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시덥지 않은 내 인생처럼.. 흔해서 더 끌리는 한국의 맛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2022. 6.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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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의 pick] 돼지갈비
서울 역삼동 '유대감 숯불갈비'의 돼지갈비.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부산 범일동에 가면 ‘조방갈비’라는 집이 있다. 개업한 지 40년 정도 된 이 집에 드나든 것이 대략 30년 전부터다. ‘조방’이 조선방직주식회사의 줄인 말임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였다. 어린 시절, 외식으로 돼지갈비 먹는다는 말을 들으면 동생과 나는 흥분하여 빨리 집을 나서자고 부모님을 재촉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이 집에 들어섰을 때, 소주잔을 옆에 둔 채 얼굴이 불콰해진 남자 어른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잡느라 바쁜 여자 어른들이 보였다. 우리도 그 사이에서 자리를 잡고 고춧가루로 간단히 양념한 파채와 함께 간장과 설탕 양념이 강하게 된 돼지갈비를 구워 먹었다. 게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에 밥을 비비고 바싹 익어 과자처럼 되어버린 고기 한 조각에 어머니가 시켜준 사이다 한 잔을 마셨다.

이처럼 돼지갈비의 기억은 짜장면처럼 유년 시절의 시작과 맞닿아 있다.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비싼 식재료 중 하나인 소갈비와 달리, 저렴한 몸값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만 먹을 것 같은 부산에는 초량동 등 부둣가 주변에 의외로 오래된 돼지갈비집이 많다. 부두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주로 찾던 메뉴가 돼지갈비였다. 돼지갈비는 싼 맛에 푸짐하게 먹는 음식이었다.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돈이 생기면 사람들은 소갈비를 찾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 그럴 때 돼지갈비를 앞에 두고 불을 올린다.

간장과 설탕 양념이 질렸다면 서울 상암동 ‘성산왕갈비’를 가보는 것이 좋다. 오래된 아파트 상가 2층에 있는 이 집은 넓은 홀 빽빽이 사람들이 늘 들어차 있다. 메뉴를 보면 한우와 삼겹살도 취급하지만 역시 사람들이 고르는 것은 돼지갈비다. 4인분 정도면 불판을 가득 덮어버리는 크기의 돼지갈비가 짝으로 나온다. 곁들이는 찬은 와사비 분말을 풀어 만든 간장소스 위에 얹은 양배추 채, 김치 정도가 전부다. 마치 아웃포커싱을 하듯, 이 집의 모든 기운은 돼지갈비 한 짝에 모두 달렸다.

밝은 선홍빛 고기는 오래 묵은 느낌이 없다. 방석같이 널찍한 돼지갈비가 가스불 위에서 천천히 익어갔다. 굵은 소금이 녹아 고기에 스몄다. 융점에 다다른 동물성 지방이 녹아내렸고 이윽고 발화점 이상의 온도에서 그을음을 내며 갈색이 되었다. 커다란 가위로 고기를 재단했다. 갈비뼈와 고기를 구분했다. 살코기와 비계는 6:4 정도 비율, 익기는 미디엄을 훌쩍 넘어 내부 온도가 섭씨 70도 이상이었다. 소금 간만 해서 먹는 돼지갈비는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었다. 찬으로 나오는 달걀찜과 된장찌개도 잡스럽지 않았다. 달걀과 된장으로만 맛을 내어 굵은 선의 돼지갈비와 허허로움 없이 꽉 차게 어울렸다.

소금 간 한 돼지갈비도 좋지만, 간장과 설탕으로 양념한 돼지갈비는 한국인으로 사는 이상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는 강남 선릉역 근처 ‘유대감 숯불갈비’에 간다. 전라도 출신 여사장이 전장의 장군처럼 손님을 맡고 음식을 내는 이곳은 점심과 저녁 각각 다른 이유로 손님이 몰린다. 점심에는 전라도 밥상이란 이름으로 1만원짜리 한 장 값에 백반 한 상을 낸다.

고기를 바라는 객(客)은 키오스크 주문판에서 돼지갈비란 이름을 꾹 누른다. 깔리는 찬은 양파채, 깍두기, 열무김치 같이 흔하지만 또 흔하게 맛볼 수 없는 것들이다. 풋기가 살짝 가신 열무는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왔다. 조직감이 살아 있는 깍두기는 흰밥 위에 국물까지 올려 비벼 먹고 싶었다. 마늘에서 우러난 알싸한 맛에 고춧가루, 젓갈이 잔잔하게 깔리며 빚어낸 감칠맛에 “어어어~” 하다 보니 깍두기 한 접시를 다시 청하고 말았다.

돼지갈비는 초벌하여 내어주는 덕분에 굽는 난도가 낮아졌다. 철망 위에서 고기를 이리저리 굴렸다. 설탕과 간장은 120도 이상 온도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캐러멜화(化)되었다. 따로 주문한 파김치에 고기를 둘둘 말아 입에 넣었다. 깍두기 하나를 밥에 올리고 고기 한 점으로 입가심을 했다. 누군가는 짜고 달다 하여 낮게 보는 맛이 길게 이어졌다.

흔한 맛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맛에 기대 산 시간은 짧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살아온 만큼 시간이 지나도 다시 찾게 되는 것은 그 흔한 맛이라는 사실이다. 뒤돌아보면 나의 인생이라고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았다. 돼지갈비의 익숙한 맛에 이끌리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조방갈비: 돼지갈비 국내산 1만3000원·수입독일산 1만원.

#성산왕갈비: 돼지생왕갈비 1만6000원, 삼겹살 1만6000원, 등심 3만9000원.

#유대감 숯불갈비: 전라도식 백반 1만원, 돼지갈비 1만6000원, 파김치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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