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여, 몸 깎지 말고 떼인 근력 찾아옵시다!

2022. 6. 2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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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샤크 코치, 에리카 코치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태어나 딱 한 번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10년 전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창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할 때였다. 공부도 체력이 따라줘야 하겠단 생각이 들어 대학 근처 복싱장을 찾아갔다. 복싱을 하겠다 하니 주변에서 '응?'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네가 뺄 살이 어딨다고?"

그렇다. 나는 모태 마름이었다. 말라서, 힘이 없어서, 체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하러 간 거였다. 그런데 친구들도, 심지어 등록 상담을 해주시던 코치님도 다이어트부터 떠올렸다. 나는 여차저차 취지를 설명하고 그들을 잘 납득(?)시켰다.

운동을 하는 내내 이 수고로움은 반복됐다. 복싱장에서 만나는 회원들마다 '넌 왜 왔니?"라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 질문 속에 힐난이 섞여 있을 때도 많았다. 대답할 때마다 나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마냥, 폐를 끼친 사람마냥 고개를 조아리곤 했다. 분위기가 그랬다. 복싱장을 찾은 여자 회원 대부분이 다이어트를 하러 왔기 때문이었다.

코치님은 나를 아주 유용하게 잘 써먹으셨다(?). 운동을 건성으로 하는 여자 회원들에게 시각적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는 듯, 언제나 나를 들먹였다. "어리처럼 날씬해지려면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 대충하면 어리처럼 안 되지!" 그럴 때마다 회원들은 꼬박꼬박 짜증을 냈다. 잔소리가 늘수록 짜증도 비례해 늘었고, 그 짜증은 언제부턴가 코치님보다 나를 향하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찾은 회원들과 근력 증진 목적으로 온 나는 운동 프로그램이 달랐다. 그래서 나는 잽 연습 후 다이어터들이 해야 하는 '지옥 코스'는 하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지옥 훈련 강도가 셌고 다이어터들을 향한 코치님의 갈굼도 심했다. 마무리 운동 중이던 언니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먼저 운동을 마친 나는 그들과 겹치지 않게 먼저 샤워장에 들어갔는데, 열심히 비누질을 하려던 찰나 샤워장 불이 꺼졌다. 그리고 밖에서 들려온 소리. "야 빨리 나가자 크크크". 명백한 따돌림이었다. 실소가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불을 켜줘서 딱히 큰 불상사는 겪지 않았지만, 그날의 충격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난다.

질 나쁜 장난이었다. 그들이 잘못한 건 명백하거니와, 그들의 화를 부추긴 코치도 문제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애초에 살을 빼러 온 이들 눈에 근육을 붙이러 왔다는 내가 곱게 보일 리 없었을 것도 같다. 그렇다 해도 그 운동장은 다이어터들만의 것이 아니지 않나. 마른 사람은 운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다이어트가 아닌 운동 그 자체에 몰입하거나 즐기는 것은 사치인 것인가. 여러 의문이 생겼다.

나는 정말로 복싱을 좋아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그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복싱을 그만뒀다. (그로부터 5년 후 다시 하긴 했다.)

10여 년 전 일을 장황하게 풀어놓은 까닭은, 최근 읽은 책 한 권이 그때 기억을 소환했기 때문이다. 여성 전용 크로스핏 박스 '샤크짐'의 공동 운영자이자 유튜버인 샤크 코치, 에리카 코치가 함께 쓴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위즈덤하우스)는, 그간 억울했던 나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는 그런 책이었다. 모태 마름이에게 '야너두 할 수 있어!'를 외쳐주는 고마운 책이다. 운동은 누구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다이어터만이 아니라, 남성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운동을 즐기고 몰입해도 된다고, 오히려 그래야 한다고 두 저자는 주장한다.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 ⓒ위즈덤하우스
21세기 '방망이 깎는 노인들'

이들은 그 어떤 영역에서보다 운동 영역에서의 남녀 구분 선이 짙고 선명하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만일 내가 남성이었다면 모태 마름이건 아니건 간에 복싱 학원에 등록할 때 남을 납득시켜야 하는 일 따위는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남자 회원 중에는 깡마른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마른 남자들이 복싱을 하는 것은 당연한데, 마른 여성인 내가 복싱을 하는 것은 형용모순이나 다름없었나 보다.

"파란불에만 건너라는 건 학교에서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어영부영 어기는 애들도 꽤 많은데 놀이, 운동에 관해서는 비교도 안 되는 철저함으로 모두가 그어진 선 안을 지켰다. 법보다 엄격한 규칙이었다."(p52)

남성에게 힘이 세지는 것은 일종의 미덕이지만, 여성에게 힘이 세지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여성스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팔씨름에서, 허벅지씨름에서 남자를 이기는 여자는 종종 개그의 소재로 쓰이기도 하지 않나.

