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자가 진(眞)을 말하지 않은 까닭은?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2022. 6. 24. 17: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5년째 공자 공부를 하고 있는데 문득 《논어》에 진(眞)이라는 글자가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

심지어 오경(五經) 전체를 통틀어 살펴봐도 진(眞)자는 없다.

공자는 인도(人道)나 천도(天道)는 말해도 진도(眞道)나 진리(眞理)는 말하지 않는다.

공자는 애당초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사저널=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15년째 공자 공부를 하고 있는데 문득 《논어》에 진(眞)이라는 글자가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 심지어 오경(五經) 전체를 통틀어 살펴봐도 진(眞)자는 없다. 우연일까? 그러고 보니 다른  동양 고전들에서도 간혹 '정말로'라는 부사로 진(眞)자가 쓰이기는 해도 선(善)이나 미(美)처럼 내용을 갖고서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공자는 인도(人道)나 천도(天道)는 말해도 진도(眞道)나 진리(眞理)는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진선미(眞善美)는 뭔가? 미인대회 영향 때문인지 우리는 이 셋 중에서 진(眞)이 최고라고 여긴다. 그러면 이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진선미(眞善美)를 하나로 묶어서 쓴 사람은 프랑스 철학사가 빅토르 쿠쟁(Cousin·1792~1867)이다. 그는 1837년 《진 미 선에 관하여(Du vrai, du beau et du bien)》라는 책을 써서 칸트철학을 압축해 설명했다. 즉 칸트의 3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은 진, 《실천이성비판》을 선, 《판단력비판》을 미에 조응시켜 도식화한 것이다.

결국 진이란 지성과 관련되어 인식론에 속하는 것이고, 선이란 의지와 관련되어 윤리학에 속하는 것이며, 미란 감성 혹은 감각과 관련되어 미학에 속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흐름을 동양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일본에서 자연과학을 제외한 인문 영역을 통칭하기 위해 진선미라는 조어(造語)를 먼저 수입했고 이후 중국과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공자는 애당초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진(眞)자를 쓸 일이 없었고 그의 관심사는 일관되게 인문(人文), 즉 사람이 사람답게 되려고 열렬히 노력하고 애쓰는 법에 있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의 배움도 진리를 배우라는 말이 아니라 학문(學文), 즉 사람이 사람답게 되려고 열렬히 노력하고 애쓰는 법을 배우라는 말이다.

반면에 동양과 달리 진(眞)에 치우쳤던 서양에서는 인식론이 크게 발달했고 근대에 이르러 과학의 발달로 이어졌다.

진리탐구에 나서는 사람은 늘 두 가지 갈림길에 서야 했다.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다는 독단론과 그런 인식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그것이다. 그래서 서양 근대철학을 보면 늘 이 두 흐름이 격한 논쟁을 벌였다. 실은 그 뿌리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의론의 뿌리는 소피스트이고 '진'을 부르짖는 독단론의 뿌리는 플라톤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중간쯤에 있었던 사상가라 하겠다.

소피스트의 토양은 그리스 민주정이었고 플라톤은 군주정을 이상으로 삼았다. 그의 '철인왕' 사상도 진리는 존재한다는 독단론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후 19세기까지 플라톤 철학이 소피스트나 회의론을 압도적으로 제압했다는 사실은 현실 정치가 기본적으로 군주정에 기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 민주정 시대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소피스트 사상이 재조명받아 민주정에 어울리는 시민교육의 기본 텍스트가 되는 것이 정상이다.

최근 박규철 국민대 교수는 《의심하는 인간》이라는 책을 통해 서양 회의주의의 흐름을 소개하고 현대사회, 특히 독단과 확증편향이 판치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데 회의하는 정신이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제안했다. 공자의 말 한마디로 이에 호응코자 한다.

"군자가 천하에 나아가 일을 할 때 꼭 해야 하는 바도 없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바도 없다. 그때마다의 마땅함(義)을 척도로 삼을 뿐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