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스스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갔을까

김형민 2022. 6. 26.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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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필레츠키는 지하 저항군을 결성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문을 들은 그는 일부러 통행금지를 어겨 독일군에게 체포된 뒤 이곳으로 끌려간다.
1940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비톨트 필레츠키의 모습.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복수심에 불타는 소련군은 기진맥진한 독일군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코네프 장군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제1전선군은 1945년 1월27일 폴란드의 작은 도시 아우슈비츠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곳에서 가공할 현실과 맞닥뜨리게 돼. “사람의 머리카락입니다. 7t 분량입니다. 뼛가루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사람의 뼈입니다. 의치와 안경테도, 옷들도 산더미입니다.” 20세기 인류 최대의 악몽 중 하나인 아우슈비츠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지.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폴란드 안에 만들어진 최초의 강제수용소였다. 초반에는 폴란드 정치범을 수용할 목적으로 사용되다가 1942년 유대 인종을 말살하려는 이른바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 수립된 이후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이송돼 가스실에서 죽어갔어. 처음에는 가둬놓고 트럭의 배기가스를 불어넣었는데, 결국 다 죽지만 시간이 너무 걸렸지. 연구 끝에 나온 결론이 ‘치클론 B’라는 독가스였어.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는 그 효과를 이렇게 자랑했다. “배기가스를 사용한 곳에서는 시체들이 땀과 오줌과 똥투성이가 됐지만 치클론 B를 사용하면 그런 일이 없다.”

상대를 인간으로 보기를 거부했던, 그래서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강성한 나치들은 사람을 씹어 먹는 신화 속 거인처럼 유대인을 비롯해 그들의 ‘인간 가이드라인’ 아래 있는 사람들을 스스럼없이 죽였다. 이 가공할 거인들의 악독함에 맞선 사람들도 드물지만 있었지.

독가스 치클론 B를 아우슈비츠에 공급하는 임무를 맡은 이 가운데 쿠르트 게르슈타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독일 내에서 정신질환자와 장애인을 죽여 없애려 한 히틀러 때문에 여동생을 잃은 그는 “독가스 운용 계획을 자세히 조사하여 세계에 공표하기 위해” 친위대에 자원입대했다고 해. 실제로 그는 이 악마의 시나리오를 베를린의 사제나 스웨덴 대사관, 네덜란드 레지스탕스들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레지스탕스는 그의 정보를 거짓으로 치부했고 스웨덴 사람들도 조소 어린 침묵을 지켰어. 설마 그런 일이? 게르슈타인은 전쟁 후 자신의 기록을 남긴 후 자살해버린다. 의도한 바는 아니라 해도 자신이 공급한 가스를 마시고 죽어간 수백만 명의 생명을 감당할 수 없었던 거겠지.

게르슈타인이 외면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나치가 설마 그런 일까지 벌이랴 하는 의구심이었어. 하지만 소문은 계속 새어나왔고 그 진실을 밝히고 참극을 폭로하려는 노력도 가냘프게나마 이어졌다. 그 미미하지만 강렬했던 빛줄기 중 하나가 비톨트 필레츠키(1901~1948)라는 폴란드 군인이었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폴란드가 독일군에 짓밟히자 필레츠키는 동료들과 함께 지하 저항군을 결성한다. 그러던 중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문을 들었어. 폴란드 서부에서 유대인들을 포함한 폴란드 사람들이 대규모로 끌려갔지만 그 내막은 아무도 알 수 없었지. 필레츠키는 1940년 9월19일 통행금지를 일부러 어겨 독일군에게 체포된 뒤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아우슈비츠의 ‘자발적’ 입소자가 된 셈이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돼 가스실에서 죽어갔다. ⓒ시사IN 포토

수용소 내에서 동지들을 모아 폴란드 저항군을 결성해볼 요량이었던 필레츠키는 아우슈비츠 안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참극에 경악했어. 점호에 불참했다고, 일을 못한다고, 꼼지락거렸다고, 또 그 밖의 하찮은 이유로 사람이 간단히 죽임을 당했고, 자신도 건설에 참여한 화장터에서 그들이 불태워지는 걸 목격한 거야. 그래도 필레츠키는 수용소 안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해나간다. 폴란드 사람들 사이에서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조악한 재료들을 조합해 무전기까지 만들어 외부와 교신하면서, 결정적인 시기가 오면 수용소 내에서 반란을 일으킬 기회를 엿보았지. 그는 수용소 바깥의 나치친위대(SS) 대원들의 주거지에 파견 나간 적이 있는데 SS 대원들의 삶을 보고 이렇게 절규해.

