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전 악몽 지우지 못한 채..뇌출혈로 쓰러져 생사기로
[편집자주]'80년 5월'은 현재 진행형이다. 40여년이 흘렀으나 피해자들은 그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인 모를 질병과 트라우마, 우울증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자살한 피해자들도 많다. 최근 이들에 대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스1광주전남본부는 5·18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정신적 손해 배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점검한다.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이수민 기자 = 한 남자가 사선(死線) 위에 누워 있다. 삶과 죽음의 위태로운 경계. 식도로 연결된 가느다란 호스가 꺼져가는 생의 마지막을 붙들고 있다.
42년 전의 악몽과 고통에서 끝내 헤어 나오지 못한 남자, 잠 한 번 푹 자보고 싶다는 게 소원이라는 남자. 5·18민주유공자 오동찬씨(68)가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깊은 잠을 자려 한다.
오동찬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장으로부터 뒤늦게 들었다.
오씨는 <뉴스1>이 연재 중인 5·18 정신적 손해배상 시리즈 5번째 순서로 지난해 12월 인터뷰해 '다이너마이트 배달책'으로 보도한 인물이다.
지난 21일 오전, 취재진은 황일봉 회장, 김현섭 부상자회 복지국장과 함께 오씨가 입원 중인 광주 남구 에스웰 요양병원을 찾았다.
미리 면회 예약을 한 터라 본관 건물 앞에서 벨을 누르고 기다렸다. 한참 뒤 윤희정 요양병원 행정국장이 곤란한 표정으로 일행을 맞이했다.
오씨의 상태가 악화돼 집단 면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3개월 전 수술을 받았던 뇌출혈 증세가 더욱 심해진 데다가 급성 폐렴까지 겹쳤다고 전했다.
대표로 황일봉 회장 한 명만 면회하기로 했다. 윤 국장이 오동찬씨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해 보냈다.
윤 국장은 "오씨는 침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완전한 식물 상태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도 눈조차 뜰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나아질 여지는 있을까. 윤 국장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연명치료로 삶을 유지하고 있을 뿐 지금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에요. 현재로서는 회생이 불가능할 것으로…."
병원과 경찰, 5월 단체의 말을 종합하면 오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건 지난 2월 중순쯤이다. 정확한 날짜는 알지 못한다.
평소 단체 활동에 적극적이던 오씨가 일주일째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회원들이 '실종 신고'를 한 뒤에야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2월17일 오후 5시48분쯤 119에 신고 접수했고, 오씨의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소방대원들이 전남 화순에 있는 본가에서 쓰러져 있는 오씨를 발견했다.
숨은 붙어 있었으나 의식은 없었다. 언제 쓰러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몇 시간 전인지, 2~3일이 지났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119구급대는 오씨를 기독병원 응급실로 이송했고 한 달여 치료를 받고 3월17일에 지금의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황일봉 회장은 "오동찬 동지가 병원에 오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며 "아픈 그를 부양해줄 가족이 없어 혼자 지내다 보니 쓰러진 뒤에 발견도 늦었던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오동찬씨는 42년 전 총기 소유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고 끔찍한 정신적 트라우마에 갇혀 살아온 피해자다.
80년 5월21일,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스물여섯이던 오씨는 전남 화순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지프를 타고 온 시민군으로부터 '광주'의 상황을 들었다.
오씨는 친구, 선배 등 13명과 호기심 반 걱정 반, 취기 반 젊은 객기 반으로 지프차에 올랐다. 가족과 친구를 지키기 위해 무기가 필요하다는 말에 비어 있는 화순과 능주 파출소에서 총과 실탄을 챙겼다.
또 다른 시민군이 화순탄광에서 다이너마이트를 구해 가져왔다. 오씨는 일행과 다이너마이트를 나눠 광주로 옮겼다.
광주 학동에서 무기를 시민군에게 전달한 오씨 일행은 곧바로 화순으로 돌아와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6월30일, 오씨는 총기 소유와 무기를 옮긴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고문을 당하고 구속돼 12년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6년으로 감형됐다가 81년 4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10개월간 형을 마친 뒤 고향으로 돌아온 후 그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출소 후 경찰의 통제와 감시는 계속됐다. 고문 후유증으로 어깨를 펴지 못해 통증을 안고 살았다. 육체적 고통보다 트라우마가 끔찍했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 알코올 의존으로 병원에 입원했지만 치료되지 않았다. 정신 병력으로 아내와 이혼,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누군가 집 문 앞을 지나기만 해도 흠칫 놀랐다. 계속되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잊기 위해 알코올에 의지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집에 누군가 찾아와 갑자기 문을 두드리면 42년 전 경찰에 잡혀갈 때가 떠오른다며 집 현관문에 '제발 문 두드리거나 벨 누르지 말아 주세요'라는 문구를 붙여놓았다.
기자와 인터뷰할 때도 미리 약속을 잡고 방문했음에도 "사람을 집안에 들이는데도 큰 마음을 먹어야 했다"며 수십 개의 알약과 소주 반병을 벌컥벌컥 들이켜기도 했다.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그가 끝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쓰러진 것이다.
황일봉 회장은 "80년 5·18 직후에 트라우마센터가 있었다면 효과를 봤겠지만 42년이 지난 지금 트라우마센터가 그때의 고통을 얼마나 끌어안을 수 있겠느냐"며 "트라우마센터는 실효성을 잃은 지 오래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훈병원의 경우 정신적 치료를 해주곤 있지만 일반 병원에 비해 의료진 급여가 낮아 열정이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5·18 민주유공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해결하고 복지의 빈틈을 채워줄 수 있는 실질적인 혜택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42년 전 오씨와 '그날'을 함께한 13명 중 6명은 알코올 중독과 자살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씨도 삶의 끝자락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는 평안할까.
"예전에는 같이 다이너마이트 옮겼던 친구들이 죽었다고 하면 슬펐죠. 이젠 안 슬퍼요. 어차피 나도 곧 죽을 테니… 이렇게 소주 마시다가 죽으면 누가 시체라도 거둬주겠죠?" (2021년 12월3일, 인터뷰 중에서)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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