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익진의 무비셰프 <35> 장국영(張國榮, Leslie Cheung)

정익진 시인 2022. 6. 2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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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황별희의 히어로, 비운의 홍콩 스타

장국영이란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그의 영화보다 그의 죽음에 무게가 더 실린다. 그는 왜 죽었을까. 떠도는 소식들에 귀 기울여보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어두운 이미지들이 검은 커튼 자락처럼 내 눈앞에서 흔들거린다. 영화배우, 가수로서 그의 활동과 그의 면모를 살펴보더라도 죽음 당시에도 전성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죽었어야 할 이유의 타당성에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자신이 머물던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香港文華東方酒店) 24층 객실에서 몸을 던졌다. 향년 46세.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소문이 떠돌았다. 삼합회(三合會: Chinese Mafia 중국계 마피아, 좁게는 홍콩 넓게는 중화권 마피아를 일컫는다. 일본 야쿠자와 더불어 아시아의 대표적 범죄 조직)에서 살해했다는 음모론부터 천안문 발언 등 공산당에 비판적이었던 탓에 중국 정부가 살해했다는 소문, 그의 동성 애인이라고 알려진 당학덕(唐鶴德)이 유산을 노리고 살해했다는 이야기도 한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고 전한다.

당시 유행한 전염병 사스(SARS)의 위험에도 그의 추도식에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팬이 찾아와 명복을 빌었다. ‘영웅본색’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주윤발 형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와서 장례식에 참석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별처럼 박혀 있는 배우이자 가수이며 예술가였던 장국영. 검색해보면, 생전 장국영의 자연스러운 생활 모습을 찍은 사진을 찾기가 무척 어려움을 알게 된다. 작품 속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런 사진은 더욱 귀하게 다가온다.


내가 장국영을 처음 본 것은 물론 영화 ‘영웅본색’에서였다. 무 비셰프 <29> 주윤발 편에서 이 영화에 대해 많이 언급했다. 장국영은 신선했다. 현대적인 헤어스타일과 앳된 얼굴과는 전혀 딴판인 화려하고 강렬한 연기로 그는 관객을 매료시켰다. 반항기로 가득한 그의 표정과 행동은 그의 역할이 록밴드 보컬이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나 ‘영웅본색’에서 그의 역할은 경찰이었다. 단정하고 모범적인 이미지, 거기에다 투철한 경찰 정신으로 무장한 경찰이었다. ‘영웅본색’ 속 몇 줄의 대사를 살펴본다.

적룡(송자호 역): ‘신이 있다고 믿어?‘

주윤발(소마/마크 역): ’응, 내가 신이야. 신도 인간에서 나온 거고.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것. 그가 바로 신이지‘

적룡: ’근데 때로는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잖아.

주윤발: ‘도박할 때는 질 수도 있는 거지’

장국영의 많은 작품 중 ‘패왕별희’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이 셋을 골라보았다.

배우 장국영의 젊은 날 모습.


먼저 ‘아비정전’(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 1990년, 왕가위가 감독한 홍콩 영화다. 이 영화를 보긴 보았는데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마도 ’띠융‘ ’띠융‘하는 기타 선율 사운드트랙과 치수가 큰 남방셔츠를 입은 뒷모습의 장국영이 야자수 나무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장면이다. ‘아비정전’이나 루쉰의 문학작품 ‘아Q정전’, 이 제목들을 볼 때마다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왠지 ’아‘를 자꾸 감탄사로 여긴다. 아비는 아비의 정전(正傳)을 아Q는 아Q의 정전(正傳)을 말한다. 그러니까 ’아비‘와 ’아Q‘라는 사람의 일대기 같은 것, 바르게 전하여 오는 전기(傳記). 또는 바른 전통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주인공 아비는 사회적 위치를 따지면 별 볼 일 없는 인물이다. 경상도 말로 놈패이, 또는 백수 또는 탕아, 또는 타락천사다. 그렇다고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사기를 치는 인물은 아니다. 고독하고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 그리고 항상 태도가 삐딱하고 세상에 냉소적인 태도를 취한다. 닻을 내리고 정착해 사는 스타일이 아니다. 거기에다 바람둥이다. ‘아비’는 날마다 오후 3시가 되면 매표소에서 일하는 ‘소려진(장만옥 분)’에게 쳐들어간다. 그는 그녀에게 이 순간을 영원처럼 기억하게 될 거라는 ‘택도 없는’ 말을 해서 그녀 마음을 흔든다.

