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노동 없인 밥상도 없다"..'수확철 단속' 양파 주산지 올스톱

하어영 2022. 6. 25.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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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커버스토리][한겨레S] 커버스토리ㅣ수확철 이주노동자 작업현장
코로나 뒤 '일당 17만원' 사람없다 아우성
계절노동자 1만여명 입국 그나마 임시방편
수확철엔 미등록 이주노동자 '농작업팀' 필수
지리산 중봉 아래 한 농촌 마을, 5월에 입국한 계절노동자 2명이 양상추밭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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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 사람 아니면 올해도 속 좀 썩었겠지?”

지난 17일 서울에서 네 시간을 달려 도착한 지리산 서쪽 한 자락. 길가 버스 정류장 바로 옆 비닐하우스 그늘막 작업장에서 양상추 포장이 한창이다. 가까이 갈수록 우리말과 낯선 언어가 뒤섞여 울린다. 50평 남짓 공간에서 ‘계절노동자’ 두 사람이 농장주 ㄱ씨 지시를 받고 작업장을 오간다. 아침 7시30분 작업을 시작한 이들과 나란히 앉아 양상추 포장을 시작했다.

“코로나19 전에는 하루 8만원이면 베트남이나 태국(타이)에서 사람을 어렵지 않게 구했거든. 그런데 코로나19 때 사람 없다고 인건비가 오르더니 작년엔 10만원에 돈을 더 준대도 일손 구하기가 힘들어진 거야. 올해는 아예 몇달 마음 편히 같이 일할 사람을 구해보자, 그랬지.”

작물재배 시기를 사람 올 때 맞춰

농장주 ㄱ씨는 올해 법무부가 농촌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며 만든 ‘계절근로자 제도’ 공고를 보고 신청서를 냈다. 그리고 다섯달 머물다 갈 ‘손님’ 둘을 “모셨”다. 두 사람처럼 3~5개월짜리 비자를 통해 계절노동자로 입국한 인원수가 상반기만 1만2천여명이다. 벌써 한달 보름, 농장주와 노동자가 서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들이 통하는 말은 작업 여부(“여기까지만 하자”), 식사 시간(“밥 먹자”), 부재 공지(“다녀올게”) 등이 거의 전부다. 사실 ㄱ씨가 속을 끓이는 건 ‘언어’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있는 동안 무리하도록 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놀게 해서도 안 된다.

“우리 같은 중소농은 1년 내내 일이 있는 게 아니야. 5~6월 농번기에 잠깐, 여름 (토마토 딸 때) 잠깐, 그리고 가을 벼농사로 끝인데, 어쩔 수 있나. 저 부부가 온 날에 맞춰서 일을 해야 하니까, 일단 못자리부터 챙겼고….”

5월 초 농장에 두 사람이 배치되고 난 다음날, 곧바로 모내기에 나섰다. 평소보다 일주일 빨랐다. 100마지기(2만평·약 6만6천㎡)에서 닷새를 보내고 비닐하우스 6개 동(1200평·약 4천㎡)에 들어가 방울토마토 정식(모종심기)을 시작했다. 사흘이 걸리지 않았다. 벼는 알아서 클 것이다. 문제는 방울토마토가 주력 농사인데, 집게작업, 순따기 등 본격적인 작업까지 한달 남짓 남은 기간 동안 계절근로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다. ㄱ씨가 고심 끝에 심은 작물이 양상추다. 농사일에 사람을 쓰려다가, 사람에 작물을 맞추는 꼴이 된 것이다.

이런 고민은 ㄱ씨만의 것이 아니다. 양상추가 10상자 정도 쌓일 때쯤 옆 농장주 ㄴ씨가 작업장에 들어섰다. 그는 이번에 계절노동자를 신청했지만 받지 못했다.

“형님, 17만원 준다 해도 일할 사람이 안 온대요. 무안(전남의 양파 주산지) 가면 더 받는다고. 큰일이네. 마늘이랑 양파 (수확) 끝나고 장마 오면 좀 오려나.”

“빌려 갈래? 불법이라도?”

ㄱ씨가 계절노동자를 옆 농장에 ‘빌려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던진 농이다. 걸어서 5분도 되지 않는 거리지만, 옮겨 일하면 엄연한 현행법 위반이 된다. 법무부가 농촌 상황을 고려해 한달에 한번 근무처를 바꿀 수 있는 규정도 만들었지만, 같은 마을에서 농번기와 농한기가 한달 걸러 있을 리 없다.

