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올들어 채권 폭풍매수 주춤..'원화값 버팀목' 흔들

김정환,박동환 2022. 6. 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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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한미 금리역전 앞두고
韓자본시장 폭풍전야
나랏빚 늘고 석달째 무역적자
한국경제 매력도 떨어져
1분기매수 전년보다 36% 줄어
"빅스텝 서둘러 금리차 축소
한국 자본시장 충격 줄여야"

◆ 불안한 외국인 채권투자 ◆

고물가에 시달리는 미국이 이달에 이어 다음달에도 기준금리 0.75%포인트를 대폭 올리는 '자이언트스텝'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2019년 10월 이후 3년여 만에 한미 금리 역전현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문제는 한미 금리 역전으로 자본 유출 위험이 커졌는데 무역수지 적자, 재정건전성 악화 등 한국 경제 투자 매력마저 빠르게 줄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도 낮은데 경제 기초체력까지 떨어지면 역대 최대로 쌓인 외국인 채권 투자자금이 빠른 속도로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4일 매일경제가 1980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국인의 주식·채권 투자 순매수 자금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외국인은 사상 최대인 737억5470만달러 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유럽(EU·22%)과 미국(20%) 투자자들의 매입 비중이 42%로 상당수를 차지했다.

가뜩이나 영미권 투자비중이 높은데 미국과 유럽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다음달 최소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금리 인상) 이상의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고,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다음달 11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이 추진될 예정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이 미국 금리를 못 쫓아가면 국고채는 물론이고 회사채에서도 자본 유출이 생길 수 있다"며 "미국 금리 인상 속도를 쫓아가려면 한국은행이 연내 최소 두 번 이상 빅스텝을 단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채권은 만기가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한미 금리 차가 벌어진다고 외국인이 당장 매도로 돌아설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면서도 "한미 금리 격차 등에 따라 만기가 도래한 채권에 재투자를 안 하는 방식으로 한국에서 떨어져나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외국인의 채권 이탈이 가시화되면 외국인 주식 매도세와 맞물려 자금 유출 충격이 커지게 된다.

최근 한국 경제 성장엔진이 식고 있다는 것도 자금 이탈 변수다.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공급망 교란 여파에 교역 환경이 크게 악화했고 재정건전성은 뒷걸음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들어 20일까지 무역수지는 76억42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은 4~5월에도 무역적자를 냈는데 이대로라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3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한국무역협회는 우리나라가 올해 147억달러 무역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은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악화로 외화가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도 타격을 받고 있다"며 "대외 수지가 좋아져야 국채시장도 안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채권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한미 금리 차가 역전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국내 금융시장에 상당한 위험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신인도를 떠받치는 외환보유액과 재정건전성 역시 예전 같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 비중은 98.94%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0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가라앉았다.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단기외채 등이 불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나라 곳간은 급격히 부실해지고 있다. 국회가 지난달 29일 62조원 규모 역대 최대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올해 국가채무(1068조8000억원)는 전년 대비 103조5000억원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9.7%로 당초 정부안(49.6%)에 비해 뒷걸음치게 됐다. 성 교수는 "재정이 악화돼 재차 대규모 국채를 발행해야 할 상황이 되면 또 다른 이탈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이제부터라도 국가채무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자금 유출로 인한 물가 타격은 또 다른 위기 전선이다.

투자 자금이 유출되면 달러당 원화값은 한층 떨어지고, 기업들은 해외에서 들여오는 원자재를 더 비싸게 주고 사와야 한다.

그만큼 국내 물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미 금리 역전→채권 등 자본 유출→원화값 하락→수입물가 상승→물가 악화'의 악순환이 가속화되는 셈이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는 5.4% 급등해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 이후 13년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달에는 1998년 11월 외환위기 사태 이후 처음으로 6%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상태다.

정부는 이달 한미 경제수장 회동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정부에 따르면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다음달 중순 한국을 찾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을 만날 것으로 전해졌다.

옐런 장관은 한국 당국자들과 회동하며 물가 대응과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 등을 놓고 협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옐런 장관이 한국을 찾는 것은 지난해 1월 조 바이든 행정부 재무장관으로 취임한 뒤 처음이다.

[김정환 기자 / 박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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