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자신과의 게임, 스코어보다 인성 핸디캡이 중요

입력 2022. 6. 2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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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욱의 진심골프
골프를 하다보면 평소와 다른 동반자의 모습에 놀란다. 샌님 같던 친구에게서 그 누구보다 강한 승부욕을 보게 된다. 그저 유쾌하기만 한 줄 알았던 친구에게서 신중함을 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필드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만큼 새로운 나를 만나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놀라게 된다. 어린 시절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들에게 끈기와 인내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 골프를 시작한 뒤 ‘내게 의외로 집요함과 끈기가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골프 연습 하듯이 공부했으면 뭐가 돼도 됐을 텐데’라는 자조도 흔한 골프 대화의 일부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데에는 한 번의 라운드로 충분하다’라는 스코틀랜드의 속담도 있다. 골프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도 긴 시간을 플레이한다. 샷을 하는 순간은 길지 않지만 매 상황마다 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올바른 선택이 따라야만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심판이 없기 때문에 동반자와의 상호 체크에 의해 플레이를 이어가게 되고, 그 사람이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심지어 그 사람의 인간성까지 볼 수 있다.

인성 면접 같은 18홀 라운드

내가 낙관적인지, 비관적인지도 필드에서 알게 된다. 티샷이 OB 구역이나 페널티 구역에 갔을 때 ‘살아있을 거야’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건 백퍼센트 죽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같은 거리가 남았어도 ‘투 퍼트할 수 있겠네’와 ‘이건 무조건 스리 퍼트인데‘는 전혀 다르다.

골프를 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실용적인지 허세가 있는지도 알게 된다. 실용적인 사람은 긴 파3에서 드라이버를 잡는 것을 창피해 하지 않는다. 꼭 남들과 같거나 짧은 클럽을 잡을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허세가 있는 골퍼는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이걸 아이언이 아니라 우드로 친다고? 지금 몽둥이를 들고 온 거야?”

이는 패션과 골프장비에도 이어진다. 의외로 상급자인데도 초중급자용 골프 클럽을 쓰는 사람이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본인의 실력과 체력에 비해 과해도 너무 과한 스펙의 골프채를 휘두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골프웨어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비싼 브랜드만을 찾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주 실용적으로 일상복과 골프복을 겸하면서 갖춰 입는 사람도 있다.

골프를 하다보면 내가 얼마나 공격적인지도 알게 된다. 무모하리만큼 핀만 보고 공략하는 사람, 장해물이나 산을 돌아보지 않고 넘기는 골퍼들, 도무지 레이업이라고는 모르는 닥치고 공격하는 골퍼들도 있다. 반대로 모험보다는 안전 위주의 보수적인 플레이를 하는 골퍼가 있다. 이 플레이 스타일만으로도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이지 않는가. 그 플레이 속에 나도 모르는 내가 있다.

정작 본인은 못 느낄지 모르지만,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인지 남을 탓하는 사람인지도 보인다. 홀컵의 크기는 108밀리미터다. 그래서 ‘백팔번뇌’ 하게 되는 것이 골프이고, 108가지 핑계가 있는 것이 골프라고 한다. 캐디 탓부터 골프장 탓, 날씨 탓, 주변 환경 탓, 동반자 탓까지…이런 사람이라면 아마도 직장은 물론 사회에서도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돌리거나 상황을 핑계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린플레이를 생각해 보자. 누군가가 퍼팅을 한다. 누가 봐도 클럽페이스가 닫혔거나 열려 맞은 건데 경사 탓 또는 그렇게 경사를 알려준 캐디 탓을 하지 않는가.

