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의 맛

서울문화사 입력 2022. 6. 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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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트리얼 카페 조롱 영상이 장안의 화제였다. 말끔히 마감하지 않은 시멘트 의자, 불친절한 메뉴 이름과 비위생적인 환경이 고정 값이 되어버린 인더스트리얼 카페를 공사판의 모습에 비유한 영상이다. 이를 놓고 사람들은 열정적인 공감을 보였다. 온라인에는 그런 공간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오프라인에는 없나? 날것의 공간에 사람들은 개미 떼처럼 몰려든다. 왜 디자인, 카페, 밥집, 어느 공간에서든 날것에 집중하나.

우리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볼까로 시작된 브레인스토밍. 사실 유튜브를 주제로 브레인스토밍을 가장한 수다는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진정성이 있되 계몽적이지 않고,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요즘 감성이고, 로(Raw)한데 에지(Edge)가 있어야 하므로 시작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때 이게 ‘요즘 감성’이라며 후배가 보여준 유튜브 영상이 있다. 바로 ‘2032년 감성 카페’이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어느 한 커플이 공사판처럼 보이는 카페에 들어선다. 여자친구는 간신히 예약한 인스타그램 ‘핫플 카페’라며 시티 뷰를 보고 감탄을 자아낸다. 난해한 카페 이름과 국적 불명의 원두 이름은 시작에 불과하다. 아무리 숙여도 안 닿는 테이블, 더티플레이트의 정점인 담배꽁초와 쓰레기. 이 모습을 보며 이들은 너무 감성적이라며 사진을 찍어댄다. 그러곤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일어선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노플라스틱 존에 에코-그린 캠페인 중이어서 두 손으로 테이크아웃하는 마지막 장면. 얼마 전 짓다 만 듯한 공사판 카페로, 트위터에서 조롱거리가 된 제주의 어느 한 카페가 연상된다. 역시나 사이다라는 댓글과 함께 여러 커뮤니티에 퍼진다. 이후에는 진짜 공사판에 영업 중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다양한 패러디 사진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수년 전부터 인기를 끌어온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디자인의 쏠림 현상에 대한 조롱이다. 역시나 누군가를 향한 분노와 혐오 같은 감정은 그 대상이 유행이 된 것만큼 빠르게 퍼져가고 빠른 속도로 안티를 만들어낸다.

사실 이런 현상은 늘 반복적이며 당연한 수순이다. 한창 급성장하던 아웃도어 시장이 갑자기 성장을 멈추게 된 계기가 있는데, 그 발단이 된 기사를 정확히 기억한다. 해외여행 갈 때 등산복을 입는 4050을 보고 서양인이 비웃는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는 네이버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했고, 비슷한 유사 기사들이 수도 없이 재생산됐다. 하루아침에 뽐낼 수 있는 비싼 명품에서 촌스러운 조롱거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아웃도어는 이들의 일상복에서 급격히 사라져갔다. 소수에 의해 유행이 되는 것도 빠르고 유행이 꺾이는 것도 참 빠른 걸 지켜보면서 오히려 유행이 안 돼서 오래가는 편이 더 낫겠다 생각한지 오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같이 웃고 보던 와중에 불편한 지점이 생겼다. 환경을 생각하는 행동과 태도도 이런 식으로 유행이 돼서 조롱의 대상이 되는 건가. 그건 곤란한데 말이다. 그래서 진지하게 쓰레기가 나뒹구는 노천 고깃집에 왜 사람들이 줄 서서 먹게 됐는지 써보려고 한다. 적어도 생산한 자와 소비하는 자들이 내가 무엇에 왜 이끌리는지만 제대로 안다면 조롱거리가 돼도 흔들리지 않는 게 찐이니까.

인더스트리얼은 사전적 의미로 ‘산업의, 공업용’이라는 뜻이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은 손으로 조각하거나 빚은 수공예품이 아니라 대량생산 방식으로 만든 물건, 나아가 이런 제품으로 꾸민 공간을 의미한다. 투박함과 빈티지함을 살려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는 심플함을 살린 북유럽 인테리어와 정돈된 매력의 모던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부서지고 깎이고 색이 바랜 부분을 노출하는 것이 이 스타일링의 포인트다. 이런 흐름은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에서 먼저 시작됐지만 본격적으로 건축과 인테리어에 반영된 건 20세기 미국에서다. 유럽의 보수적인 건축 사조와는 별개로 자유분방하게 일하는 건축가들이 대륙 곳곳에 콘크리트나 폐목재로 만든 고층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기만 해도 유럽 디자이너에게 아웃사이더 영역이었다. 이런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오히려 대량생산과 소비와 같은 물질주의와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 시작한 세계대전 이후다. 건축물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사회, 경제, 문화, 정치, 기술 등 모든 것이 하나로 모인 결정체다. 모더니즘 건축 양식이 포스트모더니스트와 결합한 것도 사실 그 저항 정신과 맞닿아 있다.

화력발전소는 테이트모던으로, 기차 플랫폼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두 공간 모두 주어진 건물 형태에 맞추어 새로운 기능을 적용한 경우다. 결국 콘크리트, 벽돌, 드러난 배관을 그대로 노출시켜 짓다 만 듯하게 보이는 공장 느낌의 외관은 주어진 건물 형태를 최대한 보존했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목받은 건 2010년 이후 당인리 화력발전소 앞에 있던 오래된 신발 공장이 카페로 바뀌고, 정미소였던 성수의 대림창고,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 종합병원인 백제병원을 개조한 브라운핸즈가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두꺼운 철물, 거친 시멘트벽과 벽돌벽, 마감 없이 노출된 슬레이트 지붕, 낡고 해진 창문틀 등을 그대로 둔 채였다.

히피 역사학자인 존 허스트의 저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은 게르만 전사들이 문명과 혼합되고 로마와 기독교와 혼합되기 전에는 어떠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 숲속의 사람들, 그들의 활력과 생명력, 미숙함을 좋아했고, 나약한 지식인들을 따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식인들이 처음으로 민속문화를 수집하기 시작했을 때쯤, 건방진 프랑스 지식인들이 이성에 대해 재잘거릴 때 그에 대한 대답은 ‘문명은 인위적이다’라며 부츠를 신고 도보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텐트 없이 야외에서 자는 행위를 비박이라고 하는데 원래 독어로 ‘Biwak’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다. ‘날것’을 추앙하는 게르만 전사들의 DNA 덕분에 아웃도어 양대 산맥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빈 건물을 거리 아티스트들이 무단 점거하는 일명 스쾃 행위가 자연스러운 도시 재생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날것’에 대한 이끌림인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지금 시대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본질은 최대한 날것 그대로 남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마감 처리도 제대로 안 한 채 시멘트 가루가 날릴 것 같은 짓다 만 디자인으론 아무나가 되지 않으려는 몸짓이 아무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Editor : 정소진 | Words : 남윤주(에딧시티프로젝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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