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부정적 정서는 주의를 빼앗는데 능숙하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2. 6.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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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원래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지만 생각보다 금방 지나간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는 보통 여러 과목을 골고루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심히 걱정되는 과목이 하나 있어서 거기에 특별히 집중하다가 나머지 과목들을 공부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간과 자원이 무한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를 지나치게 걱정하고 그 일에 몰두하다보면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되곤 한다.

이렇게 마치 한 곳만 딱 비추는 조명처럼 걱정과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그 원인이 되는 무엇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부정적인 감정의 기능은 문제를 찾고 빨리 해결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큰일이야. 지금 네 주변에 뭔가 문제가 있어. 어서 해결해”라며 호들갑을 떠는 존재이기 때문에 문제에 집중을 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주의력과 자원을 집중시키는데 능숙한 부정적 정서 덕분에 문제 해결 과정이 빨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작용이 있다. 흔히 어떤 하나에만 집중하다보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고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별로 소중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해서 가족이나 친구 관계를 전혀 돌보지 못한다든가, 어떤 일 하나가 망했다고 해서 마치 인생 전체가 싸그리 망한 것처럼 느끼는 일 등이 그 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써보라고 하면 수십가지는 나올 것이다. 건강, 화목한 가족, 친한 친구, 취미 활동, 지적 호기심충족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인생을 잘 사는 데 있어 중요한 것들은 많고 많은데 부정적 정서는 때로 이들을 둘러보지 못하게 만든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부정적 정서를 겪는 우리들이 부정적 정서를 적당히 활용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감정이 호들갑을 떨면서 "너 큰일났어"라고 했을 때, 부정적 정서는 원래 시끄럽게 알람을 울리므로 “그래? 다행히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닌 거 같아. 이렇게 저렇게하면 되겠다" 라는 태도로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나의 이성까지 같이 휩쓸려서 감정이 주는 메시지를 현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것이다. 실제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오경보가 울릴 때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의를 옮겨가서 내 삶에서 큰 문제는 없지만 중요한 다른 것들, 예컨대 친구관계, 맛있는 것 먹기, 취미활동 등에 집중하면 된다.내 삶에 비단 문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크게 문제가 없는 부분도 많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이렇게 행복을 주는 요소들에도 집중해야한다. 그러지 않고 부정적 정서와 그 대상들에만 집중하게 되면 내삶에는 잘못된 것들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요는 주의를 골고루 주는 것, 부정적 정서가 가리키는 곳만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지곤 하는데, 이렇게 내 삶이 온통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지 어디에 주의를 주느냐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또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에도 내가 여기에 장단을 맞추지 않으면 생각보다 금방 지나간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걱정이 될 때 흔히 내 걱정의 내용들이 다 사실인 것 같다며 오들오들 떨곤 하지만이 또한 어디까지나 내 머리가 만들어낸 상상일 뿐이며 따라서 걱정은 현실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내 마음이 지금 나한테 어떤 것들이 문제인 것 같다고, 여기에 좀 신경을 써 보라고 말해주고 있다고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감정이 주는 메시지 자체를 현실인 것처럼 여기고 어떤 한 문제에서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가 자신은 왜 이것밖에 안 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면 되려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줄이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어떤 문제의 존재가 자아를 위협하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숨기는 데 더 급급하게 되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채찍질과 불안,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기(심한 다그침과 자기 비하)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부끄럽다고 느껴질 때에도 이것 또한 나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이며 사실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내 성적이 좀 낮고, 시험에서 떨어지고 한 일들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하고 진지하게 물어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그냥 내 기분이 나쁜 것 뿐 아무도 죽지 않았다. 부정적 정서가 나의 주의를 집중시켜서 그렇지 이 문제가 내 삶 전체를 좌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 내 삶에는 이보다 훨씬 중요한 또 다른 요소들이 많음을 기억해보자.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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