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여인 둘러싼 미묘한 군중심리[책과 삶]

선명수 기자 2022. 6. 2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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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향거리
찬쉐 지음·문현선 옮김
문학동네 | 480쪽 | 1만7000원

평범한 이들의 삶을 기이하고 몽환적으로 그려내는 실험적 스타일로 ‘중국의 카프카’라는 찬사를 받은 소설가 찬쉐의 대표작이다. 찬쉐가 1990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로, 중국 아방가르드 문학을 대표하는 그의 독특하고 실험적인 작풍이 응축된 작품이다.

소설은 오향거리에 새로 이사온 ‘X여사’에 대한 이야기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비밀스러운 X여사를 둘러싸고 주민들은 저마다 나이부터 과거까지 무수한 추측을 이어간다. 급기야 X여사가 오향거리 여성들이 선망하는 Q선생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까지 퍼지자, 사람들은 더욱 열성적으로 X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을 파고든다.

X여사는 강가에서 볕을 쬐며 옷을 벗어던지는 등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이 보기에 기이한 행동을 일삼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들에게 특별한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X여사는 외계인이 되었다가 무녀, 혹은 존경하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소설은 주민들의 머릿속에서 교묘하게, 또 현란하게 일어나고 있는 X여사에 대한 ‘재현’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이런 군중의 “저열한 근성”을 서늘하게 관조하면서도 그 누구의 편에 서지도 않고 그 모든 진술들을 긍정한다. 찬쉐는 한국어판 서문에 “제가 다룬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며 “오향거리의 소시민을 사랑해 달라”고 썼다.

“사회 최하층의 보잘것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철학적 진리를 막힘없이 늘어놓을 때 반감을 품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본질적인 삶’이 바로 그렇거든요. 늘 철학이란 그런 소소한 사람들에게 속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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