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정치인의 악수
2019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악수 패싱’이 정치적 논란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수했으나, 문 대통령을 뒤따르던 부인 김정숙 여사는 손을 내민 황 대표를 건너뛰었다. 당시 야당에선 이를 두고 ‘악수 패싱’이라 비난했다. 청와대는 김 여사가 문 대통령과의 간격이 벌어져 급하게 뒤따르다 악수를 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정치현장에서 일상과도 같은 악수를 하지 않았을 때,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행위로 비치게 되는 사례다.
정치인에게 악수는 생활 그 자체이다. 선거 때는 한 표를 얻기 위해 악수를 해야 하고 정치적 행사에서는 수많은 악수가 의례적으로 오간다. 조금 전 악수를 했더라도, 다른 행사에서 만나면 정치인들은 또 악수를 한다. 사이가 좋지 않은 정치인이나 정적(政敵)을 만나더라도 악수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의례다. 껄끄러운 관계에 놓인 정치인이 만나면 사진기자들은 이들이 악수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누른다. 2017년 3월 미국 백악관에서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기자들의 요청에도 악수를 하지 않아 화제가 됐다. 이처럼 정치판에서는 악수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화제가 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3일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악수하려던 배현진 최고위원의 손을 밀어내는 장면이 입길에 올랐다. 배 최고위원은 이 대표의 손목까지는 잡았지만 이 대표는 이마저도 뿌리쳤다. 배 최고위원은 다른 참석자와 악수한 후 자리에 돌아오며 이 대표의 어깨를 툭 치는 것으로 소동을 마무리했다. 며칠 전 공개회의에서 두 사람은 언쟁을 벌였는데, 이런 ‘악수 패싱’ 후 이어진 비공개회의에서도 설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배 최고위원이 손을 내밀자 이 대표가 배 최고위원의 얼굴도 보지 않고 손만 잡은 ‘노룩 악수’ 장면까지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30대 젊은 정치인 사이의 ‘악수 패싱’과 ‘노룩 악수’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웃어넘기기에는 정치적 상황이 가볍지 않다. 물가는 급등하고 서민 삶은 팍팍해지는데, 집권 여당의 대표와 최고위원이 악수하니 마니 하며 감정싸움을 벌이는 풍경이 아름다울 리 없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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