“듣고 보니 억울하네. 농사짓는데 그런 불법이 어딨당가?” ㄴ씨는 “수확을 못 할 판이면 어떤 손이든 못 빌리겠느냐”며 자리를 떴다.

코로나19 이후 농촌에서는 이주노동자 입국이 제한되고, 일부는 귀국한 뒤 돌아오지 않아 일할 사람이 사라져 직격탄을 맞은 상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농업에 투입된 이주노동자 수는 2019년 8835명이었다가 2021년에 1590명으로 82% 감소했다. 하지만 이번에 계절노동자 1만여명이 추가 투입됐다. 산술적으로 인력이 남아야 하지만 농촌은 여전히 유례없이 높아진 인건비와 일손 부족으로 곳곳이 난리다.

이유는 뭘까. 정확한 실태조사는 없다. “2015년 256만명이던 농가 인구가 2019년 224만명으로 10%가 넘게 줄고, 65살 이상 고령 농가 비중은 38%에서 47%로 늘어나는 등 농촌의 구조적 문제가, 코로나19 이후 더 도드라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2021년 국회 토론회, 최범진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실장)

이 와중에 농촌은 각자도생이다. ㄱ씨와 함께 계절노동자 제도로 2명을 배치받은 ㄷ씨는 일감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옆 마을 포도농장 요청을 받고 일당 10만원에 ‘한달짜리’ 파견을 보냈다. 사실상의 불법인 줄 알지만, 중소농 입장에서 이들을 일없이 놀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ㄱ씨도 “ㄷ씨를 이해한다”고 했다. “(ㄴ씨 사정도 그렇고) 다른 곳에선 사람 없어 고생하는 걸 내가 몰라? 그걸 보고 어떻게 가만있어.”

두 사람 몫으로 남은 석달 반 동안 매달 400만원가량을 챙기는 것도 부담일 것이다. 오전 11시에 가까워지자 양상추는 바닥을 보였다. 마지막 박스까지 채우고, 추가로 양상추를 캐러 밭에 올랐지만, 이곳 양상추는 시장에 팔 만큼 자라지 않았다.

“뜻대로 참 안 되네잉. 오전엔 여기까지만 합시다.”

흰쌀밥 위에 달걀과 돼지고기 볶음을 얹은 계절노동자 점심 도시락.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인력중개센터 설치 등 정부 조처 시급

ㄱ씨가 두 팔로 엑스자를 그렸다. 부부는 그때야 모자를 벗고 작업장 구석 의자를 찾아 앉았다.

“양상추 한 박스가 5천원인데 박스 1천원, 양상추 싸는 봉지 600원(개당 100원×한 박스 6개), 기본 1600원은 날아가는 거지. 거기에 상하차비, 경매수수료, 비료값까지 계산하면 저 두 사람 일당도 안 나와. 그래도 일단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 하니까….”

다시 일감이 떨어진 세 사람은 작업대에 나란히 앉았다. 번역 앱으로 계절노동자 부부의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곧 점심때인데, 보통 식사는 어떻게 합니까?

“도시락요. 흰쌀밥에 돼지고기와 계란볶음을 덮어서.”

원래 숙소와 식사를 보장하는 규정대로 첫 점심은 읍내 식당을 이용했다. 하지만 입맛에 맞지 않았다. 이를 눈치챈 ㄱ씨가 다른 농장처럼 한끼 1만원씩 주기로 했다.

―도시락은 괜찮나요?

“집에 가서 따뜻한 차랑 먹고 싶긴 하죠. 몽골 사람들은 따뜻하게 음식을 먹어요.”

―숙소는 불편한 점이 없나요?

“특별히 없어요.”

부부가 지내는 곳은 이주노동자 근로환경에서 문제 됐던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가 아닌 ‘집’이었다. 2021년 고용노동부가 발표를 보면, 이주노동자 69.6%가 가설건축물(컨테이너·조립식패널·비닐하우스 등)에 살았다. 이번 ‘계절근로자 채용 요건’ 중 하나가 제대로 된 ‘방 제공 여부’였다. 질문을 바꿨다.

―당장 바뀌었으면 하는 건 없나요?

