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쉽] 보행자 위협하는 횡단보도 '우회전' 이젠 범칙금
서울 강서구의 한 교차로. 보행 신호등이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뀐 상황. 보행자들이 횡단보도로 발을 내딛는 순간 승용차 한 대가 우회전하며 횡단보도를 빠른 속도로 가로질렀다. 파란색으로 바뀐 신호등만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보행자들은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이 엄마는 재빨리 아이의 어깨를 잡아 채 뒤로 물러 세웠다. 파란 불로 바뀐지 한참이 지났지만 보행자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우회전하려는 차 한 대가 슬금슬금 횡단보도로 머리를 들이 밀더니 보행자가 지나가기 무섭게 스치듯 지나갔다. 보행자를 위한 파란 신호등에도 마음 편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기가 쉽지 않다.
교차로와 횡단보도 우회전 방법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7월 12일부터 적용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따르면 횡단보도 우회전에 대한 '일시 정지' 의무가 강화된다. 아래 짧은 영상을 보자. 이럴 때 운전자인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는가? 전방의 차량 신호등은 빨간색이다. 보행자 신호는 파란색이지만 보행자는 없다. 혹시 헷갈리시는 분들은 아래 바뀌는 내용에 대한 설명을 보시면 된다.
보행자 목숨 위협하는 횡단보도 '우회전'
지난 2018년부터 3년 간 우회전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은 보행자는 212명이다. 최근 5년 간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3명 중 1명은 보행자다. 지난 5월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이 분석한 결과, 2017~2021년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1만 7,312명 중 보행 사망자는 6,575명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38%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9.3%(2019년도 기준)보다 2배 정도 높다.
[이렇게 바뀐다] 차량 신호가 '파란색'일 때
차량 신호가 파란색인데, 우회전해서 만난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가 파란색이고 보행자가 없는 경우다. 역시 천천히 우회전 해도 된다.
자, 그런데 보행자가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 '일시 정지' 한 뒤에 보행자가 다 건너면 그 다음 우회전을 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보행자가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
[이렇게 바뀐다] 차량 신호가 '빨간색'일 때
대법원 판례를 보자. 교차로의 차량 신호등이 빨간색이고 횡단보도 보행 신호등이 파란색이고 우회전을 했다. 사고가 안 나면 다행이지만 만약 사고가 나면 '신호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경찰에 적발은 안 돼도 사고가 나면 본인 과실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법원은 신호 위반 행위가 교통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만큼 사고 장소가 횡단보도를 벗어난 곳이라 해도 '신호 위반'으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경찰청 지침에 따르면 단속이 되지는 않겠지만 다른 사고로 재판을 받게 된다면, 재판 결과에는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도로교통법 개정...핵심은 '사람이 먼저'
우선 '보행자 우선 도로' 제도가 도입된다.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가 이에 해당하는데, 이 도로에서는 보행자 통행이 우선이다. 보행자 우선 도로에서는 보행자가 도로 전체를 통행할 수 있다. 운전자에게는 서행과 일시 정지 등 보행자 보호 의무가 생긴다. 이를 어길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과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7월부터는 도로 외의 곳을 지나는 운전자에게도 '보행자 보호 의무'가 생긴다. 아파트 단지 등 '도로에 해당하지 않는 장소'를 지나는 운전자도 보행자를 보호해야 한다. 서행 또는 일시 정지 등 보행자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역시 20만원 이하의 벌금과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어린이 보호 구역 내 보행자 보호도 강화한다.
사고 잦은 교차로에 '우회전 신호등' 도입
다시 영상으로 돌아가 보자. 7월 12일부터 적용되는 도로교통법에 따른 정답(?)을 확인해 보겠다. 차량 신호가 빨간색이고, 보행자 신호가 초록색이다. 그렇다면 일단 멈췄다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지,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는 지까지 확인하고 우회전을 해야 한다.
사실은 이런 복잡한 설명과 긴 해설을 읽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로는 운전자이지만, 언제든 보행자이기도 하다. 또 우리의 부모님, 아이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빨리 가겠다고 가속 페달을 밟으며 우회전 핸들을 돌릴 수는 없지 않을까.
[대법원 2011. 7. 28., 선고, 2009도8222, 판결]
【판결요지】
교차로와 횡단보도가 연접하여 설치되어 있고 차량용 신호기는 교차로에만 설치된 경우에 있어서는, 그 차량용 신호기는 차량에 대하여 교차로의 통행은 물론 교차로 직전의 횡단보도에 대한 통행까지도 아울러 지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횡단보도의 보행등 측면에 차량 보조등이 설치되어 있지 아니하다고 하여 횡단보도에 대한 차량용 신호등이 없는 상태라고는 볼 수 없다. 위와 같은 경우에 그러한 교차로의 차량용 적색 등화는 교차로 및 횡단보도 앞에서의 정지 의무를 아울러 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그와 아울러 횡단보도의 보행등이 녹색인 경우에는 모든 차량이 횡단보도 정지선에서 정지하여야 하고, 나아가 우회전하여서는 아니되며, 다만 횡단보도의 보행등이 적색으로 바뀌어 횡단보도로서의 성격을 상실한 때에는 우회전 차량은 횡단보도를 통과하여 신호에 따라 진행하는 다른 차마의 교통을 방해하지 아니하고 우회전할 수 있다. 따라서 교차로의 차량 신호등이 적색이고 교차로에 연접한 횡단보도 보행등이 녹색인 경우에 차량 운전자가 위 횡단보도 앞에서 정지하지 아니하고 횡단보도를 지나 우회전하던 중 업무상과실치상의 결과가 발생하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3조 제1항, 제2항 단서 제1호의 ‘신호위반’에 해당하고, 이때 위 신호 위반 행위가 교통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이상 사고 장소가 횡단보도를 벗어난 곳이라 하여도 위 신호 위반으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성립함에는 지장이 없다.
보행 신호는 파란 불일까? 초록 불일까?
신호등 불은 초록색 (자세히 보면 청록색 같기도 하다)인데 왜 파란 불이라고 표현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빨간 불-초록 불이 맞을까? 빨간 불-파란 불이 맞을까?
국립국어원의 답은 이러하다. "한국어의 고유어인 '파랗다'는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새싹과 같이 밝고 선명하게 푸르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이 점에서 '청색'과 '(연)녹색'을 아우르는 표현으로 쓰인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신호등의 녹색 불을 '파란불'이라 한다고 하여 틀린 것은 아닙니다. 표준 국어 대사전에 교통 신호의 하나를 가리키는 단어로 '파란불'이 올라 있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표준 국어 대사전에는 없으나 우리말샘에 올라 있는 '초록불'로 쓰는 것 또한 틀리지 않는다 하겠습니다."
(구성 : 장선이 기자 / 콘텐츠디자인 : 옥지수)
장선이 기자s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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