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살아있다] 강원도 태백 구문소에는 고생대 기후의 흔적이 남아있다

우경식 강원대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2022. 6.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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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문소의 전경. 절벽에는 작자 미상의 한문이 새겨져 있다. 우경식 제공

강원도 태백시에는 구문소라는 멋진 연못이 있습니다. ‘구문’은 구멍의 옛말로, 흐르는 강이 절벽에 구멍을 뚫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멋진 모습으로 조선 시대부터 명소로 알려졌는데, 구문소는 지질학자에게도 유명합니다. 구문소 주변의 석회암에서 과거 이곳이 매우 건조한 바닷가였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구문소 석회암에는 화석이 별로 없다

구문소는 태백시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황지천과 철암천이라는 두 하천이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황지천의 강한 물길이 절벽을 강하게 침식했고, 그 결과 물길이 절벽을 뚫으면서 멋진 통로가 생겼습니다. 산을 뚫은 모양의 연못인 구문소입니다. 그런데 구문소 바로 왼쪽에는 동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일본인들이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사람과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뚫어놓은 터널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물이 지나는 자연 동굴과 길이 지나는 인공 동굴을 한 번에 구경할 수 있습니다.

구문소 석회암의 소금흔. 정육면체 모양의 소금 결정이 물에 녹아 사라지고 그 공간을 방해석 결정이 채우면서 네모난 자국이 남았다. 우경식 제공

구문소 주변에서는 약 5억 2000만~4억6000만년 전 고생대에 쌓인 퇴적암을 찾을 수 있습니다.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석회암이 대부분이고 사암과 셰일도 볼 수 있습니다. 구문소가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어떤 환경에서 퇴적암이 쌓였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석회암은 일반적으로 물이 아주 맑고 따뜻한 바다에서 만들어집니다. 조개나 산호 같은 생물이 죽은 뒤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딱딱한 부분이 탄산염퇴적물로 쌓인 것입니다. 이 탄산염퇴적물이 빗물을 맞으면 석회암으로 변합니다. 석회암이 생기고 하천 침식으로 동굴이 만들어지다니 구문소는 지질 탐사에 딱 적합한 여행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구문소 석회암에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석회암에서는 화석이 잘 발견되는 편인데 구문소에서는 화석을 찾기 힘듭니다. 석회암은 생물의 단단한 부분이 쌓여서 만들어지는데, 생물의 흔적을 볼 수 없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자세히 관찰하면 소라나 전복 같은 연체동물인 복족류의 껍데기 화석만 드물게 나옵니다. 

네모난 자국을 낸 범인은 소금

(왼쪽) 석회암에 남은 길쭉한 모양의 석고 결정. 석고는 경도가 약하여 분필이나 조각상 등에 쓰인다. (오른쪽) 구문소 석회암에서 찾을 수 있는 복족류의 껍데기 화석. 높은 염분을 버틸 수 있는 복족류만 화석으로 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우경식 제공

구문소 석회암의 더 신기한 점은 석회암 중간중간에서 발견되는 네모난 자국입니다. 누가 찰흙에 찍은 것처럼 완전히 네모난 자국 안에 흰색의 결정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 흔적을 남긴 범인은 바로 소금입니다. 소금 결정은 항상 정육면체 모양으로 자랍니다. 석회암이 만들어질 때 주사위 모양의 소금 결정이 다른 퇴적물과 함께 쌓인 것입니다. 나중에 소금 결정은 물에 녹아 사각형의 흔적만 남았고, 이 공간을 또 다른 탄산염 광물인 방해석이 채운 것입니다. 이 흔적을 ‘소금흔’이라 부릅니다.

석회암에 남은 소금흔은 고생대 시대에 구문소가 바닷물이 말라 소금 결정이 생길 정도로 매우 건조한 기후였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바닷물이 말랐다는 증거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바닷물이 마르면 소금은 물론 분필의 재료로 쓰이는 석고라는 무른 광물도 만들어지는데, 구문소에서는 석고 결정도 발견됩니다. 석고가 만들어지려면 바닷물의 80%가 증발해야 하고, 소금이 만들어지려면 무려 바닷물의 90%가 증발해야 합니다. 소금과 석고처럼 아주 건조한 기후에서 햇빛에 의해 바닷물이 증발하여 만들어지는 광물을 ‘증발 광물’이라고 합니다.

이런 증발 광물은 먼바다에서 분리된 얕은 바다에서 만들어집니다. 증발 광물과 다른 증거를 종합하면, 지질학자들은 고생대 시절 구문소 지역이 짠 바닷물이 상대적으로 묽은 바닷물과 섞이지 않는 고립된 얕은 바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문소 석회암에서 화석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 이유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곳 바닷물의 염분이 너무 높아 매우 짠물에서도 살 수 있는 복족류만 살아남아 화석으로 남은 겁니다.

지금은 강물이 흐르는 이곳이 찌는 듯이 덥고 건조한 바다였다는 사실이 상상이 가지는 않습니다. 돌에 새겨진 흔적을 좇아 연구하다 보면 지질학자야말로 다른 어떤 일보다도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한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구문소는 지질학적 가치가 커서 일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니, 나중에 꼭 한 번 가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우경식 교수가 구문소 주변에 펼쳐진 고생대 석회암 지대를 살펴보고 있다. 우경식 제공

※필자소개

우경식 강원대학교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해양지질학을 공부하고 1986년부터 강원대학교 지질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동굴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IUCN 세계자연유산 심사위원으로 세계의 지질유산을 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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