골프를 해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인색한 사람인지 넉넉한 사람인지도 알 수 있다. 내기를 하고 개평을 줄 때, 동반자에게 컨시드를 줄 때, 룰을 적용할 때에도 동반자들에게 얼마나 관대한지가 보인다. 직장이나 필드 밖 세상에서는 누구보다도 넉넉하고 여유 있는 사람이지만 골프장에만 오면 불타는 승부욕에 너그러움을 잃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 사람이 원칙적인지, 변칙적인지도 보게 된다. 골프 약속부터 골프 룰까지 얼마나 원칙에 충실히 하느냐가 보인다. 동반자의 아량이나 캐디의 관대함으로 줄여주는 스코어도 용납하지 않는다. 첫 홀에 ‘일파만파’ 혹은 ‘올파’로 적은 스코어를 라운드가 끝나서 본인의 스코어만 진짜 스코어로 고쳐 적는 지인도 있다. 반대로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말도 안 되는 거리에 컨시드를 남발하고 ‘좋은데 놓고 쳐’ ‘옆에 빼놓고 칠게’를 틈만 나면 연발하는 골퍼도 있다. 너무 원칙적인 것이 때론 유별나 보이기도 하는 것이 골프지만 지나치게 변칙적이면 너무 융통성만 부리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골프는 세상의 모든 스포츠 중에 가장 자율적인 스포츠다. 동반자가 마커 역할을 하지만 스스로 지켜가는 것이 기본인 스포츠다. 그러다보니 18홀 동안 수많은 유혹이 생긴다. OB가 났음에도 알까기를 해서 볼이 살아있다고 외치는 것은 그 중 가장 큰 유혹이다. 이외에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정직하지 못한 행동도 많다. 내가 얼마나 정직한 사람인지를 보게 되는 많은 상황들이 18홀 동안 이어진다.

‘동반자가 안 보는 거 같은데 나무 밑에서 살짝 옆에다 놓고 칠까’ 같은 유혹에 흔들린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골프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나이며, 골프를 몰랐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평소에는 유순하기 그지없는 어느 골퍼가 벙커 샷의 탈출에 실패하고 욕을 하면서 벙커안의 모래를 심하게 내려치는 경우를 본적이 없는가? 잔디에 화풀이를 하고 골프채에다가 성질을 부리는 골퍼를 본적이 없는가? 이 역시 골프가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던 그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골프는 유혹 이겨내는 게임

어느 기업의 대표는 회사의 임원을 승진시키거나 외부에서 스카우트를 할 때 반드시 골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시간을 같이 플레이를 하면 이 사람이 회사에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18홀의 골프가 4시간이 넘는 면접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샷을 하는 것을 보거나 플레이 하는 것을 보면 왠지 쿨한 느낌을 주는 골퍼가 있다. 반대로 자신 없어 보이고 위축돼 보이는 골퍼도 있다. 루틴도 마찬가지다. 루틴이 간결한 사람은 왠지 일처리도 깔끔하게 할 거 같지 않은가?

라운드가 끝나고도 골프는 이어진다. 식사자리에서도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온갖 후회와 아쉬움만 토로하는 골퍼가 있는가 하면, 지난 부족함은 잊고 그래도 더 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하는 골퍼가 있다.

골프의 핸디(캡)는 아스팔트를 뚫고서라도, 바퀴벌레처럼 결국 나온다는 말이 있다. 전반에 라베(라이프 베스트)를 할 기세였다가 후반 마지막 몇 홀에 무너져서 결국 본인의 핸디캡 정도의 플레이를 한다는 말이다. 골퍼의 성격이나 품성에, 심지어 인간성에도 핸디캡은 있다. 비록 골프 스코어는 좋지 못하더라도 라운드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골프장 밖에서 좋은 사람이 골프장 안에서 안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골프장 안에서 좋은 사람은 골프장 밖 세상에서도 반드시 좋은 사람이다. 나의 인간성 핸디는 얼마인가?

강찬욱 시대의 시선 대표.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고, 현재는 CF 프로덕션 ‘시대의 시선’ 대표로 일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골프의 기쁨』 저자, 최근 『나쁜 골프』라는 신간을 펴냈다. 유튜브 채널 ‘나쁜 골프’를 운영하고 있다.

강찬욱 시대의 시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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