소려진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전형이다. 결국 그녀는 ‘아비’를 사랑하게 되어 그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그녀의 오류다. 구속당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비’에게 결혼은 어림도 없다. ‘소려진’은 그를 떠난다. 헤어진 ‘아비’는 댄서인 ‘루루(유가령)’와 또 다른 애정의 행각을 벌인다. 하지만 이 관계도 오래갈 리 없다. ‘루루’에게도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아비’는 친엄마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나게 된다. 친엄마는 아비를 만나주지 않는다. 상처받은 아비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앞서 언급한 야자수 길을 걸어간다. 친엄마에게 자기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는 사람도 꽤 있다. 시적인 대사들이 있다.

장국영(왼쪽)이 주연한 영화 ‘아비정전’ 한 장면.


아비: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아비: 1960년 4월 16일 세 시 일 분 전. 그 순간 당신은 나와 함께 있었어요. 당신 덕분에 난 그 일 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군요. 지금부터 우린 친구예요. 이건 당신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죠. 이미 지나간 시간이니까.

“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그는 1분을 가리키면서 영원히 날 기억할 거라고 했어요...”

장국영이 속옷 바람으로 거울 앞에서 맘보춤을 출 때 나온 음악이 있다. ‘마리아 엘레나’(Maria Elena)란 곡이다. 아주 오래전 기타 연주로 또는 노래로 들은 적이 있어 꿈속 메아리처럼 아득하게 들려온다. 스페인 출신, 미국 뉴욕에서 1940 ~ 50년대 라틴음악을 주로 연주하던 사비에르 쿠가트(Xavier Cugat)가 편곡·연주한 것이고, 노래는 밥 에벌리(Bob Eberly)가 영어 가사로 노래한 ‘마리아 엘레나(Maria Elena)’인 듯하다. 원곡 노래 가사가 있어 소개한다.

‘아비정전’의 유명한 대사가 자막으로 새겨진 화면.


 Tuyo es mi corazon 그대는 나의 마음

 Oh sol de mi querer 오 나의 태양

 Mujer de mi illusion! 내 환상의 여인이여!

 Mi amor te consagre 내 사랑을 그대에게 드리리

 Mi vida la embellece Una esperanza azul 내 인생은 그 푸른 희망으로 장식되고

 Mi vida tiene un cielo Que le diste tu 그대가 마련해 준 하늘 안에 넣어두리

 Tuyo es mi corazon 그대는 나의 마음

 Oh sol de mi querer 오 나의 태양

 Tuyo es todo mi ser…Tuyo es, mujer…내 행동 하나하나 그대의 것…. 여인이여…

 Ya todo el corazon Yo lo entregue 나의 온 마음은, 이미 그대의 것이며

 Eres mi fe 그대는 나의 믿음

 Eres mi Dios 나의 신앙

 Eres mi amor 나의 사랑

왕가위 감독의 음악 선정은 항상 탁월하다.

장국영(張國榮 1956년생)은 영국령 홍콩 구룡반도에서 태어났다. 정확히는 가수로 데뷔한 배우 겸 가수다. 영어로는 Leslie Cheung(레슬리 청)으로 불린다. 레슬리라는 이름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지적인 면모를 보인 애슐리 역으로 나온 배우 레슬리 하워드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영웅본색’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주윤발 성룡 양조위 장학우 유덕화 매염방 장만옥 등과 함께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다. 1977년 1989년 1995년 1998년 1999년 2002년 모두 여섯 차례 방한했다. 방한하여 애처롭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그의 영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패왕별희’(Farewell My Concubine, 覇王別姬)는 1993년 중국 천카이거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작가 이벽화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원작자가 각본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패왕별희’는 항우의 비극적인 말년을 담은 역사극이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경극 작품이 영화의 중요한 소재다. 제4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작품이며, 한국에는 1993년 개봉했다.

