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6.25. 우리는 무엇을 더 기억해야 하는가 ①

이수린 2022. 6. 2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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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에서는 최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 세워지고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새겨진 이름은 모두 1백여 명.

이 중 절반에 가까운 수는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로 채워졌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국민보도연맹을 아시나요?”


국민보도연맹은 이승만 정부가 남한 내 공산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과거 좌익에서 전향한 사람들을 가입시켜 만든 단체지만 실상은 좌익과 무관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전시가 되자 이승만 정부는 이들이 인민군에 부역할 것을 우려해 대량으로 처형하게 됩니다.

오랜기간 보도연맹 사건을 연구하고 희생자 유해발굴 작업에 관여해온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는 "보도연맹 가입 추정 인원 30만 명 가운데 2/3, 즉 20만여 명이 군과 경찰에 의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집단학살됐다"고 말합니다.

학살 현장을 바라보는 故강영애씨. 박만순 대표 제공.

7개월 임산부였던 강영애씨는 남편과 함께 끌려가 총탄 8발을 맞고 홀로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아기는 100일을 넘기지 못하고 하늘로 갔고, 80살 넘게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리다 국가에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고인이 됐습니다.

충북 영동에 살던 오월성씨는 집 앞 군경이 “월성이 나와!”라 외친 소리에 어물쩍 나왔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월성씨는 보도연맹원조차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월성이라는 동명이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국민보도연맹은 교육과정에 없어요.”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국가 공권력이 자국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대량 학살사건으로,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입니다.

하지만 남북 대치 상태에서 보도연맹은 일종의 금기어였습니다.

더구나 학생들이 현대사를 깊게 배우지 못 하다 보니 보도연맹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국민보도연맹은 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교과서에 넣는 건 각 출판사 집필진 판단에 따라서이고, 가르치는 건 선생님들 재량이라 합니다.

근현대사 비중이 높은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일부 교과서에 국민보도연맹이 언급돼 있지만, 중학교 역사는 대다수 교과서에서 언급조차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 골령골”


예부터 뼈가 많이 나오는 골짜기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골령골.

대전 산내동 골령골 무덤의 길이는 무려 1km입니다.

이곳에 제주 4.3 사건을 기리는 평화공원처럼, 국민보도연맹 등 민간인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위령 공원이 세워집니다.

이에 앞서 지금은 유해발굴 작업이 한창입니다.

대전 산내동 골령골에서 유해 발굴을 하고 있는 장면. CJB DB

강유환(28)씨는 "유해 발굴 봉사활동을 통해 과거의 역사와 마주하게 됐고, 그 새로운 경험을 통해 역사를 보는 시각이 넓어졌다"고 말합니다.

박만순 대표는 국민보도연맹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을 기록한 '기억전쟁’이란 책을 저술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그는 희생자를 파악하는 기본적인 일조차 여러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미완성이라고 말합니다.

옥천만 하더라도 400에서 최대 500여 명으로 추정하는 희생자 중 위령비에 새겨진 건 공식 확인된 52명뿐입니다.

올해로 한국전쟁 발발 72주년.

유족들도 점점 연로해 갑니다.

시간은 없는데 속도는 더디기만 합니다.

보도연맹 관련 사진자료. CJB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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