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이야기 만들고 싶었다" [인터뷰M]

김경희 입력 2022. 6. 25. 1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57회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 대상, 62회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 상 등 감독으로 받을 수 있는 칸 영화제의 상을 다 받은 박찬욱 감독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칸에서 큰 성과를 내고 돌아온 박찬욱 감독은 앞서 제작보고회에서 "감독상 수상보다 한국 관객의 반응이 더 기대된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며칠 전 언론시사를 마치고 국내 언론의 호평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 대해 박 감독은 "기분 좋다. 전문가들의 리뷰가 좋은 건 직업적으로 굉장히 뿌듯한 일이다. 그런데 역시 제일 중요한 건 영화 보는 게 직업이 아닌 분들이 돈과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다. 일반 관객들이 만족스러워하느냐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다. 개봉일을 기다리고 있다"라며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심경을 밝혔다.

칸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도 받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니 탕웨이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 감독은 "중간에 탕웨이가 먼저 일정을 마무리한 게 아쉬웠지만 시상식 날 혹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 어쩌나 걱정되기도 하더라. 박해일과 저 둘이서 우리끼리 만약 탕웨이가 수상을 하게 되면 누가 대신 수상 소감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때 시간이 촉박했는데 혹시나 받게 될지 모르니 수상 소감을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는데 만약 문자로 수상소감을 보내오면 박해일이 나가고, 못 보내오면 제가 나가기로 했었다"라며 긴박한 상황 속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을 두 사람의 모습이 상상되는 이야기를 해 웃음을 안겼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는 정훈희의 '안개'가 여러 번 들려진다. 박 감독은 "저는 63년생인데 이 곡은 60년대에 발표되었다. 지금까지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가요 중 하나이고 정훈희는 제일 좋아하는 여자 가수다. 우연히 송창식이 포함된 트윈폴리오도 이 곡을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모든 게 출발했다."라며 너무나 좋아했던 노래였으며 이 노래가 들어간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음을 말했다.

특히 "가사 중에 '안갯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라는 게 있는데 심금을 울렸다. 안개가 뿌옇게 껴서 시야가 흐릿할 때 눈을 또 바로 뜨고 잘 보이지 않는 뭔가를 열심히 보겠다는 의지와 노력을 느꼈다. 이 감흥을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안개도 나오고 녹색인지 파랑인지 애매한 색깔도 나오고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상태나 사물, 단계, 감정이 있다. 이런 것들이 다 이 노래에서 출발했다."라며 거장은 유행가 가사 한 줄만으로도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을 영화의 주요 모티브를 다 뽑아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말을 했다.

로케이션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박 감독은 영화 속 독특한 분위기와 미장센의 장소들에 대한 비밀을 공개했다. 특히 경찰서로 등장한 장소에 대해서는 "한국은행 구 건물이다. 저는 사실적인 경찰서에서는 못 찍을 것 같더라. 그 대신 이런 데에서 경찰들이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곳을 찾아 경찰서로 설정했다. 모든 장소를 해당 장소가 필요로 하는 성격을 갖추면서도 최소한의 보기 싫지 않은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한국은행 구 건물은 관공서 느낌을 풍기는 로케이션이라서 선택했고 아파트도 그런 식으로 구했다."라며 박찬욱 표 미장센의 비결을 밝혔다.

그중에 가장 공들인 로케이션은 뭐니 뭐니 해도 마지막 해변이었다고. "자연이지만 산 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고 소나무도 있고 마치 거대한 수석 같은, 축소된 자연이라고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1부에서 본 산을 상기시키는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장소를 찾아 촬영하느라 동해와 서해를 오가며 촬영했다. 전작 '아가씨'에서는 거대하고 화려한 세트를 짓느라 썼던 돈을 이번에는 로케이션을 찾아 많이 이동하고 VFX로 보강하는 게 썼다."라며 장면 장면마다 감탄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속 공간을 궁금하게 했다.

iMBC 연예뉴스 사진


영화를 보면서 놀랄 일이 굉장히 많다. 배우들의 케미, 아름다운 로케이션, 예측 불가한 스토리, 그리고 뜻밖의 배우들의 등장이 있었다. 이정현, 박용우, 고경표, 박정민, 김신영 등이 예상 못 한 순간에 출연, 색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박 감독은 "새 얼굴을 찾기 위해 코미디나 TV 드라마를 열심히 보는 것은 아니고 다 운이다. 어떤 때 우연히 지나가다가 만날 수도 있고 요즘은 인터넷 시대니까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보게도 되고 누가 추천을 하기도 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배우를 접하게 되는데 대게는 오디션을 거친다. 살짝 유명한 분들도 오디션을 거치는데 김신영은 특별했다. 오래전부터 제가 팬이었다. 탕웨이가 정서경 작가와 제가 '색계'를 볼 때부터 팬이고 캐스팅하고 싶다고 이야기 한 것처럼 김신영도 늘 마음속에 함께 영화 만들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라며 새 얼굴을 발굴할 때 어떤 방법을 쓰는지, 김신영의 캐스팅 배경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해준'과 '서래'가 했던 문어 제적인 말이 귀에 '마침내' 맴돌게 되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한 그들만의 어투와 단어, 문장은 참 인상적이었다. 박 감독은 "스마트 기기를 한껏 활용하는 인물들이면서도 말투나 장소, 공간에서는 고풍스러운 구식의 느낌을 만들어 대비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라고 밝히며 "'서래'는 중국인으로 한국어를 사극 드라마와 책을 보며 공부했기에 정확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듣기에 낯선 한국어를 쓴다. 처음에 '서래'의 한국말을 들으면 웃음이 나지만 나중에는 그녀의 표현이 요즘 내가 쓰는 말보다 더 정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쓰는 한국말이지만 생경하게 들리고, 그 단어가 가진 뜻을 더 음미하게 만들고 싶었다. '마침내' 같은 단어는 흔한 단어인데 '서래'를 통해 들으니 생각해 볼수록 운명적인 올 것이 온 것 같은 거창한 생각이 들게 하는 효과를 만들고 싶었다"라며 서래가 쓰는 단어들이 왜 특별하게 느껴지는지의 이유를 설명했다.