“(부부가 한참 대화하더니) 한국 농장에는 화장실이 없나요? 농장주는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화장실 문제만큼은 그냥 밖에다 하더라고요. 여기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다른 곳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지.” 이웃 농장주 ㄴ씨 말이 떠올랐다. 숟가락 하나부터 텔레비전까지 제공했다는 숙소, 이른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 작업장, 하루 노동 8시간 준수 등 작업 환경은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그 “천국”에 화장실은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이주노동자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공동대표(영화감독)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금 직장에서 볼일 보러 삽을 들고 나서야 한다면 어떻겠느냐. 다시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며 “화장실 없는 걸 자연스럽게 말하곤 하는데, 이것 때문에 이주노동자가 농장을 이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후 작업은 1시45분에 시작됐다. 양상추밭 잡초 제거다. 수작업이 기본이다. 2천 포기가 심어진 한마지기의 끝이 보일 즈음, 한 시간 반이 지나갔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농장주 손에는 새참이 들려 있다. ㄱ씨는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며 “계절근로자 비용 등을 포함하면 포기당 2천원은 돼야 수지타산이 맞는데, 그 반도 안 되는 가격”이라고 했다.

ㄱ씨가 계절노동자와 함께한 한달 반 소감은 “중소농이 몇달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농촌 인력난 해소를 위해 농촌인력중개센터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농가에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게 언제일까.

인력 전쟁 속 단속, 노동자끼리 경쟁도

농촌 인력 부족을 제도권 안에서 풀겠다고 내민 카드가 ‘계절근로자’다. 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사람에 목마르다. 지리산 동쪽 자락의 양파 주산지 한곳을 찾은 건 지난 13일, 여기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로 꾸려진 ‘농작업팀’을 만났다.

“왜 우리가 일하는 걸 굳이 보여줘야 해?”

한국 생활 15년차 몽골인 간바트(가명)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몽골 농작업팀(이하 몽골팀) 대표 격인 그가 현장 취재에 대한 경계심으로 날을 세운 건 팀원 20명 전원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동선이 드러나 이득 될 게 없다. 양파가 익어갈 무렵 도깨비처럼 나타나는 몽골팀 같은 이들을 농촌에선 ‘전문작업반’, ‘농작업팀’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돈내기’(밭 한마지기당 작업량으로 노임을 결정하는 구조)로 ‘까대기’(상하차 작업)를 하며, 6월 양파 주산지인 경남 함안, 합천, 함양 등 지리산 동쪽 면을 훑는다.

몽골팀은 사업장 변경 제한이 있는 계절노동자 1만2천여명, 고용허가제 아래 들어오는 5만여 이주노동자(E-9)가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에 자리한다. 이들은 일하는 지역에 경계가 없고, 농장주 요구에 따라 하루 수차례 작업장을 바꾸기도 한다.

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농작업팀 실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부문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고용실태와 과제’(엄진영) 논문을 보면, 전국 258개 농가 설문조사에서 미등록 외국인을 고용하는 작물재배업 농가가 91%에 이른다. 고강도 노동이 필요한 특정 작물(마늘·양파·감자 등)로 한정하고, 시기를 수확기로 좁히면 이들의 고용 비율은 더 올라갈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왜 하려고 해?”

새벽 5시30분부터 함께 시작한 작업, 속도를 따라가기 버겁다. 동네 헬스장에서 드는 쇳덩이 20㎏과 쉴 틈 없이 들어올리는 양파 한 망은 차원이 달랐다. 밭 한마지기에 트럭 2~3대가 구역을 나누고, 고랑 양쪽으로 미리 정렬된 양파(농장주가 사전 작업해둔 것)를 따라 움직이면, 양옆으로 건장한 몽골 청년 둘이 뒤따른다. “(어깨에 올리며) 쓱, (짐칸에 실으며) 퉁.” 작업이 끝날 때까지 박자는 무한반복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3명이 한 조가 된 몽골 농작업팀이 트럭에 양파 까대기(상하차 작업)를 하는 모습. 하어영 기자

간바트가 예민한 데엔 이유가 더 있었다. 취재가 있기 하루 전, 농장주들 사이에 인력 확보 경쟁 과정에서 ‘불법 고용’ 신고가 있었다. 뒤이어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시행됐다. 사람이 부족한 농번기엔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쪽에서 약속했던 몇 사람 덜 왔다고 싸움이 났어. ‘왜 니 나한테 (사람) 데리고 가나, 니 불법 사람들 신고한다’ 하면서 결국, (신고) 했다고 하더라고.”

