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사비 재배 2년째" 베테랑 두 일식 셰프의 맛깔난 도전
이택희의 맛따라기
“지난해 봄 모종을 사다 심었는데 올 봄에 꽃이 피었다. 벌 나비가 들어와 수정을 하도록 비닐하우스를 개방해 씨를 한 줌 수확했다. 벌레도 맛있는 걸 아는지 해충도 따라 들어와 잎을 다 갉아먹었다. 포기 나누기와 씨앗 번식을 함께 하려고 한다. 일본에 살 때 방법을 배웠다. 요리사 시작할 때부터 와사비를 워낙 좋아해 언젠가 나도 키워보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농장을 찾아다녔다.”
옮겨심기를 한 번은 해야 하는데, 잎을 자르지 않으면 수분과 영양이 잎으로 많이 가서 뿌리와 땅속줄기 성장이 더디다. 포기가 자리를 잡아 땅속줄기가 굵어지면 채취한다. 이때 노두(蘆頭)에 발생한 어린 새싹을 떼어내 재배장에 심는다. 포기 나누기다. 그걸 모종으로 팔 수도 있다.
와사비, 고추냉이와는 다른 식물
작물에 이토록 해박한 그는 농부가 아니다. 유명한 ‘어란 장인’ 양재중(49) 요리사다. 그가 횟집 ‘쿠마’를 운영하는 ‘여의도 용왕’ 김민성(48) 요리사와 손잡고 와사비 재배에 도전했다.
2년 전 ㈜팜앤드파크라는 농업회사법인을 공동 설립했다. 25~30년 동안 일식을 하면서 늘 아쉬움을 떨칠 수 없는 식료품이 와사비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일본에서 8~9년(양 1998~2005년, 김 1997~2005년) 음식을 공부하고 생업까지 일궜던 일식 요리사다.
지난 4월 21일 일본에 갔던 김 셰프가 29일 귀국한다고 연락을 했다. 이바라키현 북부 산간의 다이고마치(大子町) 지역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와사비 농장에 다녀오는 길이다. 농장 하루 방문하려고 코로나 격리 6일을 감수해 8일이나 걸린 출장이다. “가보니까 농장이 아이데예. 물이 여기저기 퐁퐁 솟아나는 깊은 계곡 숲 그늘의 물 흐르는 모래밭에 줄 맞춰 포기를 꽂아주고 자라면 캐기만 하는 거 같더라고예.”
여의도 ‘쿠마’의 회 작업실에서 마주한 그는 가방에서 와사비 땅속줄기, 즉 생 와사비를 꺼내 즉석에서 상어가죽 강판에 갈아 맛을 보여줬다. 갈아서 잠시 둔 두 가지 와사비를 비교해 먹어보니 맛이 확연히 달랐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신문에서 왜 우리말 순화어 고추냉이가 아니라 일본말 와사비를 쓰는지 의아할 것이다. 화를 낼 수도 있다. 그 국어사랑은 존중하지만, 와사비와 고추냉이는 다른 식물이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일본말을 그대로 쓴다. 국립국어원도 상담 코너 ‘온라인가나다’에서 “와사비와 고추냉이가 다른 식물이고 먹는 방식이나 모양, 특성이 다르긴 하나 (언중이) 비슷한 대상으로 인식해왔으므로 그렇게 순화했다”고 양해를 구하는 취지로 답변한다(2020년 9월 28일).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와사비를 재배해 팔고 있는 평창 ‘흥’농장 차대로(44) 대표는 블로그에 이런 하소연을 했다. “제가 와사비를 경작하며 몇 번 TV에 출연했습니다. 그때마다 와사비라는 단어를 사용하다가 욕을 먹었습니다. 욕먹는 것은 아무렇지 않지만, 고추냉이가 아닌 와사비를 키우는 농부입니다.”
양산단계 전엔 일본서 수입 병행
재배시설은 양 셰프가 일본에서 관찰한 기억을 살려 직접 만들었다. 지리산 주능선 전체를 마주 보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 중기리 서룡선(1073m) 중턱의 해발 450m 바람골에 있다. 필요한 자재가 국내엔 없어서 개척자의 고난을 즐기면서 비슷한 것을 찾아내거나 손수 제작했다. 가로 3m, 세로 6m, 높이 70㎝ 재배상 21칸을 들일 수 있는 400㎡(120평) 3중 비닐하우스에 재배상 3칸을 만들었다. 현재 1칸에 와사비 70여 포기를 키우고, 2칸에서는 번식 실험을 한다.
재배한 걸로 수급이 가능할 때까지는 다이고마치에서 와사비를 수입하기로 계약했다. 대신 일본에서는 한국의 감말랭이를 원한다. 양 셰프가 곶감 전문 생산자인 덕택에 교환무역을 할 수 있게 됐다. 7월 초 첫 물량이 들어올 와사비는 매월 받기로 한 양이 매우 적어서 일반 판매는 못 하고 업장에만 기업 간 거래(B2B)로 공급한다.
사업성을 걱정하자 두 사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국산은 물이 많고 향과 단맛이 적어 업장에서 선호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모종을 구입한 기존 품종에 일본서 몇 가지 더 들여오고, 좋은 자연환경에서 재배해 원산지 맛이 나게 해보겠다. 요리사 특기를 살려서 다양한 가공품을 만들 생각이다. 잎·줄기·뿌리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쓸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장아찌만 담근다. 색다르게, 신세대 식성에 맞는 식품으로 개발할 여지가 많다. 일본에는 가공품이 80~100가지는 된다. 우리가 잘하는 게 요리니까, 그 실력을 살려서 다른 재배자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하면 된다.”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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