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잔디코트의 이야기

김홍주 2022. 6. 2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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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채항 객원기자] 1년 내내 이어지는 테니스 시즌이지만 6~7월은 다른 시기보다 다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잔디 코트에서 대회가 펼쳐지기 때문. 워낙 민감한 잔디의 특성상 겨우 한달 반 남짓 진행되는 이 시즌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고 만다. 누구에게는 최고의 표면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악몽과 같은 흥미로운 잔디의 세계. 

잔디코트의 유래, 너무나 까다로운 잔디코트의 특성 
테니스는 18세기 말 영국 귀족 사이 즐길 수 있는 유흥 수단으로 처음 선보인 가운데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에서 생활하는 귀족의 환경을 반영하여 곱게 자른 잔디, 즉 ‘Lawn’에서 즐기는 테니스라는 의미의 ‘Lawn Tennis’로 시작되었다. 당시엔 지금과 같은 기술의 발전이 없었기에 다른 표면에 대한 대안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영국에서 유행한 폴로, 축구, 하키 등 모든 필드 스포츠가 잔디에서 이뤄졌기에 테니스 또한 잔디에서 즐기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매우 까다로운 잔디의 특성을 감안, 테니스를 일년 내내 즐길 수 없다는 아쉬움에 다양한 표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특히 테니스 인기가 점차 확대되자 기후 조건에 따라 잔디 코트를 유지하기 힘든 영국 외 다른 지역에서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 결과 1890년을 전후로 프랑스에서 클레이코트가 첫 선을 보였고, 이후 미국에서 하드코트가 보편화되는 등 지금의 체제로 자리매김했다. 

잔디코트는 그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전통을 유지하며 사랑받아 왔는데,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호주에서는 호주오픈이 무려 1988년까지 잔디코트에서 열렸으며, US오픈 역시 1974년까지 잔디코트에서 열렸으니 테니스의 역사만 따져본다면 그 중심에는 잔디코트가 있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잔디코트 대회가 많이 사라지게 된 배경에는 1970~8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찾아 온 기술의 발전, TV 중계의 중요성, 대회와 선수의 선호도 등 여러 외부 요인이 존재한다. 

잔디코트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제는 대세가 된 하드, 클레이코트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특성을 나타낸다. 콘크리트가 베이스인 하드코트가 중간 속도와 가장 높은 바운드를 선보이는 가운데 클레이는 흙으로 이뤄진 바 높은 바운드를 유지하면서도 속도가 느려져 베이스라이너에게 매우 유리하다. 잔디코트는 잔디로 인해 볼이 낮게 깔리며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가 클레이와는 완전히 상반된 양상을 띈다. 짧지만 지표면 위로 솟아 오른 잔디에 볼이 앉게 되어 볼이 땅에 직접 닿지 못하며, 볼 위에 얹어진 잔디가 스프링 역할을 함과 동시에 볼의 속도를 활성화하는데 궤도가 낮아져 결국 볼은 ‘낮고 빠르게’ 튕겨 나가게 된다.

또한 잔디 자체가 매우 부드럽기 때문에 마치 카페트에 깔리는 것처럼 볼은 낮은 바운드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강서버 또는 서브앤발리 유형의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나마 오전에 이슬을 머금은 잔디가 평소보다 느린 편인데, 정오가 지나면서 물기가 싹 사라지면 속도도 훨씬 증가하기에 베이스라이너일 경우 오전 경기를 선호한다. 

선수들이 느끼는 이러한 볼의 감각도 그렇지만 잔디는 코트를 유지 보수해야 하는 관리자에게도 까다로운 존재이다. 자체 생명력을 지닌 식물인 만큼 습도, 온도, 기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데 봄부터 잔디를 심고 건강히 자라도록 꾸준히 신경 써줘야 하며, 수시로 물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기온이 높을 때에는 하루에 두 번, 아침 저녁으로 적정 길이가 유지되도록 잘라줘야 한다.

관리도 그렇지만 어떤 종류의 잔디를 사용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며 잔디의 특성에 따라 관리 방법 또한 달라지게 된다. 이렇듯 환경에 매우 민감한 잔디의 특성상 잔디코트를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1년 농사와 같기에 전문가가 아닌 이상 손 대기 쉽지 않은 분야로 여겨지고 있다.  

풀이라고 다 같은 풀이 아니다! 잔디코트의 변신
풀로만 보이는 잔디에도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어떤 잔디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볼의 바운드 및 속도가 달라진다. 일반적인 여름 시즌의 잔디코트일 경우 보통 페레니얼 라이그래스 또는 레드 훼스큐를 사용하며, 한 여름이 아닌 환절기나 선선한 기후의 지역에서는 버뮤다그래스 또는 벤트그래스를 사용하여 더 오래 잔디를 유지하고 외부 환경에 잘 버틸 수 있도록 설계한다. 단, 후자의 경우 전자 보다는 잔디의 성분이 강하여 부드러운 느낌이 덜해, 선수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매우 다르다. 

잔디코트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윔블던의 경우 어떤 잔디를 사용했을까? 윔블던의 잔디는 늘 7:3 비율로 라이그래스와 레드 훼스큐를 혼합하여 사용하는데, 이 조합이 볼의 속도를 너무 빠르게 전환시키고 습도에 민감하여 조금만 물을 머금어도 매우 미끄러워지는 탓에 베이스라이너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하여 강서버가 이득을 보곤 했다. 다른 대회에서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선수들이 서브를 앞세워 윔블던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고, 역으로 뛰어난 베이스라인 강자가 윔블던에서는 강서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조기 탈락하는 이변이 속출하기도 했다.

특히 와일드카드를 받은 강서버 고란 이바니세비치(크로아티아)가 깜짝 우승을 한 2001년이 피크였는데, 랠리 없이 서브나 서브앤발리만으로 매 포인트가 끝나 경기가 심심해졌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윔블던은 2002년부터 잔디 종류를 교체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잔디는 100% 라이그래스로 바뀌었는데 이 변화로 인해 표면이 좀 더 단단해 지고 바운드도 높아지는 효과를 봤으며, 이로 인해 베이스라이너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단적인 예로 2001년 결승에서 맞붙은 이바니세비치와 패트릭 래프터(호주) 경기는 첫 서브 또는 세컨드 서브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포인트가 서브앤발리로 끝나 평균 랠리수가 극도로 낮았던 반면에, 잔디를 교체한 2002년에는 레이트 휴이트(호주)와 다비드 날반디안(아르헨티나)이 결승에 올라 랠리의 진수를 보여준 바 있다. 이들의 경기는 오롯이 스트로크로만 이뤄졌으며 경기 후 악수할 때를 제외하면 네트 대시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니 잔디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인 셈이다. 

물론 이 변화 또한 차츰 적응되어 기존의 잔디코트 강자들이 다시 활개를 쳤지만, 과거 마르셀로 리오스(칠레)와 같은 세계랭킹 1위 선수가 1회전 문턱도 넘지 못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이제는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같은 클레이 황제도 잔디 코트에서 우승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어찌 보면 매우 공정한 변화가 아니었나 싶다.

글= 김홍주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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