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톡] 누리호는 왜 '심장 4개'가 필요했던 걸까

이승종 2022. 6. 2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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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코룔로프(좌)와 누리호


21일 발사된 누리호 위성이 정상적으로 궤도를 순항하고 있습니다. 위성은 22일 지상과의 교신에 성공했고, 오는 29일부터는 꼬마위성 4기를 차례로 궤도 위에 분출할 예정입니다.

누리호를 상공 700km 궤도로 끌어올린 주역은 전체 3단 가운데 맨 아래 자리한 1단 로켓입니다. 로켓의 심장 역할을 하는 75톤급 엔진 4개를 묶어(클러스터링) 도합 300톤급 추력으로 200톤짜리 누리호를 무사히 궤도에 안착시켰습니다. 추력은 발사체가 날아가는 힘을 의미합니다.

누리호는 자동차로 치면 가솔린 엔진 4개를 연결해 움직인 건데요. 이 엔진 클러스터링 기술에는 우주 로켓 개발의 역사와 누리호가 나아갈 길이 담겨 있습니다.

■ 발사체 핵심 기술 '클러스터링'

클러스터링 기술은 세계 최초 우주 발사체를 성공시킨 옛 소련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우주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 소련은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르게이 코룔로프가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발사체는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도 비행해야 하기 때문에 연료뿐 아니라 산화제도 필요합니다. 연료와 산화제로 구성된 추진제가 실시간 연소기로 주입되면 수천 도가량의 화염과 배기가스가 발생하고, 이에 따른 반작용으로 발사체가 날아갑니다.

중요한 건 엔진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었는데, 크기가 큰 엔진을 만들수록 설계공정이 복잡해져 성공 확률이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코룔로프가 내놓은 해법이 바로 소형 엔진 여러 개를 묶는 클러스터링 기술입니다. 개념은 간단하지만, 설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개 엔진에 일정하게 추진제를 주입해야 균형 잡힌 추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스타십의 32개 엔진 클러스터링 가상 이미지 (출처: 트위터 Erc X)


발사체는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경로를 변경하려면 클러스터링 엔진을 적절히 움직여 추력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이때도 서로 다른 엔진들의 위치 등을 고려해 일정한 움직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정하고 정교한 엔진 제어가 가능해야만 클러스터링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코룔로프는 결국 엔진 5개를 연결한 'R-7' 발사체를 개발, '스푸트니크 1호' 위성을 인류 최초로 발사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코룔로프에게도 클러스터링 기술이 쉬운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뒤이어 달 탐사선 'N-1'을 개발하며 엔진 30개를 연결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엔진 숫자가 많아지자 일괄 운용이 어려워진 탓이었습니다.

어쨌든 코룔로프가 이룩해낸 기술적 진전 속에, 이후 전 세계 우주 발사체에서 엔진 클러스터링은 핵심 기술로 자리잡습니다.

■ 미래를 향한 재사용 발사체 기반기술 확보

누리호 1단 클러스터링 엔진


누리호는 75톤급 엔진 4개를 묶어 300톤급 추력을 확보했습니다. 우리의 과학자들이 30개가 넘는 엔진을 만들어 200번 가까운 시험을 한 끝에 얻은 결실입니다.

전 세계 다른 발사체 클러스터링 엔진을 보면, 가장 유명한 스페이스X의 ' 팰컨 9'이 있습니다. 멀린 엔진 9개를 묶어 도합 774톤의 추력을 얻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가장 거대한 로켓인 ' 새턴 5'는 5개 엔진을 묶어 도합 3,400톤의 추력을 발휘합니다. 1개 엔진의 추력이 무려 680톤에 달합니다. 누리호 전체 추력의 2배가 넘습니다. 미국은 1960년대 새턴 5를 이용, 달 탐사에 성공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클러스터링 엔진 기술 확보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엔진 숫자를 늘리며 추력을 더 키울 수도 있고, 무엇보다 클러스터링은 재사용 발사체의 기반기술이 됩니다. 클러스터링에 묶여 사용된 엔진의 일부가 지구 귀환에 사용되고, 그렇게 귀환한 발사체들이 재사용됩니다. 재사용 로켓인 '팰컨 9'의 경우 9개의 엔진 가운데 1개 엔진이 귀환 때 사용됩니다.

현재 1kg당 7,000만 원 선인 누리호의 발사 비용을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낮추려면 무엇보다 재사용 발사체 개발에 성공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미 기반기술을 확보한 셈입니다. 참고로 지금까지 클러스터링 엔진 기술 확보에 성공, 실용 위성 발사체를 확보한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7개국뿐입니다.

이제 누리호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100톤급 엔진과 재사용 엔진 등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40년 1,00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주산업 시장을 향한 도전의 시작입니다.

이승종 기자 (arg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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