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탈중앙 외친 테라 일당, 실상은 '중앙집권적 조직범죄'"..미국 소송 살펴보니
검찰, 직원들로부터 "시스템 붕괴 우려 무시" 증언 확보
가상통화 테라·루나 발행사인 테라폼랩스와 관계사들이 폐쇄적인 중앙집권구조를 만들고 조직적으로 전횡을 저지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탈중앙화 금융시스템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중앙집권화 된 이익공동체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미국 투자자들은 이들이 밖으로는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테라·루나 가치를 부풀리고 뒤로는 남몰래 이득을 챙기는 ‘조직범죄’를 저질렀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4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미국 투자자들의 집단소송 민사 소장을 보면, 투자자들은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와 관계사들이 증권거래법 위반과 함께 ‘부패 및 조직범죄처벌법(RICO법)’을 위반했다고 적시했다. RICO법은 미국이 1970년 마피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만든 법으로 최근에는 집단적인 금융·경제범죄 처벌에도 적용되고 있다. ‘권도형 일당’의 행각이 마피아처럼 조직적으로 이뤄졌다고 본 것이다.
소장에는 테라폼랩스와 비영리단체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가 폐쇄적인 공동체를 구성하고 의사결정과 권력을 독점해 온 정황이 드러나 있다. LFG는 테라·루나의 가치 유지를 목적으로 올해 1월19일 출범한 거버넌스 평의회다. 창립멤버로는 권 대표와 니콜라스 플라티아스 책임연구원, 카나브 카리야 점프크립토 회장, 델파이디지털 공동설립자 호세 마리아 델가도 등이 참여했다. 이후 가상통화 헤지펀드인 쓰리애로우캐피털, 리퍼블릭캐피털 등도 자금을 지원하며 동참했다.
소송인단은 이들이 테라 생테계의 20% 고이율 저축상품 ‘앵커 프로토콜’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투자를 홍보해 이득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가상통화 가치를 부풀린 뒤 이를 팔아 이익을 취했다는 것이다. 소송인단을 대표하는 닉 패터슨은 “피고들은 계약 관계, 재정적 유대 등으로 체계적으로 연결돼 (홍보 등) 활동을 지속적으로 조정해 왔다”며 “(부당이득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체계적인 링크를 만들고 유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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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보유량이 곧 의결권인 가상통화 생태계에서 이들의 막대한 보유량은 정책을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는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투자자 보상을 낮추더라도 생태계를 정상화하자’는 취지의 투표조차 조직적으로 방해한 정황이 드러났다. 테라폼랩스 초기 투자자인 폴리체인캐피털과 아르카(ARCA)는 지난 3월10일 20%에 육박하는 앵커 프로토콜의 이자율을 낮추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LFG의 창립멤버인 카리야 회장 등이 이를 거절하고, 투표 대상인 앵커 프로토콜 공식 계정조차 이 제안에 반대하는 게시글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고이율 정책이 계속돼야 투자자를 더 끌어올 수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폐쇄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구조 속에서 이들은 외부 지적에 대해서도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거나 묵살해 왔다. 지난 3월28일 가상통화 투자펀드 아케인크립토의 연구책임자 에릭 월은 “파티를 망치고 싶지는 않지만, 테라폼랩스가 초기 모금 자산을 LFG 준비금으로 쓰는 건 실수 같다. 테라는 분산과 지속가능성이 목표인데 이 준비금은 양쪽 다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권 대표는 “나는 진실이거나 잘 알려진 것만 말하기를 좋아하는데 당신의 말은 둘 다 아니다”라며 “뭐, 당신 마음대로 해라(You do you)”라고 대꾸했다. 이 외에도 권 대표는 “나는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는 식의 오만한 태도를 보여 논란을 일으켰다.
탈중앙화 금융시스템(디파이·DeFi)을 표방하고 있는 테라 일당은 실제로는 몇몇 핵심 인물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며 업무를 진행했다. 탈중앙화 금융시스템은 중앙 은행의 관리감독이 없는 대신 모든 거래 정보를 모든 참여자들에게 분산 저장하는 ‘역 판옵티콘’ 구조로 투명성을 담보한다. 시스템 내 의사 결정도 모두의 민주적 참여로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정작 시스템 운영에서는 이런 원칙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결국 테라 생태계에는 거대한 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통제할 어떤 수단도 없었고, 건전한 비판조차 통하지 않는 구조 속에서 일부 핵심 인사들의 비밀스러운 독재가 이뤄진 셈이다.
권 대표가 테라폼랩스 내부 개발자들의 조언을 묵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수단은 테라폼랩스 전 직원들로부터 “권 대표가 시스템 붕괴 우려 지적을 전혀 듣지 않았다”는 취지의 증언을 확보했다. 권 대표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실패와 사기는 다르다”며 “내 행동은 말과 100% 부합했다”고 주장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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