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사들이 파업한다면?

안형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 입력 2022. 6. 25. 03:01 수정 2022. 6. 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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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안형준의 안녕, 우주!]

1973년 11월 16일, 에드 깁슨·제럴드 카·윌리엄 포그 세 명의 우주인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하늘의 실험실’이란 뜻을 지닌 우주정거장 ‘스카이랩(Sky lab)’을 향해 떠났다. 스카이랩은 미국 정부가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달 탐사 프로그램을 예산 문제로 취소하고, 만들어 놓았던 새턴V(파이브) 로켓을 활용하기 위해 3단부 연료 탱크를 우주인의 거주 공간으로 개조해 만든 미국의 첫 우주정거장이었다. 1973년 5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세 차례 원정대를 통해 각각 우주인 3명씩 9명이 방문해 우주과학 실험 임무를 수행했다.

1973년 미국이 개발한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에서 활동 중인 우주인들의 모습. NASA

스카이랩-4로 명명된 세 번째 원정대의 우주인 3명은 아폴로 19호 우주인으로 선발된 이들이었는데, 아폴로 계획이 취소되자 그대로 팀을 이루어 처음으로 우주를 방문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인류의 우주 장기 거주 시대를 여는 다양한 과학 임무에 큰 기대를 걸었다. 첫 번째 원정대가 28일을, 두 번째와 세 번째 원정대가 59일을 머물도록 계획했는데 스카이랩-4 우주인들의 임무 기간을 84일로 연장했다.

이들의 임무는 우주 유영을 통한 스카이랩 시설 정비부터 우주인 자신들의 신체 변화 관찰, 지상과 태양 관측, 그리고 때마침 지구에 가까워지고 있던 코후테크 혜성을 관측하는 임무까지 다양했다. 지상국에서는 이들에게 매일 아침 분 단위의 일정표를 짜주며 하루에 잠자는 8시간을 뺀 16시간 일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강도 훈련을 통과한 우주 비행사라고 해도 매일 밀려드는 임무를 모두 완수하기 버거웠고, 결국 NASA가 계획했던 일정보다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한 우주 비행사가 우주 멀미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상국에 보고하지 않은 사실을 문제 삼아 지상국은 우주인들을 질책했다. 이들은 지상국에 24시간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해야 했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기록하는 등 좁은 우주선 안에서 사생활을 숨길 수도 없었다.

스카이랩 승무원과 지상국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자,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지상국은 우주인들에게 하루 휴가를 주었다. 이들은 여전히 하루 종일 몇 가지 간단한 실험을 했지만, 샤워를 하고 책을 읽고 창 밖으로 지구를 내려다보며 망중한을 즐겼다. 휴가 이후 우주인들과 지상국은 그간의 강압적인 업무 관리 스타일을 조정했다. 승무원에게 완전한 휴식과 식사 시간을 제공하고 분 단위 일정을 완료해야 할 작업 목록으로 대체해 승무원이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도록 했다. 1974년 2월 8일, 스카이랩-4 대원들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환했다.

문제는 이들이 귀환하고 2년 후 언론에서 이들의 임무를 재조명하면서 벌어졌다. 하루 휴가를 보내는 동안 지상과 90분간 연락이 끊긴 적이 있었는데 지상에서는 스카이랩-4 대원들이 과도한 업무에 불만을 품고 의도적으로 하루 동안 통신을 끊었던 것으로 와전된 것이다. NASA와 우주인들은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고의적인 통신 차단이나 파업은 아니었다고 즉각 해명에 나섰지만 ‘사상 초유의 우주 파업’은 언론을 통해 급격히 퍼졌다. 2014년 윌리엄 포그가 사망했을 때, 미 뉴욕타임스는 “우주에서 파업을 했던 우주인, 84세 나이로 잠들다”라고 부고를 전했다.

언론의 오해로부터 비롯된 이야기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가능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목숨을 담보 잡힌 우주라는 극한 환경과 일방적인 역학 관계에서조차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

‘우주 파업’ 이야기는 국가적 임무에 대해 엄격하고 통제적인 정부와 자기 일의 가치를 확신하는 고도로 훈련된 근로자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을 조명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우주인의 법적 지위나 근로 환경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주인 개인의 심리 상태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우주인 선발 과정에서 정서적 안정성을 테스트해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경우 배제를 하거나, 임무 수행 중 돌발적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식이었다. 1995년 6월 러시아의 미르 우주정거장에서 두 명의 러시아 우주 비행사는 과로와 초조함을 이유로 우주정거장의 태양광 전지판 검사를 위한 우주유영 임무를 거부했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국가 간 지나친 경쟁을 기반으로 한 인류의 우주 진출을 우선시할 경우 우주 공간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와 존재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인권은 성별, 민족, 종교 또는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개인이 고유한 인간으로 존재함으로써 갖는 불가침의 권리다. 이제 국가는 국가 간 경쟁을 넘어 지구 인권을 우주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일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

우주의 평화적 이용이나 사고로 인한 피해 보상, 우주인 구조 등에 대한 국제 조약은 이미 존재하지만, 국가 간 분쟁을 예상하고 자체 시행을 전제로 하는 구속력이 약한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우주 탐사에서 민간 부문이 급속히 성장하면, 국가는 태양계 전체와 그 너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인권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생명 유지를 위한 산소와 물을 공급하는 민간 우주정거장, 또는 달이나 화성 같은 식민지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최근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세계에서 자체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7번째 국가가 된 한국도 이제는 이 물음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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