단속이 뜨면 신고된 현장만 멈추는 게 아니다. 행여 단속으로 불똥이 튈까 몽골팀을 비롯한 모든 농작업팀은 밭에 나가지 못하고, 여의도 40배에 이르는 주산지 전체가 손을 내려놓다시피 해야 할 수 있다. 수확기 사정을 잘 아는 한 농민회 임원은 “이곳에서 수확기에 단속을 해 인력이 끊기면 양파만 아니라 그다음 모내기 일정에도 차질을 빚게 돼 1년 농사가 꼬이게 된다. 그래서 함부로 단속하지 못한다”고 했다. 단속 대상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만이 아니라 농장주도 해당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을 고용할 경우 출입국관리법 등에 따라 고용주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올해 정말 사람 없어. 전쟁이야, 전쟁.”

곧바로 다른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멀리 농공단지가 보이는 밭 두마지기에선 앞선 작업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먼저 도착한 몽골팀 10여명은 이미 양파망 작업에 한창인 베트남, 타이 등 이주노동자 10여명과 섞여 들었다. 양파를 캐 망에 담으면, 몽골팀이 상차(까대기)를 맡는다. 한국인은 단 2명이다. 그나마 뒷짐을 지고 있다.

“밥상에 올라간 양파? 우리(이주 노동자) 아니면 없어”라는 간바트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간바트가 지목한 한국인 둘은 농장주였다. 이들은 컵라면 20여개를 끓이고 있었다.

“우린 안 먹어. 이거 끝내야 먹어.”

몽골팀은 새참을 건너뛴다. 잠시 뒤 함께 일하던 한 팀원이 다가와 간바트에게 “(기자는) 이제 그만 따라왔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다. 농장주들 분위기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인력 ‘전쟁’ 와중에 몽골팀이 겪은 건 단속만이 아니었다.

“실은 얼마 전 우즈베크 쪽에서 몇몇이 팀 만들었어. 옛날에 같이 일하던 사람들인데. 몽골보다 조금 싸게 해준다고 그랬대. 그게 말이 돼? 그런데 우리 쪽 비자 없어. 계속 일해야 해. 그쪽은 (관광비자로) 한달만 하고 가. 그러니까 우리는 (주인님들) 눈치를 봐야 해.”

지리산 동쪽 자락 한 양파 주산지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양파를 망에 담고 있다. 하어영 기자

‘농작업팀 인정하자’는 목소리도

인력 부족으로 벌어지는 경쟁은 농민과 이주노동자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한테 농촌에서만 예쁘게 일하면 비자 준다잖아? 그게 얼마나 웃기는 줄 알아? 그냥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주인님들한테도 나을걸? 양파 일이랑 그게 맞아?”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 중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농작업팀 역할을 인정하고 “농작업 전문 위탁사업체로 양성화시켜 정부가 관리하자”는 의견도 있다. 이날 몽골팀은 점심에 이어 저녁도 밭에서 나오지 않은 채로 인근 편의점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비 소식 때문이다. 이날 새벽 4시에 가장 먼저 일을 시작한 팀 최고참 잠발(가명)이 작업을 멈춘 건 자정이 넘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다. 따져보면 20시간이 넘는다. 비가 오기 전 이들이 밥도 거른 채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농장주는 캐놓은 양파가 비를 맞으면 제값을 못 받게 된다. 비 소식을 앞두고는 농장주가 몽골팀한테 매달릴 수밖에 없다. 몽골팀은 밭이 소나기로 질척해지면 다음날까지 트럭이 들어가 작업하기 힘들다. 까대기 동선이 길어지면 몸이 버티지도 못할 수 있다. 수입은 얼마일까. 어림잡아 하루 18만원 정도로 추정된다. (“그때그때 다르다”는 간바트의 말이 정답이지만.) 이날 간바트가 양파 한 망을 들고 배웅하러 나섰다. “힘드냐”고 물었더니 “협박당하는 것만 빼면 그래도 할 만하다”고 했다. 협박은 단속이랑 같지만 다른 말이다.

“신고한다고 그러면 제일 힘들어.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지, 당연히. 맞잖아. 불법 사람이라고 협박하면 제일 힘들지.”

그들은 언제 자신들의 몫을 평가받으며 협박 없이 일할 수 있을까.

“봤지? 전쟁이라니까. 이제 얼렁 가.”

“지금까진 이긴 거 같아?”

“전쟁이라고 꼭 이겨야 하는 건 아니야. 어떻게 백프로를 해.”

간바트가 웃었다. 이날 기자가 밭을 돌며 이동한 거리를 차량 기록으로 따져보니 30㎞를 조금 넘었다.

대구 전주/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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