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예술가에게 허용하는 세계
개막 3일 뒤 카셀 도큐멘타 현장에 도착하니, 반유대주의 논란 한가운데 서 있던 타링 파디의 작품 ‘민중의 정의’는 이미 철거되었다. 작품을 붙잡았을 비계와 지지대만이 어떤 사건의 흔적처럼 남겨져 있었지만, 이 역시 지워지는 중이었다.
2017년, 큐레이터 아담 심칙이 거대한 재정적자를 남겨둔 채 행사를 마무리하여 스캔들에 휩싸였던 카셀 도큐멘타는 인도네시아 출신 예술가 콜렉티브인 루앙루파를 예술감독으로 선임하면서 도큐멘타의 다음 비전을 모색했다. ‘최초’의 아시안, ‘최초’의 콜렉티브 예술감독이 되어 도큐멘타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 이들은 ‘유머, 관대함, 독립, 투명성, 재건, 재생’ 같은 가치를 포괄하는 인도네시아의 쌀 헛간 ‘룸붕’을 키워드로, 내용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나 ‘탈중심’을 지향하며 전시를 만들었다. 농작물을 나누던 과거의 룸붕은 이제 돈, 시간, 공간, 지식, 노동을 나누는 창고가 되어 공동체의 삶을 독려한다.
편향성에서 벗어나 주변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루앙루파는 도큐멘타의 핵심 전시공간으로 사용되던 카셀 중심지보다 카셀의 동쪽 지역에서 발굴한 전시공간에 집중하여 작품을 선보였다. 참여작가들은 기획자의 설계하에 전시공간을 지정받기보다, 그들이 원하는 공간을 다른 참여작가들과 논의하면서 결정해 나갔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의 효율성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모든 형태의 억압과 인종차별을 거부하고 개선하며, 예술을 통해 인류가 처한 문제를 논의하고자 했던 이들의 전시가 차별과 혐오의 문제 한가운데로 빠져든 것은 아이러니하다. 도큐멘타는 ‘민중의 정의’가 반유대주의적 증거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작품의 철거가 최선의 선택이었는가의 논의를 안고 100일의 여정을 가야만 한다.
김지연 전시기획자·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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