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진의 햇빛] 바다 얼음이 날씨를 바꾼다

한겨레 2022. 6. 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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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에서 바다로 뻗어 나온 얼음은 기온이 오르면서 갈라지고 쪼개진다.

바람에 밀리고 해류에 실려, 얼음 조각은 바다 위를 떠다닌다.

기온이 올라 일단 얼음 면적이 줄어들면, 그만큼 지표는 더 많은 햇빛을 받으며 온도가 상승한다.

덩달아 대기의 기온이 오르고 이로 인해 극지의 얼음층은 더 많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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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진의 햇빛]

영화 <타이타닉> 스틸컷.

이우진 | 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극지에서 바다로 뻗어 나온 얼음은 기온이 오르면서 갈라지고 쪼개진다. 바람에 밀리고 해류에 실려, 얼음 조각은 바다 위를 떠다닌다.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빙산은 지나가는 배들을 집어삼키곤 했다. 영국에서 갓 건조한 호화유람선 타이태닉호도 움직이는 암초를 피해 가지 못했다. 환호하는 인파의 박수를 받으며 처음 항해에 나선 배는 끝내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다. 결과론이지만 이상기후로 북서풍이 찬 공기를 끌어내려 해수 온도가 낮아진데다 바람에 떠밀려, 빙산이 여느 때보다 훨씬 저위도까지 남하한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어야만 했다.

우리나라 근해에 이런 빙산이 떠다니지 않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물론 북한의 대동강 하류로 이어지는 남포 앞바다는 겨울에 얼기도 한다. 하지만 빙결 해역은 그리 넓지 않고 봄이 오면 빠르게 녹아내린다. 주변에서 유빙을 제대로 관측하려면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북쪽 바다까지 쇄빙선을 타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유빙의 체취를 느낄 방법이 있다. 초여름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동해를 거쳐 우리나라로 확장해 올 때 바다 공기를 마셔보면 된다.

겨우내 얼어 있던 극동 러시아 주변 해역은 두꺼운 얼음층으로 덮여 있다. 그러다가 기온이 오르면 일부는 녹기도 하고 쪼개지며 유빙이 된다. 게다가 주변 육지의 만년설에서 얼음물이 강을 따라 흘러내린다. 바다 위의 공기도 덩달아 차가워지며 무겁게 내려앉으면서 오호츠크해 고기압 기단이 형성된다. 한편 여름으로 가면서 아시아 대륙은 햇빛을 많이 받아 달궈진다. 대륙 위의 공기도 따뜻해지며 기압이 낮아진다. 더워진 대륙의 열적 저기압과 대조되면서, 오호츠크해의 차가운 고기압은 더욱 발달하는 모양새를 갖춘다. 이 기단의 세력이 커져 동해로 남하하면 차고 습한 공기가 동해안으로 들어온다. 이런 때 해안으로 나가 해풍을 맞으면 오호츠크해의 유빙을 감싸 안은 대기의 체취를 직접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서늘한 해풍이 태백산맥에 부딪히면 영동지방은 안개가 끼거나 이슬비가 내린다. 구름이 해를 가려 음습한 날이 계속되면서 작물은 잘 자라지 못해 냉해를 입기 쉽다. 동해안 지방에서 을씨년스런 날씨가 이어지는 동안, 서쪽 내륙지방에서는 소나기가 하루에도 몇 차례 반복한다. 낮 동안 햇빛이 대지를 달구며 그 위에 앉은 찬 공기가 불안정해진 탓이다. 계절은 여름으로 가는데 날씨는 봄을 향해 역주행하는 느낌이 든다면, 저 멀리 오호츠크해로 떠밀려 내려온 유빙과 찬 바다를 주목해 보아야 한다.

얼음은 햇빛을 차단하여 지표가 열을 받는 것을 막는다. 그린란드나 남극 대륙에 두껍게 쌓인 얼음층은 차갑게 식힌 공기를 더운 곳으로 흘려보내 온난화를 저지하는 최후의 보루다. 기온이 올라 일단 얼음 면적이 줄어들면, 그만큼 지표는 더 많은 햇빛을 받으며 온도가 상승한다. 덩달아 대기의 기온이 오르고 이로 인해 극지의 얼음층은 더 많이 녹아내린다. 도처에서 발생하는 이상 한파는 극지의 얼음이 녹아내리며 일으키는 발작으로, 온난화를 역설적으로 증언한다. 기온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빠른 속도로 극지의 얼음층이 사라지며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불운한 전망이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타이태닉호가 가라앉던 밤, 바다는 유난히 고요하고 잔잔해 다가선 재앙의 전조는 수면 아래 가려 있었다. 주변을 지나던 배들이 빙산이 떠다닌다는 경고를 수차례 전했건만 듣는 이가 없었다. 멀리 내다보는 쌍안경은 사물함에서 자는 동안, 망루의 지킴이들은 눈앞의 상황에 매달렸다. 속력을 높이고 탑승 좌석은 늘린 대신, 위험에 대비한 구명보트는 턱없이 부족했다. 우리가 처한 기후위기의 현실이 왠지 타이태닉호의 처지와 닮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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