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마이너리그가 없다

한겨레 2022. 6. 26. 15:5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심짱님이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건 '놀기 '다 . 투자의 포트폴리오는 몰라도 놀이의 포트폴리오 구성은 완벽하다 . 낚시로 시작해서 자전거 타기 , 탐조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 과학책 덕후이기도 하다 . 중년에 읽기를 시작해서 이제는 독서량이 엄청나다 . 이해가 잘 안되면 책을 통째 필사하다시피 하며 읽는다 . 사회과학 , 인문학으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 " 40대 초반 처음 만났을 땐 참 유아적이었어요 . 세상은 흑과 백 ,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는 걸 , 이면에 훨씬 다양한 것이 감춰져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 책 읽고 공부하면서 엄청 성장했지요 ." 중년에 만나 결혼한 심짱님 옆지기의 고백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뇌와 마음은 말랑말랑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장태희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지난 4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부터 동네가 들썩였다. 동네의 ‘형님’이자 감초인 심짱님 회사가 이사하는 날, 힘 좀 쓴다는 사내들이 총출동했다. “어째 이삿짐보다 일꾼들이 더 많네.” 사무실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데 심짱님은 신이 났다. 거의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심짱님 회사 이삿날은 마을잔치처럼 들썩인다. 거래업체 사정 탓에 멀리 옮겼다가 동네 옆으로 돌아오는 날이라 그런지 더 신이 났다.

심짱님은 책 유통회사를 운영한다. 직원이라고 해봐야 알바 포함 두 명이다. 출판시장은 점점 쇠락하고, 영세한 사업장이라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 월급을 높여 정직원 공고를 내도 오지 않는다. 알바 구하기조차 쉽지 않다. 책은 우아해 보여도 책 유통은 힘든 일이다. 무거운 책을 짐 져야 한다. “내가 봐도 미래가 안 보이는 일인데, 청년들이 오려고 하겠어요?” 책 창고 안에 자리한 회사는 겨울엔 춥고 여름엔 찜통이다. 스스로를 ‘책 운송 노동자’라고 말하는 심짱님의 삶은 세속적 잣대로 보면 딱히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도 회사 덕분에 밥걱정 없이 살았고, 아이 교육도 시켰으니 감사하죠.” 그의 만족은 진심이다.

먹는 데도 진심인 심짱님, 늘 달고 사는 말이 “밥 먹자”다. 단골 국숫집에서 이웃과 국수 한 그릇씩 나누는 소박한 회식을 주도한다. 낚시광인 그가 바다낚시를 다녀온 날은 여지없이 ‘벙개’가 성사된다. 잡은 생선을 손수 회 뜨고 소주 한잔 곁들인다. 한번 이 맛을 본 이들은 “이제는 횟집에서 사서 먹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오미크론이 대유행하던 지난봄, 동네의 몇 안 되는 ‘생존자’였던 심짱님은 ‘코로나 산타’가 됐다. 우리 가족도 격리 중이던 어느 날, 문자를 받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뜨끈한 국물, 야채, 칼국수 등이 봉투에 가득 담겨 있었다. 목이 심하게 아파 음식도 못 삼키던 우리 부부는 따뜻한 칼국수 국물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빵, 도시락, 과일 등 산타의 선물 덕분에 격리를 어렵지 않게 버텼다. 그렇게 산타를 만나 따뜻해진 이들이 여럿이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 해요.” 심짱님의 지론이다. 많은 연구가 사회적 관계를 행복의 요인으로 꼽는다. 아플 때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우울할 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보다 훨씬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도 심짱님을 부러워한다.

심짱님이 마냥 ‘퍼주기만 좋아하는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해요. 이기적으로 살 거예요”라고 말하곤 하는 그다. ‘과도한 공감’도 경계한다. “공감을 하다 보면 말하는 사람 쪽에 맞장구를 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균형을 잃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가까운 관계일수록 적절한 거리두기와 경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다.

심짱님이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건 ‘놀기 ’다. 투자의 포트폴리오는 몰라도 놀이의 포트폴리오 구성은 완벽하다. 낚시로 시작해서 자전거 타기, 탐조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과학책 덕후이기도 하다. 중년에 읽기를 시작해서 이제는 독서량이 엄청나다. 이해가 잘 안되면 책을 통째 필사하다시피 하며 읽는다. 사회과학, 인문학으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40대 초반 처음 만났을 땐 참 유아적이었어요. 세상은 흑과 백,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는 걸, 이면에 훨씬 다양한 것이 감춰져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책 읽고 공부하면서 엄청 성장했지요 .” 중년에 만나 결혼한 심짱님 옆지기의 고백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뇌와 마음은 말랑말랑하다.

문득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읽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통계를 보면 미국 프로야구선수 중 메이저리그에서 한번이라도 뛰어본 비율은 고작 7.4%. 대부분은 평생 마이너리그로 시작하고 끝난다. 메이저리거 스타는 그야말로 꿈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거가 되지 못한 이들도 자기 방식으로 인생을 살고, 원래 원했던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곤 한다는 이야기다. 삶에는 마이너리그가 없다.

세상에는 모순이 있고 어려움도 있다. 직원을 못 구해 늘 무거운 책더미를 나르는 심짱님의 세상도 그렇다. 그 힘든 세상에서 심짱님은 자기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안다. “어린 시절 원 없이 노는 게 꿈이었는데, 이미 꿈을 이뤘어요 .” 이루지 못한 것, 가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현재를 즐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며 한방의 큰 성취보다 소소한 즐거움을 발굴한다. 덕분에 우리가 함께 행복하다. 심짱님이 만드는 마이너리그 없는 세상에서.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