여성의 운동은 대개 몸의 외형을 가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마디로 다이어트. 당장 인스타그램만 둘러봐도 '#여성 #운동'을 검색하면 초미니 탱크톱을 입고 거울 앞에서 셀카를 찍은 '눈바디(눈으로 몸의 외형 변화를 점검하는 것)' 사진이 무수히 올라온다. 눈바디의 목적은 요즘 유행하는 '바프(바디 프로필) 때문이'다. 일생일대의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여성들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진한다. 에리카 코치는 이를 "방망이 깎는 노인"에 비유하는데,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여자에게 운동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게 저자들이 갖는 문제의식이다.

"왜 보디 프로필 속 여자들은 모두가 하나같은 모습인지 의문이다. 현재의 몸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왔을 테고 각자의 운동을 거쳐 왔을 텐데 그런 역사가 사진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의 몸이 살아온 궤적을 기록하자는 게 보디 프로필인데 그저 모두가 핀업 걸이었다." (p272)

"스스로 피, 땀, 눈물을 들이면서 타자화 대상화된다니! 운동이란 대체 무엇일까. 운동은 원래 몸을 탈이 나지 않게 관리하고 개선하는 일이다. 우리 몸은 2차원이 아닌 3차원에 존재한다. 얇은 액자에 걸어놓고 감상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움직여서 기능하는 것이다."(p264)

"사실 모두가 답을 알고 있다. 답이 아닌 길을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을 뿐이다. 나의 건강을 위해 나를 위해 움직이고 내가 후회하지 않을 식사를 하면 된다. 그리고 이게 습관이 된다면 당신은 언제든 그 습관을 사는 당신의 보디 프로필을 남길 준비가 되어 있다."(p274)

▲에리카 코치와 샤크 코치. ⓒ위즈덤하우스

넓은 마음은 넓은 어깨가 만든다

"나의 건강을 위해 나를 위해 움직이고 내가 후회하지 않을 식사를 하면 된다", 성경책 같은 말이다. 이게 틀렸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이어트 권하는 사회'를 살아내는 여성에게 그저 건강만 생각해서 운동하자는 것은, 쉽게 말해 돈 아까운 일이다. 말했듯 3n년간 모태 마름이(정확히는, 팔다리는 마르고 뱃살만 나온 '거미형' 인간)로 살았던 나조차도 다이어트의 유혹에서 벗어나질 못했으니.

사실 나는 약간의 위장 장애가 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음식물을 넘기질 못한다. 식도나 위 입구 쪽에 닫힘 버튼이라도 있는 것처럼 내 의지와 관계없이 자동으로 닫힌다. 4년 전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적이 있었는데, 먹질 못하니 살이 쭉쭉 빠졌다. 얼추 초등학교 때 몸무게인, 그야말로 뼈만 남은 상태였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어지럽고 힘이 없어 몸을 가누질 못했다. 산송장이나 다름 없었다.

당시 가장 화가 났던 건 나를 살 빠지게 만든 스트레스 상황이 아니었다. 버텨내질 못하는 내 몸뚱이에 화가 났다. 그리고 이런 몸뚱이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서러웠다. 죽을 때까지 나는 살 뺄 생각은 안 해야겠다고 얼마나 굳게 마음먹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서 요새 살이 제법 붙고 나니, 살을 빼야 하나 하는 고민도 불쑥 생긴다. 지금 거울 속 나와 4년 전 사진 속 나를 비교해 보면, 지금보다 빼빼 말랐던 그때가 더 나아 보이긴 하니까 말이다(물론 단순 노화 탓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다이어트 생각을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휘젓는다. 말랐던 그때가 외모는 나았을지언정, 행복한 건 지금이다. 4년 전과 비교하면 8킬로그램 정도가 쪘는데, 기본 체격이 갖춰져서인지 잔병치레가 확 줄었다. 전엔 작은 일에도 과민하게 구는 일이 많았다면, 지금은 허허 웃고 넘어가는 일이 늘었다. 아프면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당연히 행복할 리도 없다. 저자들의 말처럼 "신체의 강화가 심적 강화로도 이어진 것"이다.

"신체 능력 선에서 정리되는 것들이 늘자, 자연스럽게 정신의 복잡함도 줄어들었다. 옛말이 틀린 것이 없었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드...는 것은 아직 모르겠으나 일단 강한 신체에 강한 멘탈이 깃드는 것은 확실하다. 곳간에서 인심 나듯, 배려와 여유도 결국 강한 몸에서 나온다. 부정적인 심리 상황에서도 강한 몸과 힘은 도움이 된다.