개인적으로 장국영 영화 중 가장 마음에 들고 좋아하는 영화다. 비극적 아픔이 가슴에 돋는 칼처럼 느껴진다. 연기의 신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나의 왼발’에서 주인공 크리스티 역을 맡아 인생 연기를 보여준 것과 같이, 미국 배우 메릴 스트립이 ‘소피의 선택’에서 소피 역을 맡아 인생 연기를 보여준 것과 같이, 장국영은 ‘패황별희’에서 청데이(우희) 역을 맡아 인생 연기를 너무나 절실하게 표현하였다. 영화 속에서 장국영은 여자 주인공 청데이(우희) 역을 맡았다. 우희는 패왕의 여자다.

영화 ‘패왕별희’ 속 장국영.


경극에는 분장이 중요하다. 눈을 강조하기 위해 스모키한 눈화장을 하고 눈가와 양쪽 볼을 여성스럽게 보이게 하려고 붉은색을 칠한다. 언제나 슬픔에 사로잡힌 우희의 눈동자는 양쪽 볼의 붉은색 분장 때문인지 슬픔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슬픔에 불타오르는 눈동자를 느낄 수 있다. 비극적인 너무나 비극적인 청데이(우희)의 인생을 감독 천가이거의 스크린을 통하여 여실히 목격할 수 있다. 작은 얼굴에 예쁘장하게 생긴 우희 역은 장국영 외에는 대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다. 세계적인 배우 공리도 주인공 대열에서 빼놓을 수 없다. 장대한 서사시 같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대사들을 모아 보았다.

 1. 한번 웃으면 온 세상이 봄이요, 한번 흐느끼면 만고에 수심이 가득하니(一笑萬古春, 一啼萬古愁)…당신을 노래한 것 같군. 一

 2. 인간의 삶은 무상하여 봄날의 꿈과 같고 (人生在世如春夢)

 3.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서 계집아이도 아닌 것이 머리를 깎여…

 4. 일생을 같이 하기로 했잖아. 일 년, 한 달, 일 초라도 같이하지 않는다면, 그건 일생이 아니야…

 5. 오늘 소인배가 난리를 피워 하늘에서 재앙이 내린다고? …아냐, 틀렸어! (재앙은)스스로가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서는 거야!!! 업보다! 업보야아아!!)

 6. 그(청뎨이)는 경극에 미쳤습니다. 경극에 미쳐서…관객이 누구라도 상관없이 노래를 했습니다.

 7. 두려워. 구름 사이로 높은 건물의 난간에 서 있는 꿈을 꾸었지. 뛰어내리고 싶었는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해피투게더’ 속 장국영과 양조위.


‘해피 투게더’(春光乍洩, Happy Together·1997년)는 아르헨티나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남자 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퀴어 무비, 게이 무비라 할 수 있다. 장국영과 양조위 주연. 왕가위 감독은 이 영화로 1997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나는 계기를 몇 번 놓친 탓에 이 영화 전체를 보지는 못했다. 양조위와 장국영의 모습과 연기가 참으로 인상 깊었다.

몇 가지 일화가 있어 소개한다. (나무위키 참조)

 1. 아르헨티나에서 ‘해피투게더’를 촬영하던 중 장국영이 장염에 걸려 크게 힘들어할 때, 양조위가 직접 그를 간호해 주었는데 이를 본 왕가위 감독은 영화 속 보영과 아휘와 똑같다며 흐뭇해했다고 한다

 2. 장국영 사후, 장국영의 번호를 지우지 못한 양조위가 전화를 걸었고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장국영의 녹음된 목소리를 듣고서 “우리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남겼다며 장국영 10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밝혔다. ij07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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