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신라인은 자갈돌로 바둑을 즐겼을까?..이색 '고고학 실험'

이세영 2022. 6. 2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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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재발견 ⑤ 바둑을 스포츠 외교 수단으로도 활용한 신라인

(경주=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경주 월성에 거주했던 신라 왕족과 귀족의 공동묘지, '쪽샘 유적'에선 지난 2020년 좀처럼 보기 힘든 유적이 발견됐다. 지름 30m에 이르는 대형봉분을 갖춘 돌무지덧널무덤에서 금동관, 금귀걸이 등 보물과 함께 바둑돌로 보이는 자갈돌이 대거 발견된 것.

무덤의 주인공은 1천500여 년 전, 키 150cm 내외의 신라 왕족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무덤 주인공의 발치에서 860여 점의 균일한 크기를 지닌 바둑돌 모양 자갈돌이 출토됐다. 과거에도 황남대총 남분, 천마총, 용강동 6호분 등 5~6세기 신라 고분에서 바둑돌로 추정되는 자갈돌이 출토되긴 했지만, 쪽샘 44호분과 같이 많은 양이 한꺼번에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쪽샘유적에서 바둑돌을 처음 발견한 김현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은 "당시 토기들을 노출하는 중에 작은 냇돌이 확인되어 처음엔 유물이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추가로 더 노출해보니 많은 양이 확인돼 유물로 확신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쪽샘 44호분 자갈돌은 1~2cm의 둥글고 납작한 형태를 보이고, 어두운색과 밝은색으로 구분이 되는 편이다. 신라 시대의 바둑돌은 모두 신라 최고 지배층의 무덤에서 출토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쪽샘 44호분에 묻힌 신라 왕실의 여성이 죽음 이후 세계에서도 바둑을 둘 수 있도록 바둑돌 860점과 묻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견해가 나왔다. 하지만 860점 가운데 흑돌과 백돌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돌들이 있어 바둑돌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지난 4월 말, 이 자갈돌 유물의 정확한 용도를 파악하기 위한 이색 고고학 실험이 진행됐다. 경주 쪽샘 44호분 바둑돌로 바둑을 두는 '천년수담(千年手談)-신라 바둑 대국'이 4월 28일, 바둑TV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유튜브 채널에서 동시 방영된 것. 아마 7단인 김수영 기사와 아마 6단인 홍슬기 기사가 쪽샘 44호분 발굴조사 현장에서 고분 출토 자갈돌로 바둑 대결을 했다.

김성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 행사는 단순 이벤트가 아니라, 출토된 신라 시대 바둑돌을 갖고 실제로 바둑이 가능한지, 어떻게 가능한지 알아보는 일종의 '실험고고학'이라 할 수 있다. 바둑의 역사와 신라인의 문화를 밝힐 수 있는 연구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의미"고 설명했다 . 출토 자갈돌이 훼손, 분실되지 않도록 철저히 사전에 안전진단을 거치고, 대국도 보존처리 전문가의 입회하에 진행됐다. 대국 해설, 한·중·일 바둑 역사 이야기, 쪽샘 44호분 발굴조사 및 바둑대국에 관한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날 치러진 '고고학 실험'을 토대로 자갈돌 860점이 바둑돌이 맞는지 등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문헌상으로 보면 신라 시대에 바둑은 왕과 같은 최고 지배층이 향유한 놀이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효성왕(孝成王)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현명한 선비인 신충과 궁의 뜰 잣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었는데….' - '삼국유사' 권5 피은8 신충괘관

또 중국 역사서인 '구당서'와 '신당서'에선 신라에는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많았고, 중국에서 사신을 보내 신라인과 겨뤘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신라 사람들은 바둑을 잘 두었으므로, 솔부병조참군(率府兵曹參軍) 양계응(楊季膺)을 부사(副使)로 삼았는데, 신라의 바둑 고수는 모두 그 밑에서 나왔다' - '신당서' 권220 동이전 신라조

이러한 문헌 기록을 통해, 신라 왕실은 일찍이 바둑을 유희로 즐겼을 뿐 아니라 중국 등 다른 국가와 교류하기 위한 '외교 스포츠'로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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