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줄인다면서 과로사 위험 부채질한 노동부

유선희 기자 2022. 6. 2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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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유연화로 인한 변화
노동시간 늘어나거나 '불규칙적'
중대재해 감축 목표에는 역행
죽음 부르는 '단기과로' 늘 듯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지난 23일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의 핵심은 ‘주 52시간제 유연화’다. 노동시간 관리 단위를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바꾸겠다는 것으로, 이 셈법대로 하면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일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노동부가 또 다른 우선 정책과제로 ‘중대재해 감축’을 꼽았지만 주 52시간제 유연화로 노동시간이 길어지거나 불규칙해지면 산업재해 발생률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건설업에서 사망사고가 30% 이상 감축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법적 판단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법 취지에 맞게 제도가 안착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부의 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한국은 ‘산재공화국’으로 불리는데, 정부로서도 중대재해 발생률을 줄이는 것을 주요 정책 과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추진하면 이 같은 정책 목표와는 반대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24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사업체 특성별 산업재해 현황과 과제’(2021년) 보고서를 보면, 근로시간이 늘어날수록 산재재해율이 높았다. ‘월 단위’로 유연화하면 한 달 내내 주 52시간 이상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2007~2017년 주당 노동시간별 산업재해율 조사에서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 이상 사업체의 산재율이 40시간 미만의 약 5배에 달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2016년 발표한 ‘근로시간 변화가 산업안전보건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한국은 근로시간이 48시간을 초과하는 동시에 노동강도가 0.7을 초과하는 비율이 유럽과 비교해 높게 나타났다면서 “노동강도가 커질 경우 근로자의 건강 및 안전은 근로시간의 문제가 아닌 노동강도의 문제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권미정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상임활동가는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바꿔 물리적 노동시간이 길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노동시간이 불규칙해지면 노동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노동유연화에 따라 노동강도가 집약화하면 산재 발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근로복지공단의 과로사 기준을 보면 단기과로가 있다. 단기과로는 일주일 단위로 업무강도를 보는데 이전과 비교해 30% 이상 증가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근무시간이 조정됐을 때 평소 대비 일을 몰아 하면서 급격한 과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노동운동의 역사는 시간단축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노동시간이 불규칙하면 집중도가 떨어져 자연스럽게 사고 발생 위험성이 높아진다. 또 하나는 과로사를 방조할 우려도 있다”고 했다.

한국노총도 “정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은 한국의 고질적 문제인 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동부의 근로시간 제도개선과 임금체계 개편 방향성에 공감하며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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