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길이 보이지 않아도' 벤처대부 이민화 평전 눈길
‘가자, 길이 보이지 않아도!’
‘한국 벤처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고 이민화 교수를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문구다. 그는 한 분야를 넘어서 새로운 길에 운명처럼 도전했고, 숙명처럼 앞날을 열어갔다. 국내 벤처 1세대를 이끌면서 스스로 세계적 의료기기회사 메디슨을 창업·상장하고, 후배 벤처인들을 위해 수많은 벤처 정책을 입안했다. 중소기업 관련 불합리한 규제들이 그의 머리에서 혁파됐다. 그 과정에서 도전은 밥 먹듯이 하는 일상이었고, 실패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곤 했다. 지난 2019년 8월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영결식장에 울려 퍼진 노래가 ‘선구자’였다. 그가 생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이기도 했지만, 그 선구자가 바로 이민화이기도 했다.
그의 일대기를 꾸밈없이 담담히 전하는 이민화 평전 ‘가자, 길이 보이지 않아도’(이호준 지음 / 꽃길)가 출간돼 눈길을 끈다. 기업인이자 교육자로 헌신한 그의 삶을 통해 ‘기업가정신’ 등 한국사회가 직면한 숙제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짚어본 책이다.
이 책의 첫 챕터에서는 이민화의 유년 시절과 함께 대한전선에 입사하기 전까지의 일을 다루고 있다. 이어 두 번째 챕터에서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메디슨 창업과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세 번째 챕터 ‘대한민국 벤처신화를 이끌다’이다.
여기에서는 벤처기업협회가 태동한 1995년부터 벤처기업협회장에서 물러난 2000년까지의 이민화를 돌이켜본다. 젊은 벤처인들을 중심으로 1995년 벤처기업협회가 설립됐고, 벤처를 위한 ‘코스닥’ ‘벤처기업특별법’ ‘벤처창업로드쇼’ ‘아래한글살리기 운동’ 등 이민화가 벤처생태계를 아우를 수 있는 굵직한 일들을 해내던 시기다. 그뿐만 아니라 2000년대 초 벤처가 ‘버블’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을 때도 이민화는 ‘벤처 활성화’를 제안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벤처를 위한 그의 활동은 곧 후배들을 향한 애정이었다.
벤처를 떠나 기업호민관과 유라시안 네트워크 이사장으로서 나라를 위한 밑거름을 뿌리는 데 앞장선 이민화의 모습을 담은 네 번째 챕터 ‘나라 위한 씨앗을 뿌리다’에서는 보통의 기업가들과 다르게 나라의 정체성까지 내다본 그의 획기적인 상상력을 만날 수 있다.
이어 다섯 번째 챕터에서는 교육자가 돼 카이스트로 돌아간 ‘교수 이민화’에 대해 들려주고, 여섯 번째 챕터에서는 이민화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고민했던 미래전략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본다. 그는 창조경제연구회를 설립해 국가혁신을 도모했고, 공유경제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이 진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모바일 정보가 생활화되면서 현대인들이 신인류로 진화할 것도 예견했다. 그가 그린 그림은 곧 우리 미래의 모습이었다.
마지막 챕터 ‘이민화 뒤의 이민화’에서는 늘 공개된 자리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일하고 누군가 가르치고 뭔가 해결하는 모습으로 존재한 이민화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의 내면을 만나볼 수 있다. ‘기업가 이민화’와 ‘교수 이민화’를 떠나 ‘인간 이민화’에게도 사랑하는 가족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취향이 있었다. 바둑대회에 대표로 참여할 정도의 수준급 바둑 실력이나, 가족과 함께 갔던 여행을 짧은 영상으로 편집하는 등 인간 이민화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 두 개로 나눠진 ‘남겨진 숙제’에서는 이민화를 지켜본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과 저자가 만난 ‘이민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전문이 실려 있다.
한편 저자 이호준은 “평전과 자서전은 다르다”며 “자서전(自敍傳)은 말 그대로 자신의 생애를 스스로 기술하는 것으로 솔직한 기록을 요구하지만, 자신만의 기억과 생각으로 살아온 날들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과장이나 미화를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평전(評傳)은 기록 방식부터 다르다. 대상 인물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되 행적을 전(傳)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評), 즉 평가해야 한다”고 이민화 평전을 집필한 마음가짐을 전했다.
그는 이어 “평전은 작가만의 가치판단 기준이 필요하지만, 평가의 결과는 주관성보다 객관성을 요구한다. 한 사람의 생애를 진술하는 증언을 모아 객관화하는 과정은 조심스럽고 지난했다”며 “방대한 범위의 이민화 평전을 쓰면서 냉정과 객관을 잃지 않고 ‘이민화 정신’을 기록하려 했다. 그의 기록은 한 시대의 기록과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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