나는 특히 불합리한 상황을 견뎌야 할 때 덕을 많이 봤다. 내가 저 새끼를 당장 패 죽일 수도 있지만 특별히 한 번 참아준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상대가 지랄 맞아도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팰 힘이 없어서 억지로 참는 것과 문화 시민으로서 (그리고 법치국가 국민으로서) 자제하는 것은 심리적 스탠스에 크나큰 차이가 있다. 내가 타고난 게 소인배여도 후천적으로 대인배가 될 수 있다. 넓은 마음은 넓은 어깨가 만든다."(p200)

▲샤크 코치. ⓒSTUDIO V

운동(exercise)에서 운동(movement)으로

보통은 개그의 소재였을 법한 넓은 어깨를, 저자들은 자랑스러워한다. 넓은 어깨야말로 이들이 운동에 진심이라는 증거이다. 실제 유튜브에서 본 에리카 코치와 샤크 코치의 떡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몸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특히 샤크 코치는 놀라움을 넘어선 충격적 비주얼의 소유자였다. 에리카 코치의 표현대로라면, 샤크 코치의 외양은 "기존 사회 관념상 여성의 프레임을 박살 내는" 것이었다.

이들은 강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것에서 나아가 여성을 가두고 있는 프레임을 박살 내고자 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차별에 더해 운동하는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까지, 이들은 두 층위의 차별을 딛고 서야 했다. 샤크 코치가 풀어놓은 에피소드는 분노를 넘어 허탈함마저 들게 한다.

"어느 날 체육관에서 오랜만에 온 남자 회원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는 100킬로그램이 넘는 근육질이었다. 직업은 아마도 경찰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굉장히 전형적인 마초형의 사람이었다. 오래 운동을 쉬느라 내 변화 과정을 보지 못한 그 회원은 몇 달 만에 다른 사람이 된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오 코치님 살 진짜 많이 뺐네요!" 라는 감탄 뒤에 그는 바로 이렇게 덧붙엿다. "이제 여자 다 됐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어색하게 하하 웃고 넘어갔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할 말이 없다. 거기다 대고 도대체 무슨 대답을 해야 했을까. 감사합니다? 절대 아니다. 원래 여자였어요? 그걸 그 사람이 몰라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발언에는 거대하고 뿌리 깊은 장벽이 내재되어 있었다. 몇 마디 말로 물리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어떤 단단한 생각이.

화장 좀 하고 다니라든가, 여성스럽게 입어보라는 말은 가끔 들어봤다. 물론 이 발언들도 편파적이지만 최소한 나름의 조언이나 제안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 여자 다 됐네'라는 말은 그런 여백이 없는 단호한 평가였다. 특정한 프레임, 그러니까 사회적인 여자라는 기준에 맞춰 명백하게 대상화가 된 적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운동을 향한 내 열정이, 목표를 향한 내 노력이, 그간의 땀과 눈물이 그리고 나의 정체성과 염색체가 통째로 무시당한 기분이었다."(p207~208)

샤크 코치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기 전까진 여성 이슈와 같은 사회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그가 전력으로 운동(exercise)을 하다 보니, 운동(movement)까지 하게 된 셈이다.

"샤크는 기존 사회 관념상 여성의 프레임을 박살 내면서도 스스로 여성임을 조금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남자를 선망하거나 남자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서 강하고 당당했다. 샤크는 그 자체로 사회적 여성상의 확장이었다. 샤크는,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나는 내가 샤크를 보고 받은 충격을 더 많은 여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세상에 저런 여자도 있구나. 여자가 저렇게 될 수도 있구나. 여자가 저래도 되는구나. 저런 여자도 멋지구나!"(p264)

운동하던 이들이 유튜브라는 이 시대 최고의 선전 매체를 동원하고 책까지 쓰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성들에게 세상이 이러니 노력해서 증명하라고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사실 우리는 굳이 입증할 필요가 없다. 나의 성별은 남이 판단해줄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건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이든 어떤 행동을 하든 모두가 당연히 여자다. 여자의 범주는 여자가 정한다. 그리고 그것에 한계란 없다."(p210)

"사회 인식이 사회 현상을 이끌기도 하지만, 사회 현상이 사회 인식을 바꾸기도 한다. 둘은 상호작용하며 시너지를 낸다. 달라진 사회 분위기로 고취된 여성 스포츠의 위상은 다시 여성들의 향상된 사회적 입지로 돌아올 것이다."(p336)

그러니 <떼인 근력을 찾아드립니다>라는 제목에는 이중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여성스러움'이라는 사회적 틀에 갇혀 근력 운동 기회를 갈취당한 여성들에게 운동의 참맛을 보여주겠다는 자신감, 그리고 나아가 여성들의 '사회적 근력'을 찾아주겠다는 다부진 각오. 스스로를 본보기 삼아 운동하는 두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연대를 실천해보기로 했다. 스쿼시 강습 결제 완료! 자, 이제 슬슬 떼인 근력을 찾아 나서볼까.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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