'서래' 뿐 아니라 '해준'이 쓰는 말도 상당히 문학적이다. "현대인치고 품위 있는 사람답게 말한다. '서래'와 잘 어울리고 서로 알아보는 같은 종족으로 볼 수 있다. 마침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때 '해준'이 곰곰이 음미하면서 "아 마침내. 저보다 한국말 잘 하시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웃고 말겠지만 '해준'은 그걸 알아듣는 같은 종족의 사람이다. 둘이 통할 수 있는 단어를 찾으려고 작가와 계속 다듬었다. 너무 생경한 단어는 안되고 사극 드라마에 나올법한 단어를 찾으려고 노력했다"라며 박 감독은 둘의 감정의 서사를 쌓는데 큰 역할을 한 단어를 위해 공들인 과정을 밝혔다.

박 감독은 이번 작품을 어른들의 로맨스라고 표현했다. 꽤 자극적인 장면으로 연출했었던 전작들과 달리 눈빛, 서로에게 하는 작은 행동, 사소한 생활 습관 만으로도 주인공 사이의 감정이 사랑임을 분명히 알 수 있게 연출했다. 박 감독은 "에로틱한 느낌을 구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걸 구상하거나 배우에게 특별한 표정을 주문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관객들이 느껴지는 건 결국 에로틱하거나 섹슈얼하다는 감정이라는 게 얼마나 정신적인 것인가의 증거라 생각한다. 육체적인 터치보다 사랑과 관심과 이런 유의 감정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성적인 즐거움까지 유발하는지를 알려주는 증거 같다. 저는 특별히 관능적으로 묘사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라며 애틋하고 섹슈얼한 느낌을 담으려고 특별히 노력한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iMBC 연예뉴스 사진


박 감독은 "저는 좀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다른 메시지나 감독의 주장 같은 걸 포함시키지 않은, 영화적으로 화려한 볼거리나 기교가 없이 최소의 요소로 영화를 찍고 간결하게 구사해서 깊은 감흥을 끌어내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라고 이번 작품을 만들 때의 의도를 밝혔다. 그러며 "그게 받아들여질지 아닌지는 처음에는 잘 모르겠더라. 너무 구식으로 보일 수 있겠다 걱정도 있었고 오히려 현대에는 이런 영화가 더 새로워 보이겠다는 기대도 있었다"라며 작정하고 섹스, 폭력을 뺀 영화를 선보인 소감을 밝혔다. 그의 의도는 세계 영화인들의 마음에 적중했고, 그의 걱정은 기대감으로 받아들여져 결국 칸 영화제 감독상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마지막으로 제목을 '헤어질 결심'으로 지은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박 감독은 "동료 영화인들은 독립영화 제목 같다고 걱정하시는 분도 있더라. 그래서 저는 좀 당황했다. 보통 정서경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제목을 떠올릴 때가 많은데 '아가씨'도 그랬다. 이번에도 트리트먼트를 쓰는 단계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때 그럼 서래가 헤어질 결심을 한 건가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질 결심'이 제목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라며 제목을 뽑게 된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 제목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로 그는 "관객이 글자 그대로 믿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보통 사람들이 결심을 할 때는 성공한 일이 드물다. '살 뺄 결심'도 잘 안되지 않나. 결심은 실패와 곧장 연결되는, 결심은 하지만 실행이 안 되는 단어 같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을 하지만 끝내 헤어질 결심을 못하거나 굉장히 고통스럽게 헤어지거나가 연상되고. 연상이 된다는 건 능동적인 참여를 하게 되는 거 같아서 바람직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얼마나 이 사랑이 힘들었으면 이런 결심까지 하게 된 걸까라는 생각까지 하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하며 영화를 본 관객들이 '헤어질 결심'을 통해 느꼈으면 하는 감정들도 얼핏 밝혔다.

영화를 보고 나면 '헤어짐'보다는 그들의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결코 헤어지지 못한 두 사람의 미래를 더 많이 궁금해하며 과연 '서래'와 '해준'은 어떻게 됐을까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헤어질 결심'은 6월 29일 개봉한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CJ ENM

Copyright © MBC연예.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