만, 매버릭은 아직 대령이다. 전투기 조종 실력은 녹슬지 않았어도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별로 없다. 그런 그가 탑건 훈련소 교관으로 돌아오고, 결국엔 특수작전에 직접 투입돼 완수해내는 걸 보고는,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건 완벽한 대리만족이었다. 박혜은 <더 스크린> 편집장이 왜 “모든 현업 플레이어를 위한 응원가”라고 평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영화를 보며 느낀 건 또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밀려난 극장의 건재함이다. 삼면의 스크린이 나를 빙 둘러싼 ‘스크린엑스’관에서 봐서 꼭 내가 전투기에 탄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백명이 같은 공간에 모여 함께 울고 웃고, 특히 나와 같은 중년 관객들이 더더욱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라 생각하니, 왠지 더 큰 위로와 응원을 받은 것만 같았다.

<탑건: 매버릭>을 보기 전날인 24일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 경험을 했다. 이날 밤 서울 용산역 광장이 극장으로 바뀌었다. 상영작은 2009년 벌어졌던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 이 영화의 개봉(2012년 6월) 10주년을 기념해 제작사 연분홍치마가 용산참사 현장이 보이는 용산역 광장에서 야외 상영회를 연 것이다. <두 개의 문>은 진압 경찰특공대원의 시선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며 국가폭력에 대한 질문을 던진 수작으로 호평받았다.

24일 밤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두 개의 문> 10주년 야외 상영회 현장. 왼쪽으로 용산참사가 벌어졌던 남일당 터에 들어선 용산센트럴파크가 보인다. 서정민 기자

2009년 1월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은 남일당 터에는 지금 용산센트럴파크라는 초고층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섰다. 마천루 스카이라인이 상징하는 부동산 개발에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이제는 권력의 중심지까지 된 용산 땅 한가운데서, 13년 전 여기서 무슨 일이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를 되새기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잊고 있던 안타까움과 분노가 되살아나는 동안, 나는 자꾸만 용산센트럴파크를 흘끗거렸다.

중간에 비가 살짝 흩뿌리기도 했지만, 대다수 관객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영화가 끝난 뒤 무대에 오른 연분홍치마 관계자는 “관객으로 연대해주는 힘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영화를 연출한 김일란 감독은 “여기 광장에서 영화가 상영되니, 13년 전 참사가 지금 현재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경찰은 철거민을 향해 “떼쓰는 집단” “무관용 원칙”을 강조했다. 검찰은 정권에 불리한 참사 관련 수사 기록을 숨기고 폐기했다. 2022년 경찰은 이동권 보장 시위를 하는 장애인들에게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하겠다”고 선포했다. 검찰은 여전히 정권에 득이 되는 수사에만 몰두한다.

요 며칠 새 극장은 나에게 위로와 응원도, 분노와 깨침도 줬다. 함께여서 그 힘이 더 컸다. 여러분도 함께 느껴보면 좋겠다.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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