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물가 잡으려 '역환율 전쟁'.. 3개월새 55국이 금리 올렸다

손진석 기자 2022. 6. 2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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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불길 잡겠다" 경쟁하듯 금리 인상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로이터 연합뉴스

23일(현지 시각) 멕시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7%에서 7.75%로 올렸다. 멕시코 역사상 첫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이다. 멕시코는 이번 인상을 포함해 최근 1년간 기준금리를 3.5%포인트나 끌어올렸다. 같은 날 유럽에서는 노르웨이 중앙은행이 ‘빅스텝(0.5%포인트 인상)’으로 기준금리를 1.25%로 높였다.

앞서 지난 16일에는 스위스와 대만이 나란히 금리를 올렸다. 스위스는 -0.75%에서 ‘빅 스텝’으로 -0.25%까지 끌어올렸고, 대만은 1.375%에서 1.5%로 올렸다. 그보다 하루 전인 15일에는 브라질이 기준금리를 13.25%로 올렸다. 1년 전 브라질 금리는 4%대였다.

준금리 올리고 있는 나라

올 들어 세계 모든 대륙에서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금리를 올리고 있다. 인플레이션 불길을 잡기 위해서다. 미 연방준비제도가 지난 16일 28년 만의 ‘자이언트 스텝’까지 단행했고, 뒤질세라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도 잇따라 금리 인상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월 말 이후 5월까지만 하더라도 55국 중앙은행들이 모두 68차례 걸쳐 금리를 올렸다고 집계했다. 6월까지 더하면 70차례가 넘어간다.

◇통화 가치 높이려는 금리 인상 경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각국에서 금리 인상 경쟁이 벌어지는 이유가 자국 통화의 가치를 높여 수입 물가를 낮추기 위한 의도 때문이라며 ‘역(逆)환율 전쟁’이라고 이름 붙였다.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던 과거의 ‘환율 전쟁’과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역환율 전쟁’은 올 들어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방아쇠가 된 원유와 원자재, 식량 가격의 폭등으로 수입 비용을 낮추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됐다. 그래서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기축 통화인 달러화에 대한 환율을 낮추려는 것이다.

이제야… 파월 “인플레 과소평가했다” - 23일(현지 시각)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손을 귀에 댄 채 누군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늦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는 파월 의장은 이날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 /AFP 연합뉴스

신흥국들에는 금리가 높아진 미국 등으로 자본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역환율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선진국보다 금리가 높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금이 빠져 나갈 위험이 커진다.

요즘 달러는 독보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인덱스(유로·엔·파운드 등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는 최근 20년 새 최고치까지 올랐다. 이렇게 강해진 달러를 따라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 인상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은행도 작년 8월 이후 5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5%에서 1.75%까지 끌어올렸다. 그런데도 원화는 지난 23일 달러 대비 환율이 13년 만에 1300원 선을 넘어서며 올 들어서만 9.5% 하락(환율 상승)했다. 연준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유럽중앙은행(ECB)이 다음 달 11년 만에 금리를 올리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에 ‘역환율 전쟁’은 더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런 ‘역환율 전쟁’으로 각국이 경쟁적으로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면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도 높아지게 됐다는 것이 함정이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최근 6주 사이 최저치인 104.27달러에 마감했다. 경제 활동 둔화로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가를 하락세로 돌아세웠다.

◇연준의 ‘뒷북 대응’ 비판 거세진다

글로벌 경기 침체를 가져올 위험을 가진 ‘역환율 전쟁’이 불붙는 지경이 된 것은 미국 연준의 책임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연준이 뒤늦게 급격한 속도로 금리를 끌어올리면서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을 키웠다는 비판이다. 미국이 코로나 경기 방어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푼 여파로 작년 5월 이후 물가 상승률이 5%로 올라섰다. 그러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일시적”이라며 일축하다가 올해 3월에야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을) 과소평가했다”고 인정했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의 CEO였던 모하메드 엘 에리언은 “연준이 (뒤늦게) 급브레이크를 밟아 미국을 침체에 빠뜨릴 가능성이 커졌다”며 “연준이 신뢰를 잃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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