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지리산 자락서 된장 담그며 사는 농부시인

박영래 기자 2022. 6.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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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구례로 귀농 김창승씨..152개 마을 스토리 기록작업
섬진강수해 땐 공익활동 앞장.."지역에 동화해야 내가 행복"
구례군 마산면 마산리 청천마을로 귀농한 김창승씨. © News1 박영래 기자

(구례=뉴스1) 박영래 기자 =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전남 구례군 마산면 마산리 청천마을. 4가구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인데 초입에는 특별한 기념일도 아닌데 태극기가 나부낀다. 70여 년 전 발생한 아픈 현대사인 여순사건의 후유증이란다.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 중이던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반란을 일으켰고, 이승만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한 뒤 대대적인 진압에 나섰다.

진압과정에서 당시 청천마을 40여 가구는 소개됐고 당시 마을주민들은 태극기라도 걸어놔야 죽임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같은 공포가 여전히 남아 지금도 1년 365일 태극기를 걸어놓고 있다.

이같은 청천마을의 아픈 역사를 보듬고 이를 시로 남기고,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며 사는 귀농인이 있다. 2014년 구례로 들어온 김창승씨(64)다.

지리산 자락에서 된장을 담그며 사는 농부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 김태영씨(62)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귀농을 선택했다.

"아내가 마산면 냉천리 출신인데 자신의 모교에서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해서 서울에서 구례로 내려왔죠. 아내는 올해 8월 정년 퇴직하는데 소원대로 마산면소재지에 자리한 본인의 모교인 청천초등학교에서 4년째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귀농은 차일피일 미뤄졌으나 대학을 졸업한 큰 딸이 독립하고 둘째인 아들이 군에 입대하면서 김씨 부부는 2014년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구례로 내려왔다.

아담한 집도 짓고 논밭도 구입해 한가로운 농촌생활이 시작되는 듯 했지만 김씨는 스스로 자신을 가만놔두지 못했다. 구두와 의류를 판매하는 회사를 직접 운영하며 바지런했던 그의 성격은 구례에 내려와서 더 많은 일거리를 찾아냈다.

그가 구례로 내려와 심혈을 기울여 진행하는 작업은 구례지역 모든 마을의 스토리를 기록하는 것이다. '향토사학자 김창승'의 길이다.

그는 벌써 구례 장터를 비롯해 152개 마을을 세번씩 돌아다니며 글과 사진으로 산골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을 담고 있다.

김창승씨가 텃밭에서 작물에 물을 주고 있다. © News1

마을의 역사를 정리하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정겨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웬만한 전문가도 갖고있지 못한 디지털카메라를 그는 갖고 있다.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귀한 가치가 있는 마을과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모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모든 동네를 세번씩 돌았는데 앞으로 한번만 더 전체 마을을 돌아다닐 예정입니다."

구례읍내에 자리한 옛 가게나 슈퍼마켓, 금은방 등 정취 있는 옛 모습도 모두 다 촬영하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농촌생활을 가감없이 담은 글쓰기 활동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시인 김창승'의 모습이다.

그는 전라도의 사람, 자연, 문화를 담아온 지역 월간지인 전라도닷컴에 '지리산 자락(自樂)'이라는 고정 연재를 담당하고 있다. 말 그대로 지리산에서 사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문예 동인지 '수필봄날'에도 적극적으로 활동중이다. 지리산의 아름다움 등을 시로 담아내고 있다.

'농부 김창승'의 모습은 그가 직접 재배한 콩으로 담근 맛깔스러운 된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된장 만드는 과정에 적잖은 공을 들이고 있다. 넓지 않은 밭이지만 친환경으로 재배한 콩과 천일염 주산지인 신안군 비금도를 직접 찾아가 소금을 사왔다.

천년명수로 불리는 구례의 '당몰샘'에서 새벽에 길러온 물을 무쇠솥에 붓고 화력이 세고 일정한 참나무를 사다가 불을 때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들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된장독을 사거나 얻어서 담근 된장은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 큰 수익이 되는 건 아니지만 지인들과 먹거리를 나누고 공유하면서 살고 있다."

김창승씨가 갓 나은 달걀을 들고 웃음짓고 있다. © News1

지난 2020년 8월 발생한 섬진강 수해는 그를 '공익활동가 김창승'으로 만들었다.

'섬진강수해 복구 구례군민대책본부'에서 주민대표로 적극 참여해 2년여 동안 마을주민들과 함께했고, 지난 4월 정부로부터 유례없는 국가배상 판정을 받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섬진강 수해를 계기로 주민들과 부대끼면서 내가 '온전한' 구례군민이 됐다. 그전까지는 사실상 '반쪽' 주민이었는데 피해복구에 앞장선 나를 주민들이 모두 인정해줬다."

그는 앞으로 섬진강을 가꾸고 지키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평온했던 강이 화가 났을 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가를 이번 수해로 실감했다. 강이 강답게 흘러가고 강에 사는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중이다."

그래서 그는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귀농의 순수한 마음을 버리지 말아라. 지역에 완전히 동화되어야 본인이 행복하다"고 당부했다.

yr200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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