 “여전히 예전과 같은 세상에서 예전처럼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정원도 있고 꽃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즐거운 목소리도 들립니다. 바로 저편에는 지옥이, 학살이, 모든 인간과 선한 것들이 소멸해가는데 말입니다. 저편에서 SS 대원들은 도살자이고 고문자이지만 여기서는 사람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 아니면 저기?”

1942년 이후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다. 유럽 내 유대인 절멸 계획이 수립된 뒤 아우슈비츠에는 유대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들어오는 대로 가스실에서 학살돼 재로 변하게 되었지. 필레츠키는 이 상황을 계속 외부에 전한다.

“이곳에서는 날마다 수많은 사람이 살해된다. 대부분 유대인이다. 사망자 수는 어쩌면 수백만 명에 달할지도 모른다. 수용소를 즉시 해방해달라(〈희망 버리기 기술〉 마크 맨슨 지음).” 그의 호소는 다급했고 절박했지만 역시 바깥 사람들은 그 간절함을 외면한다. “아무리 독일놈들이라도 설마 그럴 리가.”

필레츠키는 계속해서 아우슈비츠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발버둥쳤다. 하지만 폴란드 저항군은 물론이고 폴란드 망명정부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연합군 지휘부조차 이 외로운 군인의 절규를 외면했지. “가스실에서 무슨 인체 실험을… 이 사람 뻥이 심하군.” 수용소 해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필레츠키는 이런 당부를 남기기도 한다. “폭격이라도 해달라. 제발! 가스실만이라도!”

아우슈비츠 범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려

하지만 폭격기는 오지 않았고, 나치의 감시망은 아우슈비츠 내 비밀조직을 조여왔어. 필레츠키는 또 한 번 결단을 내려야 했다. 기회를 엿보던 그는 민간인 복장을 구한 뒤 감시대원들을 제압하고 탈출을 결행한다. 인류 최악의 범죄를 목격하고 그 사실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인물. 사악하고 거대한 거인들의 지옥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던 용자(勇者) 필레츠키는 그 거인들의 흉악한 이빨 사이를 헤치고, 사람들의 살점과 피로 다져진 진창을 뚫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1944년 바르샤바 시민들이 필사적으로 일으킨 바르샤바 봉기에도 참가했던 필레츠키는 전쟁이 끝난 뒤까지 살아남았어.

 하지만 그 최후는 ‘해방’을 맞은 뒤에 참혹하게 찾아왔다. 소련과 폴란드 공산 정부는 친서방적 폴란드 망명정부 휘하에서 분투했던 필레츠키를 눈엣가시로 여겼지. 그는 공산 정부로부터 온갖 혐의를 뒤집어쓰고 체포된 뒤 고문을 받으며 ‘자백’을 강요당한다. 체포 전 도망갈 기회도 있었지만 피신을 거부한 필레츠키는 끝내 그의 동포들이 세운 공산 정권 치하에서 사형을 당하고 말아.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폴란드 안에 만들어진 최초의 강제수용소였다. 지금도 남아 그날의 학살을 증언하고 있다. ⓒ시사IN 포토

인간은 참 가지각색이다. 그럴 수 없이 비겁한 사람도 있고, 악에 협조하지는 않지만 침묵을 지키는 사람도 많고, 불편한 진실 앞에서 그것을 회피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는 이들도 허다하지. 하지만, 용감한 사람들, 정면으로 악에 저항하고 그것으로 생존의 의미를 삼은 사람들, 온갖 난관을 떨치고 깊숙이 숨겨진 진실의 옷자락을 잡아채 광장으로 끌어낸 이들 또한 소수일지언정 사라진 적이 없어.

필레츠키라는 인물 역시 이를 입증할 유력한 증거 중 하나다. 그의 최후진술이야. “죽음을 앞둔 순간에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을 느끼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위의 책).” 죽음이 두렵다기보다는 그 죽음 앞에서 돌아보는 삶에 부끄러움이나 회한을 남기지 않기 위해, 즉 기쁘게 죽음을 맞기 위해 노력했노라는 뜻이겠지. 조국에 대한 사랑을 넘어 인류의 양심을 두드렸던 용감한 이의 최후에 걸맞은 유언이었다고나 할까.

김형민(SBS Biz PD)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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