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훼손'이 공존하는 청와대의 '기묘한' 풍경

김예진 2022. 6. 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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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동안 무방비로 이뤄진 청와대 개방
문화재청, 청와대 이용·대관 규정 6월12일부터 적용
청와대 개방 첫날인 5월 10일 청와대에 입장한 관광객이 잔디 위에 돗자리와 야영의자를 깔고 앉아 음식을 먹거나, 나무를 의자 삼아 깔고 앉는 과정에서 조경을 훼손하고 있다. 김예진 기자
“캭 퉤!”

새들의 지저귐 소리 사이로 날카로운 음성이 귀를 때렸다. 지난 17일 청와대 경내, 본관에서 녹지원으로 향하던 길에서 마주오던 장년층 남성이 바닥에 침을 뱉고 당당했다. 그는 일행 서너명과 함께 왁자지껄 웃으며 지나갔다.

인도를 벗어나 잔디 위로 올라가 전화통화를 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잔디를 밟은 발 바로 옆에 ‘꽃이 아파요.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었다.

3일 후인 지난 20일, 또 한번 방문한 청와대에서는 대정원을 둘러싼 주변 정원에서 한 관람객이 파란 잔디 위에 철퍼덕 앉아 본관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관람객이 골라 앉은 자리 옆에는 이미 잔디가 대부분 죽어 누런 흙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뾰족한 소나뭇잎과 가지가 드리워진 부분만 사람들이 다가가지 못한 탓인지 잔디가 살아남아, 원래의 푸른 색을 남겨두고 있었다. 정원은 전체적으로 얼룩덜룩해 보였다. 불과 41일 전까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들이 관리하던, 어딜봐도 푸르렀던 정원과 조경이었다. CNN, BBC 등 전 세계 곳곳으로 송출되는 뉴스에 대한민국 소식이 나올 때마다 본관의 푸른 기와의 본관을 둘러싼 푸른 조경이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로 비춰졌던 곳이다.
현장 관계자는 “관리에 노력 중이지만, 아무래도 사람 손이 너무 많이 탄 곳은 (잔디를 살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개방한지 41일, 청와대는 밀려든 인파의 웃음과 국가유산이 급속도로 훼손되는 현장이 공존하는, 기묘한 풍경이었다.

오버투어리즘과 훼손은 개방 첫날 이미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10일 청와대 정문이 열렸을 땐, 문화재청이 관리주체로 지정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관람존과 보호존이 정해지지도 않았다. 관람규칙도 없었다. 무질서가 당연했다.

정문이 열리자 통제를 받지 않은 관람객들은 마치 침략하듯 입장했고 점령하듯 경내에 퍼졌다. 돗자리와 김밥, 껍질이 나오는 과일을 가져온 사람이 많았고 아직 ‘점령’되지 않은 자리가 보이면 경쟁적으로 자리를 깔았다.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나무에 올라가 앉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나무가 어떤 수목인지, 천연기념물인지 아닌지, 어느 정치적 사건이나 외교의 역사를 가진 나무인지는 아무 설명도 없었고, 아무도 관심이 없어보였다. 문화재청이 대통령실로부터 지난달 23일 관리권한을 위임받은 뒤, 부랴부랴 만들어 공개한 훈령인 청와대 관람규칙 상으로는 모두 금지된 행위 및 소지품이다. 

대통령 집인 관저 창문 앞에 그나마 세워놓은 통제선이 있었지만, “여기가 어제까지 문재인, 김정숙이가 살던 곳이가?”라며 다가가는 관람객의 관음증에 가볍게 무시되는 모습이었다.
넷플릭스의 가수 비 예능프로그램 촬영을 앞둔 지난 17일 오전, 본관 앞 대정원에 무대시설이 청와대 대정원에 설치되고 있다. 촬영은 잔디보호매트를 깔고 진행됐으나 3일 후인 20일, 주말 새 문화재청 직원들이 일반 관람객을 맞이하기 위해 정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땅이 파인 흔적들이 보인다. 대정원은 해외 정상이 한국에 왔을 때 환영행사를 하던 곳이다.
김예진 기자
문화재청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문화재청 훈령 제607호 ‘청와대 관람 등에 관한 규정’을 공개하고 6월12일자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 규정은 국유재산법 제28조 제3항에 따라 문화재청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장이 대통령실로부터 관리위임받은 청와대 권역에 대한 개방, 관람, 촬영 및 장소사용 허가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정의되고 있다.
지난 20일, 청와대 대정원 주변 잔디가 죽어 누렇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힘든 소나무 바로 아래만 동그랗게 푸른 잔디가 살아남았다. 누런 흙바닥을 드러낸 곳과 뚜렷한 대비를 보이는 풍경이 처참하다. 김예진 기자
개방일과 개방시간, 관람신청 및 입장, 무료관람, 관람객 행위 제한, 반입금지 물품, 손해배상과 면책, 촬영허가, 장소사용 허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규정에 따르면 지난 17일 청와대 경내에서 진행된 해외 동영상서비스업체(OTT) 넷플릭스의 가수 비 예능프로그램 촬영이 아무 비용을 내지 않고 무료로 진행된 것과 같은 사례는, 향후에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장소사용허가 규정에 따르면, 영리행위를 포함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장소사용을 허가할 수 없다. 청와대 권역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특정 단체나 계층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 명백한 경우, 청와대 권역 내 시설물과 조경 등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정치적·종교적 편향성으로 국민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일반 관람객의 관람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도 해당한다. 장소사용으로 인해 시설물과조경을 훼손했거나, 손해배상 및 원상회복 요청 등에 불응한 적이 있는 기관·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도 장소사용을 허가할 수 없다. 
지난 17일 청와대 경내 녹지원 부근에 뒤늦게 보호존이 설치 돼 있다. 개방 직후에는 이런 통제선이 마련되지 않은 채 일반 관람객 수십만명을 맞았다. 문화재청은 윤석열대통령 당선으로부터 두달 반, 취임 및 개방 2주 후인 지난달 23일에 청와대권역과 시설개방 관리업무를 위임받았다.  김예진 기자
또한 장소사용으로 발생하는 경비는 별도의 산출 통보를 받은 뒤, 장소사용 1일전까지 국고수납은행에 납부해야 한다. 이번 규정 제정이 있기 전에도, 청와대는 대통령실 소유 국유재산에 해당됐으며, 국유재산은 관련법에 따라 사용료를 내게 돼 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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